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주관적인(?) 5월 둘째 주 산야초반 수업 감상>
초대교사는 이원규 선생님.
광속으로 10만년을 달려야 지름을 통과하는 은하수.
그 안에 무수한 별들.
이것을 사진에 담는 이원규 선생님이 이번 수업의 초대교사였습니다.
시인, 기자, 환경운동가, 강사, 사진작가 말고도 많은 직업을 섭렵하고 계신 이원규 선생님의 나무와 별에 대한 말들은 언제나 신기하고 다정합니다.
나도 우리들도 나무도 모두 우주에 있는 별들이 만들어낸 자식인데
나와 우리의 삶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건 나무입니다.
산야초반 수업의 시작은 하동군 우계저수지 아래 이팝나무였습니다. 이원규 선생님의 시를 올려 봅니다.
*이팝나무 졸업식*
하도 배가 고파서
하동군 적량면 우계저수지 아래
이팝나무 학교에 들어갔다.
3년 전 이팝나무 입학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따금 서당골의 물까치 떼가 날아들고
서어나무 소쩍새가 찾아와 한참을 울다가
저수지에서 물배만 채웠다
차라리 함박눈이 오길 기다렸지만
남도의 겨울 청보리는 더디 자라고
모내기를 하려면 아직 멀었다
적량면 우계저수지 아래 이팝나무 어르신
300년째 내리 고봉밥을
보릿고개 환한 밥상을 차렸지만
여전히 배고픈 영혼의 나 홀로 제자였다
새벽안개 속의 이팝나무 졸업식
우등생은 아니지만 개근상을 받았으니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녀는 감옥에 가고
착한 머슴 하나 그 자리에 모시던 날이었다
한 나무의 제자가 되었다가
아직 어린 이팝나무로 하산하는 일
한 사람에게 입학하고
한 여인을 졸업하는 일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끝>
비가 내린 후라 먹구름은 가시지 않고 바람은 간헐적으로 강하게 불었습니다. 이팝나무 아래서 총무님이 사오신 김밥을 별천지 하동 카페에서 먹기로 하고 오후 수업은 영상과 함께 ........
이원규 선생님이 만든 많은 영상 중에,
별과 반디불과 꽃과 나무들 일부를 봤습니다.
지구 생명을 잉태하고 낳은 별 아래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살고 있는 자식들의 아름다움!
이원규 선생님이 수업 끝 무렵 낭독하신 시 한편을 올립니다.
*백 살 오동나무 아래 미옥씨*
별봉산 비탈에 나의 ‘별나무’ 한 그루
백 살 오동나무 어르신이 연보라 꽃을 피우면
시묘살이하듯이 아예 텐트를 치고 쪼그려 않는다
밤새 갈비뼈 사이를 건너다니는 소쩍새들
내 몸속에서 대체 몇 마리가 한꺼번에 우는지
오동꽃 다 질 때까지 어금니 앙다물고 별빛을 기다린다
비구름 저기압에 으스스 뼈가 시리거나
달빛이 너무 밝아 그렁그렁 밤이슬이 맺혀도
괜찮다 나쁘지 않다 하늘의 시간
“별 볼 일 없는 세상에 별을 보여 드립니다-”
칠 년째 천시(天時)의 별나무를 기다렸지만
그날 밤 이후 단 한 번도 돌아본 적이 없으니
오동동 모르는 당신, 오동동 아직은 몰라주는 당신
다시 내년 오월의 봄밤이면
오동나무 위로 문득 봉황새가 날아오시려나
견우직녀 남두육성 은하수가 내려오시려나
백 살 오동나무 아래 잘 모르는 가족묘지
봉분도 없이 막 이사를 온 수목장의 검은 돌 하나
오지마을 별빛 보전지역의 산비탈에
새벽 1시45분 연보라 오동꽃이 다시 피어날 때
난생처음 만난 여인, 백 살 오동나무 아래 미옥 씨
1966년 10월13일 생, 2017년 10월17일 졸
나보다 네 살 어린 아직 젊은 미옥 씨
나처럼 목요일 태어나
51년 4일 동안 살다가 화요일에 죽은 미옥 씨
살아서도 오동나무 장롱 하나 없이
죽어서도 오동나무 관 속의 칠성판에 누워보지 못하고
해마다 한 살씩 늙어가는 동안
해마다 한 살씩 나보다 더 어려지는 미옥 씨
아무런 눈짓도 없이 섣부른 약속도 없이
소쩍새 울음 뿌리치고 사뿐 북두칠성에 올라앉은 미옥 씨
마치 전생의 아내인 듯 내생의 남편인 듯...........<끝>
다시 북두칠성으로 올라앉는 건 생명의 시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기쁨도 슬픔도 애절함도 모두 다시 無로........ 이원규 선생님 덕택에 산야초반 수업 감상이 철학적으로 흐르는 것 같다는.......^^
산야초반 수업에 동참해서 재미난 일화도 들려주신 김미화선생님(쓰리랑 부부, 순악질여사)과 그 부군께 감사를 드립니다.
수업이 끝났지만 아쉬움(?)이 남아 모두 두 대의 차로 나눠 타고 오동나무를 보러 백운산에 갔습니다. 오동나무 꽃의 향기가 이토록 좋고 진한지 산야초반 5년 만에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백운산 어치계곡에 있는 구시폭포를 보고 정식 수업을 마쳤습니다.
얼마 전 지리산 자락에서 산불이 났었고 많은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지리산의 나무도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2025년 5월 9일 하동산불에 화마를 입은 지 49일 째, 새싹이 난 두양리 천년 은행나무 어르신의 부활을 기원하며 쓴 이원규 선생님의 시를 한편 더 올립니다. 49제 하며 보내려 했는데 죽어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북두칠성으로 가지 않으시고, 태양별 쫄따구 지구의 속살을 꼭 움켜쥐려 다시 탄생........^^
*지금이 바로 그날이다
-다시 천년을 시작하는 은행나무 어르신의 경고 ................. 이원규님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1천 년 전에 돌아가신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 장군도 놀라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셨으니..........
나 여기 이 자리에 천 년 동안 서 있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다 살아보고
임진왜란 동학혁명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다 겪으며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경남 하동군 두양리 우방산 언덕 바로 이곳에서
너희들의 인간지사 살림살이와 속사정을 다 지켜보며
내 몸속 깊이 겹겹의 나이테를 새겼다
위로는 일월성신을 떠받들고
아래로는 이 나라 이 민족의 땅과 지리산의 속마음
지구의 속살을 꽉 움켜쥐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천년을 살아남아도 단 하루를 버티기 힘들 때가 있더라
지금이 바로 그 날이다
천년을 살아도 백년을 사는 일이 갈수록 막막하고
천년을 살아도 겨우 십년을 사는 일이 더 혹독하고
천년을 살아남아도 단 일년은 고사하고
단 하루를 더 사는 일이 이토록 처참하기만 하니
나 또한 죽어서 다시 살아야겠다
마을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꽃상여 요령 소리도 없이 곧바로 화장터로 가더라
보릿고개 넘고 넘어 먹고 살 만한데도
어느새 오직 돈밖에 모르는 괴물들이 되었구나
지난 백 년 동안 인류의 탐욕이 도를 넘었으니
지리산의 심장과 강의 내장과 바다의 너른 품을 파헤치며
허겁지겁 경제도 법도 모두 동반자살뿐
전쟁이 끝나면 더 큰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천년 만에 이런 공명의 불지옥은 또 처음이다
온 동네 온 산에 산불을 지르고
온 나라 온 지구에 인류 종말의 화마를 자초하니
살아 천년 어찌 나 혼자만 청청 살아남겠느냐
죄지은 자들의 참회는 고사하고
눈썹 하나 머리카락 하나 태우지 않으니
내가 대신 소신공양을 하였을 뿐
너무 슬퍼하지 마라
우리 이제 제대로 죽어서 다시 살자
온갖 탐욕에 찌든 몸과 마음 다 불살라 버리고
아직 어린 새싹으로, 첫 마음으 연초록 새순으로 다시 살자
나이 먹을수록 속을 텅텅 비우고
애간장이 녹다 못해 마침내 시커멓게 탄 내 속가슴을 보아라
이제야 알겠느냐
그래도 모르고 아직도 모르겠느냐
정녕 그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겠느냐
천년을 살아도 죽어 다시 살아나야 할 때가 있느니라
그렇다. 지금이 바로 그날이다
첫댓글 이번 수업은 이팝나무 한 그루가 다 한 듯 합니다. 세찬 바람에 흩날리던 하얀 꽃잎들을 향해 뛰어가던 우리들 기억하나요? ㅎ
그래도 "꽃이 지는 날은 울고 싶어라"라는 시구가 더 생각납니다.
카메오 출연해주신 김미화님과 동반자분 만나서 반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