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발 200m 물망골 계곡상류의 열석 300기를 표식하여 둡니다. 돌담은 움집터일수도?
장산의 열석을 3,000기로 어림하는 것은 고인돌 70여개소 500기, 환상열석 30여곳 500기, 선돌 100여곳 1,000기, 그리고 들여쌓은 돌단 100곳의 석붕 1,000기를 합하여 3,000기로 말하는 것이다. 이곳외 3~4곳의 열석 1,000여기가 더 있음도 알리고자 한다.
석붕의 바윗돌 앞에 황토가 부풀어 있다면 땅벌의 보금자리로 위험하니 접근 하지않기를 바란다. 땅벌가족이 겨울나기 준비중......
‘자연석이요 절리의 단층으로 사람이 이용하지는 않았다’와 ‘사람이 다듬었다’ 사이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다. 인접한곳에서 채석하고 자르고 운반한 결과의 흔적 뚜렷이 남아있다. 모서리가 둥글어질 정도의 풍화와 생물 침식의 영향도 받았었다. 원시인들이 자연 돌을 길잡이나 생활터로 활용했던 흔적일테지만 3천년전 일 누가 알겠는가? 쌓은 돌담은 문명시대 인간들이 또 손댔다는 흔적이다. 누군가 본적 있는가가 아니라, 이 많은 돌을 의도적으로 옮겼다는 증거가 충분하기에 선입견 접고 조사해보라 말하고 싶다.
제의적 공간으로서 흔적이다. 석열들은 제의장으로 출입하는 길 안내의 표시석들이다. 땅속의 경계석들은 무덤이나 제의장의 범위를 설정한 영역인데 풍우에 묻혔다. 돌의 숫자로 보아 부족민의 숫자를 50명 이상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장산국 시절 어느 족장의 무덤과 제의장을 함께했던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산국 부족 존속기간을 300년으로 생각해본다.
그들의 생활상중 무덤과 제의장 축조가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였을까? 돌 모우는데만 몇년을 보냈었고.......
첫댓글 장산의 문화유적들 조사라도 시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상산마고당의 조상신 무덤은 어디에 있으며, 고선옥과 그 자식들이 살았던곳은 어디일까?
장산 열석은 길 안내 표시의 청동기시대 선사유적임이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