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꿈에서 본 거리
02. 아무도 모르게
03. 내일로 가는길
04. 어두운 하늘 아래서
05. 다시 만날 날까지
06. 지금의 나
07. 그때 그 시절
08. 영원히 나의 가슴속에
강헌 Review
80년대 후반 발라드의 황태자는 단연 변진섭이며 단일곡으로 80년대의 마지막 해를 들뜨게 했던 노래는 노사연의 유일무이한 대표작 <만남>이다. 80년대 후반을 아로새겼던 변진섭과 노사연이 90년대에 돌입하여 자신의 아성을 지키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이문세는 <옛사랑>을 담은 1990년의 7집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대상층의 연령을 높이면서 살아남았다. 물론 그것은 DJ로서 MC로서 가지고 있는 대중적 친화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변진섭과 노사연이 몰락하고 신승훈이 부상하게 되는 주류 영역의 재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이 이행기의 두 뮤지션이 있다. 그것은 주류 대중음악 내에서 불기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붐의 대표적인 주자 이승환과 유영석이 이끄는 푸른하늘이다. 서로 다른 음악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혹은 팀)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은 이후의 판도가 어떻게 진행되어 갈 것인지를 암시해 주는 한편으로 80년대의 맹주들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된다.
먼저, 무엇보다 이들은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점이다. 80년대 중반의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의 폭풍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곡을 직접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들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를 창출했다. 엔터테이너, 즉 쇼 비즈니스의 스타의 대척점에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의미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음악적 성격이나 흥행 과정의 태도와는 별로 상관없이 80년대 중반을 수놓은 김현식과 들국화같은 혁혁한 반항아의 슬로건을 계승하여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음반과 라이브 컨서트, 그리고 FM 채널로 승부하는 길을 고집했다. 이러한 전략이 이승환과 푸른 하늘같은 새로운 얼굴들에게 참신한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다.
유영석은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내는 멜로디 메이커 중의 한명이다. 그의 선율 진행은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며, 하모니는 우아하고 세련되었고 여하한의 경우에도-가령 <지금의 나>처럼 랩을 고용할 경우에도-억지를 부리거나 튀지 않는다. 머리곡 <꿈에서 본 거리>는 그의 최대 히트작 <눈물나는 날에는>의 업버전 트랙이며 <다시 만날 때까지>의 다양한 보컬들의 어울림은 유영석만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그의 앨범은, 당연히 폭이 좁다. 그러나 여기엔 훼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무시한다고 해도.
21C vision
푸른하늘에서 화이트로 옷을 갈아입은 것은 90년대에 살아남기 위한 유영석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푸른 하늘의 영광을 이어가는 데엔 미치지 못했다. 유영석의 미래는 의외로 불투명하다. 그는 쇼비즈니스의 기민한 전략가도 아니며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성향도 아니다. 그는 그의 아름다운 노래와 더불어 늙어가고 있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새로운 선물을 마련하여야 할 때이다. 그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그에겐 이미 뛰어난 선율 감각과 프로듀싱 능력,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건반을 울리게 하는 손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 best recommended track <꿈에서 본 거리>
* alternative recommended track <다시 만날 때까지>
이석원 Review
전설의 옴니버스 <<우리 노래 전시회>> 3집의 히어로는 <겨울바다>를 부른 유영석이었다. 그의 최대 무기인 `멜로디'를 앞세운 <겨울바다>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 어느새 그를 숨은 유명인으로 만들었고 마침내 동아기획사단에서 드러머 송경호와 의기투합, 푸른 하늘의 대망의 1집을 발표한다. 그때가 88년이었다.
<눈물나는 날에는>의 진한 감동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2집에 이어 90년대 들어 발표한 3집에서는 박학기, 장필순과 함께한 <우리 모두 여기에>를 선보인다. 사실 푸른 하늘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유영석은 99년 지금도 (뱅크의 정시로와 결탁하여 화이트뱅크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뮤지션이기 때문에 푸른 하늘은 꽤 오래 지속된 그룹인 것 같지만 해체한지는 벌써 6년이나 되었다. 88년 데뷔이래 줄곧 매년 앨범을 내왔던 것뿐.
윤종신이 부른 <텅빈 거리>풍의, 그러나 전형적인 유영석 스타일의 머릿곡 <꿈에서 본 거리>는 여전한 멜로디가 `후까시'를 전혀 주지 않는 유영석 특유의 편곡에 실려 담담히 전개된다. 시정이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보편적인 정서를 서술하는 형식의 노랫말도 변함이 없으며 머릿곡 <꿈에서 본 거리>를 필두로 <아무도 모르게>, <내일로 가는 길>, <어두운 하늘 아래서>에 이르기까지 멜로디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수록곡들이 고른 만족을 안겨주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으나, 반대로 이것이 유영석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주류의 다른 대중음악가들이 사운드와 편곡으로 눈을 돌릴 때에도 유영석은 여전히 보컬위주의 80년대식 집을 지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동아기획소속이지만 특별히 어떤 유대가 두드러지는것도 아니고 발라드지향의 작곡가들에게서 흔히 감지되는 흑인음악적 분위기가 느껴지지도 않는 어떤 섬과 같은 위치의 음악가라 할 수 있다.(심지어 랩이 등장하는 <지금의 나>에서도 흑인 적인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푸른 하늘의 최대의 무기이자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린 `흡입력 강한 멜로디'는 93년 6집을 끝으로 해산할 때까지 그들 음악의 절대요소로 자리했다.
21C vision
유영석은 푸른 하늘의 해산후 `화이트'를 꾸려가다가 요즘은 `화이트뱅크'로서 활동하고 있으나, 여전히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정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머무르던지 아님 나아가던지.
* best recommended track <꿈에서 본 거리>
* alternative recommended track <내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