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6주일 강론(나해) 2024년
잔해더미 속 모성애 死神도 고개 숙이다!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지진의 와중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잔해더미 속 모성애 死神도 고개 숙이다.”라는 동아일보 2008년 5월 20일자 보도는 사랑의 소중함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보배야, 만약 네가 살아남으면 꼭 기억해 다오, 내가 널 사랑했다고.”
중국 쓰촨(四川) 성 베이촨(北川)의 무너진 가옥에서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던 구조대원들은 13일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품에 안고 엎드려 있는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죽은 엄마의 품에 안겨 있던 젖먹이는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던 의료진은 포대기 안에서 휴대전화를 발견했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이 한 줄의 문자 메시지가 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이 메시지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고 19일 신화통신은 전했습니다.
지진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식을 지켜낸 모정(母情)들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같은 날 두장옌(都江堰) 시의 한 무너진 주택가. 구조 활동을 벌이던 10여 명의 구조대원은 한 여성의 시신 앞에 갑자기 얼어붙었습니다. 젊은 여성이 윗옷을 머리 위로 벗어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덮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생후 100일가량 된 딸아이를 안고 숨져 있었던 것. 아이는 불그스레한 얼굴로 죽은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있었습니다.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신화통신에 “젖먹이 엄마는 자기가 죽더라도 얼마 동안은 아이가 젖을 먹고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고 사랑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 제 6주일 강론을 준비하면서 과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 속에 살아가고 있고 그 덕분에 각자가 그 나름대로 인간으로서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다. 저 또한 이 사랑을 어머니로부터 체험했고 배웠다. 저의 어머님은 2008년 6월 6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님에 대한 추억이 많이 있지만 몇 가지만 나누고자 한다. 아마 제가 원주에서 사목국장을 할 때 어느 날 아침에 주교관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다가 인대가 나가서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이 소식을 들으시고 즉시 원주 주교관으로 오셔서 제가 있던 이층 방으로 오시더니 제 발을 어루만지시면서 저를 위로해 주시던 생각이 난다. 그때 눈물이 핑 도는 걸 느꼈다. 어머님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이런 거로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과연 나의 신자들의 아픈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느꼈던 그런 마음으로 임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특히 병자봉성체를 할 때나 환자 방문을 할 때 습관적으로 마지못해 하지 않았는지 뉘우치게 된다. 사랑은 남을 위해서 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해야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어머님 살아계실 때 집에 내려가면 어머님과 같은 방에서 자게 될 때가 많았다. 아침에 어머님은 저보다 먼저 새벽에 일어나셔서 묵주의 기도도 하시고 여러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아들 신부가 거룩한 사제가 되도록 늘 깨어 기도하시는 모습이 제가 먼 아프리카 땅 잠비아로 가서 피데이 도눔 선교사로서 지내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부활 제5주일의 ‘포도나무의 비유’에 이어 오늘은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는 주님의 당부 말씀을 듣게 된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할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일그러져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특히 성모 성월을 지내면서 가정의 달, 청소년의 달을 함께 보내고 있는 우리는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깊은 사랑으로 제 모습을 찾아야 할 가정이 부부간의 다툼과 불화 또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부재로 참된 쉼터요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사랑 때문에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오셨고, 사랑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으신 끝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 사랑을 체험하신 분이셨기에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랑은 모든 것에 대한 시작이자 마침이었고, 이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모든 답이 사랑에 있었기에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강조하신 것이다. 이 사랑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없애고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어머님이 제게 보여준 사랑, 그것을 바탕으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잠비아에서 펼쳤고 지금은 은퇴하여 멜키체덱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전하고자 하는 이 사랑을 심어주신 분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저의 어머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난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고유한 환경에서 느끼고 체험한 바를 몸으로 실천함으로써 썩지 않는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성당 안에 머물러서 기도만 하는 데에 있지 않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불의에 항거하는 적극적인 모습 안에 있다. 그래서 저는 특히 매주 수요일엔 한국 과거사(집단학살) 진실규명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미사 봉헌하고 있고 그리고 매주 목요일엔 삼척블루파워 플랜트(석탄화력 발전소) 건설반대미사를 지내고 있다. 아울러 매주 토요일엔 세계평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제2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사랑의 하느님은 모든 이들이 구원의 세례를 받고 하느님과 형제들 안에서 참 기쁨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은 이방인이었던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의 방문을 받아 대화를 나누고 율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구원받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모든 이를 위해 열려진 하느님의 나라이므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선업과 의로운 일들을 통해서 알려야 할 책임이 우리 각자에게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 의로운 일에 대한 투신과 정열은 마침내 하느님께로 향한다. 모든 이가 억울함 없이 골고루 사이좋게 사는 사회, 부자와 가난한 자의 빈부 격차가 없고 많이 배운 자보다 덜 배운 자가 차별 대우를 당하지 않는 진정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열의야말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이 사랑의 징표로서 당신 몸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십자가에 당신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늘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며 그분 사랑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작은 일에서부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사랑이 넘쳐흐르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