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에 내가 부산에 살던 시절 실제로 있었던 그 이야기.... 지금은 해체된 초딩 동창 카페에
올렸더니 너도 나도 퍼나르기 시작해서 전국방방곡곡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몰이 하게된
것입니다. 급기야 인천 버스 이야기 서울 버스 이야기 등 등, 패러디판이 난무할 정도였습니다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버스 이야기 감상 포인트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 하는 재미입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전에 있죠. 우리가 흔히 드라마틱하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실제로 있었던 것을 꽁트 형식으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어제 같은 그 일이 벌써 23..4년 세월의 담벼락을 훌쩍 뛰어 넘었네요.
추억의 버스 이야기 젬 있게 읽어 주셔요
꽁트
버스 이야기 / 김성찬
92년 당시 저는 서른 넷의 노총각이였고 부산에서 10년 쨰 자취생활을
하면서 해운대 근방 모 자동차 부품 하청 업체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황당한 일이 생기던 그날 저녁 퇴근길...배가 고파서 얼른 자취방 가서 라
면 끓여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88번 버스를 탔습니다.
'차야 어서가라!' 하며
먹을 라면 종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탄 88번과 뒤에 오던 50번 버스는 해운대- 감만동-서면을 거쳐서 초읍동 어린
이대공원 종점으로 가는 노선이었습니다. 노선이 같았기에 두 버스는 평소에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50번 88번 두 버스의 앞지르기 레이싱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버스는 최대한 출력을 높혀 선두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레이싱을 벌이던 중 신호등
앞에서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88번 버스와 50번 버스는 거의 동시에 문을 열더니
"상식을 지키자! 반칙 하지 말자!"
"내가 잘 했고 니가 못 했다"
"내똥 굵고 니 똥 가늘다"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 하면서 서서히 강도를 높히며 피 튀기는 말 싸움에 돌입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 빨에서 밀린 우리의 88번 아저씨는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하고 50번 버스로 올라가
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 아저씨 화이팅!'곡 이겨욧!'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하며 응원 했는데,
'에공'.....
신호가 바뀌자 50번 버스가 88번 기사 아저씨를 태우고 출발 해 버린 것이였습니다.
'헐!!'..
88번 버스 승객들은 그 황당함에 잠시 멍해졌습니다.
4차선 대로 1차선에 세워진 버스 안에서 '에공'울 연발하던 승객들은 '88번 아저씨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는데.... 10분 정도 지났을까! 88번 기사 아저씨가 유엔묘지 로타리를
돌아 열심히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 벌개가지고 운전석에 앉자 마자
연신 뒤돌아보며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발하며 땀 삐질 삐질 흘리던 우리의 88번 아저씨 너무 측은해 보였습니다.
88번 아저씨는 패배한 것이였습니다
다시 버스는 출발 했습니다 피 튀기던 말 싸움을 할 때만 해도
'사나이 타는 이 한 목숨 정의를 위해 라면 기꺼이 바칠 수 있다'
용맹스러운 전사 같은 인상을 받았었는데...너무 측은 해서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잠시후, 싸이랜을 울리며 경찰차가 88번 옆에 바싹 따라 붙었습니다.경찰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우렁찬 목소리...
"88번 서요!"
"88번 가로 데세요!" 하자
88번 아저씨는 경찰관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습니다.50번 버스 기사에게 깨지고 또
교통위반까지 해서 경찰에게 딱지 떼이고...'오늘 하루 완전히 조졌네.....불쌍한 우리
'88아저씨 힘 내세요!' 버스에 타고 있는 다른 분들도 아마 제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
입니다.
"50번 버스 키 주세요!"
경찰의 이 한마디에 버스 승객들은 와!! 함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 박수
를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88번 아저씨는 50번에 올라타서 차 키를 빼앗아 온 것입니다
역전패를 당한 50번 기사 아저씨는 입에 콧김을 뿜어내며 씩-씩- 거리며
경찰관 뒤에 서 있었는 모습이 성난 황소와 너무 흡사했습니다.
시내 버스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88번 아저씨
'시내 버스 질서확립 위해서는 사나이 타는 이 한목숨 바친다! '
용맹무상한 88아저씨를 떠올리며 집에 도착한 나는 라면 먹으면서
50번 기사 아저씨 콧김을 뿜어내며 씩-씩- 거리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록 더욱 웃음의 강도가 높아져서
라면이 불어터질 때 까지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습니다.
24년 전이니까 참 오래된 이야기 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