예수께서 집에 돌아오시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서 예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러 나섰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도 예수가 베엘제불에게 사로잡혔다느니 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느니 하고 떠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다 놓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 한 나라가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제대로 설 수 없다. 또 한 가정이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가정도 버티어 나갈 수 없다. 만일 사탄의 나라가 내분으로 갈라진다면 그 나라는 지탱하지 못하고 망하게 될 것이다. 또 누가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털어가려면 그는 먼저 그 힘센 사람을 묶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그 집을 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든 입으로 어떤 욕설을 하든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를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비방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둘러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 오늘의 말씀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 오늘의 묵상 : 또 하나의 가족
몇 년 전 모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 중에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문구로 화제를 모았던 광고가 있습니다. 사실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따뜻함, 포근함, 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모든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까지도 다 받아줄 것만 같은 온화하고 포용성 있는 어머니의 이미지…. 그것이 가족 하면 떠오르는 느낌 아닐까요? 오늘 복음말씀에 따르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곧 또 하나의 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마냥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풍길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당장 예수님께서도 당대의 권력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존재로 비춰졌습니다. 또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부패와 타락이 판치는 지금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쓸데없이 딴죽이나 거는 불편한 사람들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안에는 마냥 따뜻하기만 한 어머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아버지도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신앙인들이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세상의 불평불만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와 같은 험난한 길을 기꺼이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한번 거쳐 가셨던 길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