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설하 시집 {화요일의 목록} 출간
표4의 글
인상주의 화가 칸딘스키Kandinsky, Wassily는 내적 필연성內的 必然性을 강조했다. 회화작품에는 인간 내면의 정신적 법칙이 반영된다는 예술론이다. 우주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필연적 법칙은 정신과 감정으로 분출된다는 칸딘스키의 예술론을 통해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내적 필연성이 충만된 세계를 열리게 한다고 역설했다. 박설하의 목록에 저장된 ‘당신’들은 내적 필연성이 반영된 존재들이다. 시인은 ‘두근두근 한철 흩날리는 꽃잎’이다가 ‘닫힌 창구석’이다(「꽃물」). 그리고 ‘당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와도 좋다고 말하면서 먼저 다가가는 ‘당신들’의 ‘당신’이다. 화자는 안개에 잠겨도 되는 나이의 ‘당신들’이 내준 어깨에 내려앉은 안개의 수심을 걷어내고(「고요한 어깨로 건너가는 두만강 푸른 물에」), ‘당신들’과 맞주름을 포갠 채 으깬 감자를 함께 즐기고 싶은(「솔라닌」) 마음 간절하다. 빛바랜 밤마다 ‘당신들’이 다가오는 꿈을 꾸거나 ‘당신들’과 같이 물들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은 현재진행형이다(「꽃물」). 꽃무늬로 물든 골목에서 시인은 언제쯤 ‘당신들’과 함께 물들 수 있을 것인가.
----배옥주 시인, 문학평론가
운수가 좋은 날이 아닌, 운수가 사나운 날은 밖으로 발산하지 못한 본능이 안으로 내면화되고, 이 내면화된 본능이 그 힘을 축적하게 되면 반드시 화산처럼 폭발을 하게 된다.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은 지구가 아닌 외계의 화요일이자 시간대이고, 그러니까 박설하 시인의 짜증과 분노가 분출해낸 화요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외계의 시간대는 1시간이 100분인지, 120분인지 알 수가 없지만, 지구에서의 7시 15분이 그곳에서는 6시 75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의 목록]은 예측불가능한 일들의 목록이고, 그 뒤죽박죽의 사건들 속에는 인간 역사의 종말과 함께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행운이 짓밟히고 오만가지의 불행의 씨앗이 뿌려진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의 목록]----. 가장 낯익고, 가장 정들었던 고향땅과 집에서, 나는 문득 외계인이 되어, 그 짜증과 분노를 어쩌지 못한다.
왜, 어느 누가 나에게 외계의 화요일을 택배로 보냈단 말인가?
----반경환, 애지 주간, 철학예술가
박설하 시인은 2022년 『애지』로 등단했고, 경남 밀양에 거주하며, 한국문인협회 회원, 밀양문인협회 사무국장, 挑詩樂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설하는 첫 번째 시집 『화요일의 목록』에서 오래 불 밝힌 심장으로 써내려간 ‘당신들’의 목록을 펼친다. 그녀가 풀어나가는 ‘당신들’의 목록에는 밀당의 고수인 ‘당신들’과 시적 주체(시인)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관계를 이어간다. 여기서 ‘당신들’은 현실 속의 타자인 ‘당신’이면서 현실 속의 자아인 ‘나’와 관계하는 존재들이다. 그녀가 이번 시집에서 건네주는 ‘당신들’의 스펙트럼은 굴절률이 다양한 ‘우리들’ 모두를 포괄한다. 그녀는 파편화된 현대사회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당신들’의 다양한 문제를 감정 정화와 승화된 치유의 해학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눈이 내릴 것 같다/ 이웃의 목록에 비닐하우스를 저장한다/ 택배가 오지 않는 날이다/ 불현듯 먹고 싶은 짬뽕은 읍내에 있다/ 나와 읍내 사이에는/ 배달 불가의 방어벽이 있다// 바람을 뚫고 당도한 읍내 장터/ 중국집 문은 닫혀 있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가/ 낭패로 치렁이는 화요일/ 미용실마저 쉬는 날이다/ 불 꺼진 싸인볼 아래/ 길고양이가 털 고르듯 뭉쳐진 눈발을 굴리고 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엄마가/ 별거 아닌 일로 다투기 좋은 날이다/ 치매방지책이라고 동생이 일러준다/ 꾹꾹 눌러 쓴 트집들이/ 믿고 싶은 줄거리를 지어내고 있다/ 친애하는 당신과 나/ 엄마와 아버지의 다정을// 비밀 같은 눈이 날린다/ 가래와 삽 너머로/ 택배 안부가 궁금해진다/ 누가 나에게 요일을 배달시켰나/ 화요일에 걸린 시계가/ 여섯 시 칠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
- 「화요일의 목록」 전문
「화요일의 목록」은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다. 화자가 써내려가는 화요일의 목록에는 다양한 대상과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화자가 살고 있는 곳은 배달이 되지 않는 촌락이다. 박설하 시인은 공직에서 은퇴한 남편과 함께 소와 농작물을 키우며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이 시는 자전적인 경험에서 획득한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시인은 “이웃의 목록”에 저장한 ‘비닐하우스’와 이웃하는 촌락에 둥지를 틀었다. 비닐 지붕과 비닐 담으로 가려진(「비닐하우스가 보이는 my 하우스」) 창밖으로 눈이 내릴 것 같은 흐린 날. 화자는 불현 듯 ‘짬뽕’을 먹고 싶지만 배달이 되지 않는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난관에 봉착한다. 참을 수 없는 식욕을 앞세우고 읍내로 달려가지만 화요일은 중국집이 문을 닫는 날이다. 게다가 치렁치렁 자란 앞머리를 자르고 싶어 들른 미용실마저 쉬는 날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화자는 하고 싶던 두 가지 일을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답답한 화자의 심사는 아버지와 엄마, 동생, 친애하는 ‘당신’에게까지 전해진다. 엄마와 아버지는 별 거 아닌 일로 다투고 있지만, 동생은 부모님의 말다툼이 치매방지책이 된다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연로한 엄마와 아버지는 어째서 아직까지도 다정하지 않은 것인지, ‘당신’은 왜 친애하지 않은 것인지. 화자는 “친애하는 당신”으로 존재하면 좋을 ‘당신’과 ‘나’의 관계 또는 이젠 다투지 않으면 좋을 “엄마와 아버지의 다정”을 믿고 싶은 서사로 지어낸다.
중국집도 미용실도 문을 걸어 잠근 화요일. 할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 화자의 답답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 눈을 찌르는 앞머리처럼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허기처럼 “화요일에 걸린 시계”가 여섯 시 60분을 지나 “칠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화요일을 빨리 넘기고 수요일을 맞고 싶은 화자의 내면 심사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칠십오 분’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다음의 시에서는 공무원에서 월산리 농부가 된 남편을 통해 시인과 농부 남편과의 관계를 끌어낸다.
당신은 물 장화가 어울려/ 삭은 볏짚이 들러붙어/ 추적추적 종아리를 따라다녀도// 당신은 알곡을 셈하는 게 어울려/ 때아닌 폭우에 까뭇해진 마늘을 말려도// 화요일 수요일이 다를 게 뭐야/ 구멍 뚫린 밀짚모자를 퉁명스럽게 고쳐 쓴다// 검버섯이 어울려, 당신은/ 키보드 두드리던 손가락을 목장갑으로 감추고/ 굳은살이 거뭇거뭇 박힌// 잡풀을 걷어내며/ 당신에겐 내가 잘 어울려?/ 흙탕물에 잠긴 채 꾹 입을 다문 마늘밭// 두 발을 다지는 진흙은 뺄 수 없는 무게로 짓누르는데/ 검정비닐을 뚫고 올라온 마늘종들이/ 들리지 않는 매운 말을 주고받는다// 때때로 어울리지 않는 변명이 있어, 우리에겐/ 당신 눈빛을 끌고 가는/ 월산리 그림자가 따갑도록 맵다
- 「월산리, 당신」 전문
위 시에서 ‘당신’은 물장화와 검버섯이 어울리고 일곡을 셈하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구멍 뚫린 밀짚모자와 목장갑이 더 어울리는 ‘당신’은 “키보드 두드리”던 공무원에서 잡풀과 마늘밭을 가까이에 둔 농부가 되었다. 매일을 밭에서 잡초와 씨름하는 ‘당신’에게 “화요일과 수요일”은 다를 게 없고 “굳은살이 거뭇거뭇 박”히는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이다.
영락없는 농부로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내는 데만 몰두하는 ‘당신’에게 화자가 불현듯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겐 내가 잘 어울”리냐는 화자의 물음에도 ‘당신’은 야속하게 묵묵부답 일만 하고 있다. 흙탕물에 잠긴 채 꾹 입을 다문 마늘밭은 바로 ‘당신’이며, “검정비닐을 뚫고 올라온 마늘종”들이 “주고받”는 매운 말은 일은 안 거들고 쓸데없는 질문만 한다는 ‘당신’의 핀잔이 잘 묻어나는 대목이다. 해보지 않던 농삿일에 적응하느라 힘든 ‘당신’의 처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화자를 향해 ‘당신’은 말 안 해도 눈빛으로 알지 않느냐는 변명을 따가운 눈빛으을 보내고 있다. ‘당신’의 눈빛을 끌고 가는 월산리 그림자는 안 물어도 다 알지만 그래도 듣고 싶은 화자의 간절함이 깊게 묻어난다. 내게 어울리는 건 당신뿐이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될 걸. ‘당신’은 그 한 마디가 왜 그렇게 인색하단 말인가.
다음의 시에서도 생의 바깥을 잃고(「일자형 저녁 6시의 소파」) 안녕하지 못한 ‘나’의 내면이 형상화되어 있다.
창밖에서 캐럴은 나를 훔쳐보곤 했어요// 한겨울 밤이면/ 출근을 서두르곤 했지요/ 눅눅한 불빛은/ 고드름 아래에서 눈을 떴다 감곤 했어요// 오로라를 찾아 빙하를 달려가곤 했지요/채찍을 휘두르다/ 개썰매에서 떨어지기도 했어요/ 눈밭으로 사라진 털복숭이들을 쫓아/ 하얀 밤이 달리기도 했지요// 사이키 조명 사이로/ 끈적이는 12월을 놓치곤 했어요/ 밤무대에서 돌아온 엔카는/ 선잠에 들었다 깨곤 했지요// 라면을 끓이면/ 허기진 목청이 뜨겁게 흘러내렸어요/ 끊어지는 면발을 휘휘 저으며/ 젓가락으로 바닥을 건져 올렸지요/ 식은 국물을 삼킬 때마다/ 잊어버린 가사가 밀려갔다 밀려오곤 했어요// 오색 광도의 1번 트랙은 언제쯤 달려올까요
- 「12월의 오로라」 전문
오로라는 밤하늘에서 춤추는 빛으로 북극광으로 불린다. 지구의 자기장과 태양의 하전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빛의 향연이다. 위 시 「12월의 오로라」는 아직 빛의 향연을 즐기지 못한 엔카 가수의 힘겨운 삶이 녹아 있다.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은 시기는 4월에서 9월이지만 겨울에 오로라를 잘 만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 시의 주체인 ‘나’는 밤에 “출근을 서두르”는 밤무대가수다. 가수로 성공하고 싶지만 밤무대를 뛰고 있는 지금의 ‘나’는 허기진 목청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식은 라면 국물을 삼킬 때면 “잊어버린 가사가 밀려갔다 밀려오”곤 하는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유명 가수가 되지 못 하고 밤무대를 전전하는 무명 엔카 가수인 것으로 보인다.
세상엔 너무 많은 가수 지망생이 있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그러니 성공하는 사람보다 밤무대에서 사라지는 무명가수가 더 많을 것이다. ‘12월의 오로라’는 오묘하게 빛날 ‘나’의 꿈을 대변해준다. “오색 광도의 1번 트랙”이 아직 달려오지 않았으므로 음원을 내고 싶지만 낼 수 없는 상황이거나, 음원을 냈다 하더라도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나’인 당신의 안위는 그렇게 평안해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가수가 아니라 화자가 이루고 싶은 꿈이 목표하는 1번 트랙은 언제쯤 오색 광도의 오로라로 빛날 것인가. 「12월의 오로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1번 트랙의 오로라에 닿지 못하는 화자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박설하 시집 {화요일의 목록},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