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의 ‘아마데우스’
최 화 웅
멀리 사는 며느리가 추석 용돈을 보내왔다. 우리 부부는 그 돈으로 일찍이 손열음의 ‘아마데우스’를 예약해두었다. 손열음의 ‘아마데우스’는 영화의 전당이 올가을 들어 다섯 번째 마련한 두레라움 명품 클래식 시리즈 음악회다. ‘아마데우스’는 라틴어 합성어로 ‘주님을 사랑하라’라는 뜻이란다. ‘아마데우스’하면 오래 전에 본 영화가 기억난다. 검은 화면에 웅장하고 긴박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서곡이 울려 퍼지면서 하얀 눈이 펄펄 휘날리는 비엔나 밤거리의 가로등불빛이 오버랩 되는 첫 장면이 극적이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하이든과 더불어 18세기 빈 고전주의 악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소금의 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그곳으로 이어진 로맨틱가도를 투어하면서 중세 유럽의 흔적을 간직한 옛 성과 건축물을 돌아보던 때가 있었다. 지난날 모차르트의 생가,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잘츠부르크 대성당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미라벨 정원을 돌아보며 낭만과 정취에 취했던 기억이 새롭다. 손열음 연주회는 아프리카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마련했던 지난 2016년 12월 F1963에서의 ‘클래식, 시간을 열다’이후 이태만이다.
10월 21일 일요일 이른 저녁 5시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치른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 광장에는 만추의 강바람이 을씨년스러웠다. 이번 연주회는 네빌 마리너 경의 2주기를 기려 지난 7일 예술의 전당에서 시작한 전국 투어 연주회로 21일 부산 연주회와 대구, 강릉에 이어 오는 27일 손열음이 고향인 원주에서 마무리하게 된다. ‘음악으로 영원히 기억될 네빌 마리너 경을 기리며’ 라는 부제를 단 이번 연주회는 솔리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곡 만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지난 9월 11일 백혜선의 베토벤 ‘비창’과 ‘열정’에 이어 이번 연주회에서는 모차르트만이 가진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가을이 점점 무르익어가는 수영강변을 아름답게 수놓은 손열음의 ‘아마데우스’는 30대 초반의 익어가는 청춘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이름 손열음은 ‘열매를 맺음’이라는 뜻의 겨레말이다. 그의 이름은 35년 동안 국어 교사를 한 그녀의 어머니께서 지은 이름이다. 손열음은 지난 2011년 제14회 챠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C장조, K467을 연주하여 준우승과 함께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 연주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67년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한때 가장 아름다웠던 불륜’을 내용으로 한다. 거기에는 여주인공 피아 디거마크의 청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과 배경음악으로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2악장의 감미로운 선율이 한 몫을 했다. 육군중위 식스틴이 서커스단원 엘비라와 함께 전장으로부터의 도피, 도덕율과 인습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가혹한 현실은 녹록치 않음을 열매를 따먹으며 연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어 풀밭에서 피크닉 온 연인처럼 최후의 만찬을 준비한다. 이어 식스틴이 권총으로 엘비라의 머리를 겨누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이 때 나비가 날자 엘비라가 풀밭으로 나비를 쫓는다. 엘비라가 나비를 잡는 순간 총성이 울리며 행복한 표정의 엘비라가 정지화면에 뜬다. 이어 울리는 또 한 발의 총성에 신파조(?) 영화는 그렇게 정지화면으로 끝이 난다. 이룰 수 없는 애닯은 사랑의 긴 여운을 끈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두고 도덕군자들은 불륜이라 나무라겠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이 한없이 가슴에 아리고 영상 또한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오프닝 연주를 솔리우스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교향곡 제36번 ‘린츠 교향곡’을 연주했다. 김윤지가 지휘한 솔리우스 오케스트라는 세계 주요 각지에서 일찍이 명성을 얻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솔리스트들로 세계 주요 각지에서 일찍이 명성을 얻고 왕성하게 활약 중인 솔리스트들로 지난해 7월 결성해 지난해 7월 국내에서 창단연주와 해외연주활동을 시작해 한국 음악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며 새로운 감각으로 감동을 전했다. 두 번째 연주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14번에 이어 2부에서 모차르트 아다지오와 푸가 C단조에 이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을 연주했다. 마지막 곡은 이번 연주회의 하이라이트였다. 협연에는 트럼펫과 팀파니를 포함한 오케스트라의 편성으로 제1악장에 이어 제2악장 인단테는 죽음으로써 완성된 사랑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감미로운 선율이 이어지고 제3악장은 기교가 돋보이는 피날레 악장으로 끝맺었다.
세계가 인정한 모차르트 연주자 손열음의 소리 없는 흥얼거림과 표정, 그리고 온몸으로 노래하듯 풀어내는 모차르트에 대한 탐구열과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손열음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처음으로 문학이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충격을 받았어요.”라고 말했고 또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권한 건 릴케와 마르틴 부버의 책들이었고요,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는 호기심에 제가 찾아 읽었던 건데요, 훗날 생각해보니까 다 독일어권 작가들이었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독일로 유학을 갈 줄은 꿈에도 몰랐었는데 말이죠.”라고 인연을 회상할 만큼 책을 많이 읽는 연주자다. 작가는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하듯 훌륭한 연주자는 쉬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과정에서 악보를 자기 것으로 품고 외우며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의 경지에 이른 것이리라. 나오는 길에 로비에서 2016년 네빌 마리너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제작한 손열음 연주 CD를 샀다. 내년 4월 손녀 리아가 오면 함께 들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