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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긴 휴일이 이어졌다. 다가온 10월 역시 공휴일이 많다. 올해 급작스럽게 10월 1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1일, 3일, 9일 등 총 3일이 공휴일이다. 많은 사람에게 공휴일은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동안 쌓인 피로를 푸는 기회다. 그런 공휴일이 하루가 늘어났으니 호재라고 부를 이도 있겠다.
그러나 중증 1인 가구 시각장애인이나 다른 중증 장애인들에게 공휴일은 그리 즐겁지 않다. 공휴일이 되면 자신을 보조해 줄 활동지원사도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지만, 중증 장애인인 나로서는 그로 인해 그들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일상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다.
특히 1인 가구에 살고 있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활동지원사의 부재는 곧 일상생활의 마비를 의미한다. 크고 작은 일 무엇 하나도 혼자 해결하기 힘들어진다. 만약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사는 중증 장애인이라면, 이러한 문제는 더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
중증 장애인에게 공휴일은 그림자와 같다. ⓒ 조현대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공휴일에 문을 닫는 식당이 많더라도, 배달 음식으로 그나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거나 배달하지 않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필자의 지인은 중증 시각장애인으로 시내 중심에서 택시로 40분이나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그를 보조하는 활동지원사는 단 한 명이며, 그마저도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자리를 비운다. 그래서 공휴일 전날에는 빵과 우유를 잔뜩 사두고 그것으로 끼니를 때운다. 심하면 이틀간 빵만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비장애인이라면 요리가 귀찮을 때 간단히 끓여 먹는 라면조차 중증 시각장애인에게는 쉽지 않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그의 활동지원사가 오지 않아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큰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활동지원사 없이 병원은 커녕 약국에도 가기 어려워 겨우 동네 이웃에게 부탁해 약을 구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활동지원사가 오자 그제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크리스마스의 밤이 그에게는 따갑고 쓰린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중증 장애인 1인 가구에서 비일비재하다. 필자 또한 혼자 살면서 공휴일이 반가운 적이 없다. 공휴일에 활동지원사가 오지 않으면 나가는 것은 물론 당장 오늘 무엇을 먹어야 할지부터 걱정이다.
지난 5월 셋째 주 일요일을 떠올리면 여전히 두렵다. 활동지원사가 한 명도 올 수 없었다. 그런데 목이 말랐다. 일하던 기관에서 선물로 받은, 도자기로 된 컵에 물을 따라 마시려고 하던 중이었다. 잠깐 조리대에 올려둔 것을 실수로 떨어뜨려 컵이 산산조각이 났다. 컵이 깨져 여기저기 튀었을 텐데, 그 파편을 밟을까 두려워 몸이 굳었다. 겨우 휴대전화를 찾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 직원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오늘은 활동지원사가 없습니까?”
“예, 일요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공휴일이라고 해도 혼자 장애인을 방치하면 어떡해요?”
장애인의 일상은 공휴일이 되면 일순간 마비된다. 그리고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심각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대비할 수 있는 제도는 마련되어 있다. 특히 도시의 경우 구별로 장애인 가족 지원센터가 있거나, 다쳤을 때 단시간 이용할 수 있는 긴급 돌봄 서비스 등의 2차 제도가 있지만, 이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필자가 정말 필요할 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도 기관에서 돌아온 대답은 항상 “보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긴급한 상황을 위한 서비스를 긴급한 상황에 사용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모순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휴일에도 활동지원사의 근무를 보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공휴일에는 1.5배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높은 시급을 제공해 활동지원사가 공휴일 근무를 기피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장애인 가족 지원센터가 제공하는 서비스 이용 시간도 현재는 연 60시간 정도로, 3일도 안 되는 시간에 불과하다. 최소 2~3배의 시간이 책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갑작스럽게 10월 1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누군가는 웃고 기뻐하겠지만, 누군가는 끝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공휴일이 말 그대로 모두가 함께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진정한 휴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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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조현대 hyun85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