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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무늬, 혹은 발효(醱酵)의 미학
―현순애, 「붉은 광장이 소란하다」의 시세계
황치복(문학평론가)
시로 쓴 시론들
2022년 계간지 <애지>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온 현순애 시인의 첫 시집이다. 등단 경력이 짧음에 불구하고 이른 처녀 시집을 펴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시인이 얼마나 왕성한 창작력과 시적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실증하고 있다. 또한 첫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시상의 전개에 생경함이 없고, 느긋한 어조와 안정된 보폭, 그리고 정갈한 시적 형식과 잘 빚은 항아리 같은 형상화 등의 특징은 시인이 그동안 얼마나 숙련된 습작 과정을 거쳤는지를 방증해주고 있다.
신인으로서의 시인의 시적 경향과 방향성을 조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인의 시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는 일이다. 시에 대한 생각과 관점 등은 시인의 시적 관심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시인의 시적 방향성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간의 축적이 일으키는 발효의 미학이라든가, 그것들이 어떤 무늬와 결을 이루면서 형성해내는 예술적 경지에 대한 깊은 시적 사유와 형상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이미 시로 쓴 시론이라고 할 있는 메타시에 맹아적으로 그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메타시의 세계를 잠깐 점검해 보고 논의를 이어가 보자.
아직 나는 그대를 모릅니다
바람결에 전해지는 깊고 그윽한 향
그대 어떤 꽃이기에
눈부신 후광 세상 밝히는지
혼자의 사랑도 커 갑니다
깊은 홀릭, 그대 알기 그 전부터
숙명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염색체 하나쯤 갖고
태어났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대 알고 싶어, 그대 품고 싶어
신열에 들떠 사랑앓이합니다
새벽안개 뿌연 오솔길 따라가면
그대 만날 것 같아 발자국마다
그대라는 꽃씨 뿌리며 갑니다
그대는 꽃이 되고, 나는 나비 되어
그대의 꽃술에 얼굴 묻고
죽어도 좋을 나는
별 총총히 수놓은 순백의 드레스 입고
사랑의 세레나데 부릅니다
먼 곳에서 반짝이는 당신
아직도 나는 그대를 잘 모릅니다.
―「시에 입문하다」, 전문
연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시에서 우리는 시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깊은 홀릭”이라든가 “숙명”, 그리고 “신열”이라든가 “사랑앓이” 등의 시어와 표현들이 시에 대한 시인의 절실한 사랑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그대는 꽃이 되고, 나는 나비 되어”라는 표현을 보면 시와 함께 떼려야 뗄 수 없이 엮여 있는 운명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별 총총히 수놓은 순백의 드레스 입고”라는 구절에 유의해 보면 시인은 시(詩)라는 말의 사원을 지키는 순결한 사제가 되어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도 있다.
시인이 시에 대해서 이처럼 맹목적이라 할 만한 열정과 사랑을 쏟는 것은 그것이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결에 전해지는 깊고 그윽한 향”이라든가 “눈부신 후광” 등의 표현들이 시인이 생각하는 시의 가치와 의의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에는 시가 복욱한 향기를 통해서 세상을 정화하고 아름답게 한다는 것, 밝은 후광을 통해서 시는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어준다는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 시인이 시에 대해 절대적인 사랑과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의 가치 때문일 것인데, 그렇다면 시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역능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일까 궁금해진다.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난다
손등에 번지는 검버섯
향기 잃은 꽃의 표정으로
오래된 사진첩 뒤적인다
앨범 속 마른 꽃 한 아름
빛바랜 사진 속의 생생한 추억
물기 안으로 머금고
갈피마다 압화 되어 있다
잘 마르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절정의 시절이 한순간에 접혀
제 빛깔 진하게 껴안고
곱게 말라 가는 일이란
내 안의 물도 조금씩 말라가고 있다
물방울 싱그럽게 튕겨내던 꽃잎 위엔
버석거리는 세월 흐르고
마른 눈가엔 눈물만 고였다
곱게 마르고 싶다
오래된 시집 갈피 속에
시를 품고 있는 꽃잎처럼
―「마른 꽃」, 전문
엄밀히 말해서 이 작품을 시에 대한 메타시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란 어떤 것이며, 시가 어찌하여 앞서 말한 그러한 가치와 아우라를 지니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상을 제공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마르는 일’이다. 마른다는 것은 물론 배어 있던 물기가 다 날아가서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기가 없어지고 마르는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은 사라지는 현상도 그렇지만 잔존하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즉 마른다는 것은 물기가 없어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은유적인 의미에서 어떤 욕심이라든가 욕망, 혹은 정동의 과잉 같은 현상이 사라지고 진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마른다는 것은 그 안에 한때의 시간이 지닌 의미를 간직하는 것이기도 한데, 시인이 “빛바랜 사진 속의 생생한 추억”이라든가 “절정의 시절이 한순간에 접혀/ 제 빛깔 진하게 껴안고/ 곱게 말라 가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마른다는 현상이 사라지고 잔존하는 가치를 응축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압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물론 물기가 빠진 눌러진 형상이기도 하지만, 또한 어떤 가치를 압축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시인은 “곱게 마르고 싶다”고 고백하면서 하나의 이상적인 형상을 제시하는데, “오래된 시집 갈피 속에/ 시를 품고 있는 꽃잎”이라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시집의 갈피 속에 시를 품고 있는 꽃잎이란 압화일 것인데, 그것이 시를 품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시집의 갈피 속에 담겨 있는 압화이기에 시를 품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추억과 절정의 한 순간을 응축해 놓고 있기에 시를 품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로 해석할 때 우리는 시인의 시에 대한 관점을 추론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시간의 축적, 혹은 시간의 파괴적 힘에 대한 가치의 보존이 시의 동력이라는 의미를 추출할 수 있다. 다음에 다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시간의 축적과 가치의 보존은 어떤 예술적 형상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메타시를 한편 더 읽어본다.
기타 현 울리고 나온 파장
손톱 밑 도톰한 살 비집고
지문에 기대어 옹이로 눕는 오후
어느 숲 가문 좋은 나무
한세월 속살 비워내
기타 울림통으로 내어주고
겹겹이 누워있던 노래 일어나
덧칠된 선율 따라 굴러간다
너른 들판 햇살 푸른 그늘
엉덩이 지문 수런대는 저녁 오면
어둡고 추운 길 통과한 시간들
어깨 포갠 채 둥글게 눕는다
산다는 것은
쉼 없이 지문 늘려가는 일
밤하늘 반짝이는 별 하나
낮달 뜨던 언덕 베고
별이 시가 되고
시가 별이 되는 꿈을 꾼다.
―「꿈꾸는 나이테」, 전문
시적 비약이 심해서 그 시적 논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꿈꾸는 나이테”에서 ‘나이테’라는 이미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때로는 ‘지문’으로 혹은 ‘옹이’의 이미지로 변모하기도 하지만, 그것의 본질적인 속성은 “한세월 속살 비워내”라든가 “어둡고 추운 길 통과한 시간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을 응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다는 것은/ 쉼 없이 지문 늘려가는 일”이라는 경구에서도 우리는 나이테가 시간의 담지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문처럼 어떤 무늬와 질서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나이테는 방사형의 물무늬와 같은 결을 이루고 있는 테인데, 다른 말로 연륜(年輪)이라고도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의 응축이기도 하다. 시간을 응축하는 무늬, 혹은 물결무늬로서의 나이테가 “기타 울림통”이 되어 “겹겹이 누워있던 노래”가 되고 “덧칠된 선율”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코스모스로서 화음(harmony)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러한 시상의 전개에 이어서 별을 등장시켜 “별이 시가 되고/ 시가 별이 되는 꿈을 꾼다”는 진술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에서 꿈을 꾸는 주체가 나이테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시간의 축적과 무늬, 그리고 화음이라든가 시라는 것이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과 현실 속에서 음악이라든가 시, 혹은 회화에 대한 예술적 형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의 근본적인 충동 가운데 하나인 듯한데, 이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도록 하고 시간의 축적이 지닌 시적 의미에 대해서 좀더 천착해 보자. 시인에게 시간의 축적은 시적인 것을 생성하는 기제로 작동하는데, 시인이 평가하는 높은 가치와 의미가 거기에서 산출되기 때문이다.
2. 발효와 숙성, 혹은 삭힘의 시학
바람 넘나드는 문간방 처마
그늘에 매달려 아픔 말리고 있다
허공에 상처 비벼
껍질 만드는 일이다
흔들어대는 바람도
손 놓아버린 감나무 가지도 야속해
저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을 때
괜찮다, 괜찮다
제격인 찬바람과
생각의 모서리에서 만난 햇살이 다독였다
배고픈 새도 염탐하는 곶감
벌써 일주일
눈물 빠져 자신을 추스르고 있다
서리 내린 듯 하얀 분 피워 올리는 곶감
뭉친 근육 주무르듯
상처 난 속내 주무르고 있다.
―「곶감을 꿈꾸다」, 전문
‘곶감’이란 말린 감인데, 여기서 우리는 앞서 「마른 꽃」에서 추출했던 시간의 응축으로서의 이미지, 그리고 그에 따라 달착지근한 맛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성숙과 숙성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곶감은 그 자체로 시인에세 시적인 것을 함축하고 있는 제재인 셈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곶감의 이미지에서 치유와 정화의 가치를 읽어내고 있다. “그늘에 매달려 아픔 말리고 있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허공에 상처 비벼/ 껍질 만드는 일이다”라는 구절을 보면 감이 곶감이 되는 과정은 상처에 딱지가 입어서 아무는 것과 같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상처는 육신의 상처 외에도 “상처 난 속내”라든가 “생각의 모서리” 등의 표현을 보면 마음의 상처도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곶감이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가 “서리 내린 듯 하연 분 피워 올리는 곶감”이라는 표현으로 귀결되고 있다.
곶감이 되는 과정은 “그늘에 매달려 아픔 말리고 있다”라든가 “생각의 모서리 만난 햇살이 다독였다”, 그리고 “눈물 빠져 자신을 추스르고 있다” 등의 표현에 주의해 보면, 바로 아픔과 분노, 울분과 서러움을 삭히고 달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곶감이 되는 과정은 그늘에 아픔을 말리기도 하고, 햇살로 모난 생각을 다독이기도 하며, 눈물로 자신을 위로하는 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현순애 시인의 시에서 시간의 누적, 혹은 시간의 축적은 단순히 시간의 더께가 쌓여서 시간의 층과 켜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삭히고 발효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인데, 다음 작품이 이를 더욱 선명히 보여준다.
붉은 광장이 소란하다
서리꽃 피어도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세파에 맞서는 저 푸른 배추
여민 옷깃 야무지다
무더기로 연행되어 생살 파고드는 짠물 고문에
의식은 마디마디 풀려 너덜너덜하지만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그전부터 내려온 내력이다
각지에서 올라온 성깔 맵고 짠 것들
비록 양념이지만 힘 보태야 한다며 술렁인다
한목소리 내겠다며, 한통속 되겠다며
핏줄 붉게 돋은 고춧가루
최루가스에도 눈물 참고 견뎌온 대파 양파
무며, 당근이며, 갓이며
핍박 심할수록 더욱 뭉쳐지는 단단한 결속
모엽의 포로 되어 깊은 독에 갇히어도
옹기종기 기대앉아 서로를 다독인다
저들로 차려질 연대의 밥상
세상 눈물 나게 깊은 맛 나겠다.
―「김장」, 전문
이 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안(詩眼)은 “깊은 맛”이라는 표현이 될 것이다. 김장 김치가 지니게 되는 “깊은 맛”은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맛일 터인데, 그윽하다, 아득하다. 은근하다, 간절하다, 맛깔스럽다 등이 다양한 어휘가 동원되어도 그 “깊은 맛”을 다 형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인은 간단히 표현해서 “세상 눈물 나게”하는 맛이라고 형용하고 있으나, 그것이 어떤 맛인지는 다시금 어려운 곤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맛이 김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시적 공간에서 김장을 담그는 과정은 매우 어렵고 험난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먼저 재료가 되는 배추는 서리꽃을 맞으며 세파에 맞서는 시련을 이겨낸 것이며, 거기다 “생살 파고드는 짠물 고문”까지 극복해낸 인고의 산물이다. 그리고 “각지에서 올라온 성깔 맵고 짠 것들”의 단련을 이겨내며, “핏줄 붉게 돋는 고춧가루/ 최루가스에도 눈물 참고 견뎌온” 고난과 고초의 흔적이 새겨진 인고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모엽의 포로 되어 깊은 독에 갇히어도/ 옹기종기 기대앉아 서로를 다독이”며 발효의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이다. “세상 눈물 나게 깊은 맛”은 이러한 시련과 고난의 무수한 고비가 응축되고 발효되어 우러난 맛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시인이 이러한 맛에 대해서 “세상 눈물 나게” 하는 맛이라는 수사를 덧붙인 것은 눈물 겨운 삭힘의 과정을 견딘 과정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발효와 숙성이란 고통과 시련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음 시처럼 구원과 갱신의 과정이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허망한 참사였다
천의 얼굴 한 주식시장
웃음 흘리며 그물 빠져나가는 시간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고통의 몸뚱이만 파닥이다가
부릅뜬 눈동자에 정지된 생 하나
궤짝에 실려
혹한의 골짜기에 부려진다
적절히 채우고 비우지 못했던
생의 오장육부
속절없이 털리어
입 벌린 채 꿰어지고 매달려
공중제비하는
극한의 풀무질에
살점 파고드는
화인 새기는 담금질
뼈와 살 화해 하고 나서야
결 고와져
죽어 다시 사는 부활이다.
―「황태」, 전문
황태란 한 겨울철에 명태를 일교차가 큰 덕장에 걸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스무 번 이상 반복해서 건조시킨 북어를 말한다. 얼고 녹은 과정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황태는 역시 시련과 고난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생성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명태의 변신, 혹은 탈피라는 점에서 거듭남, 혹은 갱신의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시인은 “죽어 다시 사는 부활이다”라고 하면서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명태가 “고통의 몸뚱이만 파닥이다가” “혹한의 골짜기에 부려”져서 “생의 오장육부/ 속절없이 털리고” “극한의 풀무질에/ 살점 파고드는/ 화인 새기는 담금질”의 시련과 고난의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적 논리를 깊이 들여다 보면 황태의 담금질은 “천의 얼굴을 한 주식시장”에서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고통의 몸뚱이”로 전락한 현대인의 세속적 욕망에 대한 치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황태의 시련과 숙성의 과정이 부활이자 갱생인 것은 “뼈와 살”이 “화해하고” “결”이 “고와”졌기 때문이다. 뼈와 살의 생경하고 거친 조합이 어떤 질서와 무늬를 형성하여 ‘결’로 귀결될 때, 존재의 변화가 완성되는 셈인데, 시인은 이를 “죽어 다시 사는,/ 부활이다”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서 갱신의 변화 과정이란 곧 거듭나는 과정이며, 그 결과는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갱신이나 부활이란 주식시장의 탐욕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의 삶이 될 것인데, 그것이 부활과 갱신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과정이란 다시 말하면 얼고 녹는 자연의 순리를 닮아가는 과정이기도 한데, 얼고 녹은 과정은 곧 숙성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숙성이 치유와 갱신의 근원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3. 늙어간다는 것, 혹은 둥글어진다는 것
발효와 숙성의 과정이 곧 시련과 고통의 단련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구원과 갱신의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현순애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 이러한 시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적 정취는 시인의 시간에 대한 사유와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은 현순애 시인에게 숙성과 발효의 과정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떤 무늬라든가 정동의 파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시간이야말로 시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적 제재가 되는 셈이다. 시간이 그려내는 무늬를 읽어보자.
닳고 닳은 것들
봄 깔고 앉아 냉이 캐고 있다
겨우내 굳은 땅 헤집느라
벌겋게 담금질한 몸
뭉툭, 으깨어져도
자맥질은 평생의 업보
흙먼지 뒤집어쓴 등허리
한번 굽어져 펴질 줄 모르고
의기투합하며
함께 살아온 삶
몇 번째 맞는 봄인지
셈 흐려졌어도
맞잡은 손 따뜻했다며
서로를 쓰다듬고 있다.
―「노인과 호미」, 전문
아름다운 작품이다. “노인과 호미” 모두 “닳고 닳은 것들”로서 시간의 흔적이 외피에 새겨진 형상을 하고 있는데, “벌겋게 담금질한 몸”이라는 표현에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견뎌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의 고난과 고통을 함께 견뎌왔기에 서로 닮게 되는데, “흙먼지 뒤집어 쓴 등허리/ 한번 굽어져 펴질 줄 모르고”라는 표현이 그들의 닮은 형상을 묘사하고 있다. “한번 굽어져 펴질 줄 모르고”라는 표현은 시간의 불가역적 흐름을 암시하고 있는데, 시간이 그들의 허리를 구부러지게 했으니 곡선이야말로 시간의 형상인 셈이다.
감동적인 것은 동병상련이라고 하는 것처럼 고난의 시간을 함께 했기에 그들 사이에는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의기투합하며/ 함께 살아온 삶”이라는 표현, 그리고 “맞잡은 손 따뜻했다며/ 서로를 쓰다듬고 있다”는 표현이 노인과 호미 사이에 형성된 정서적 유대감이라든가 공감(sympathy)의 정서를 함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유대와 공감이 “닳고 닳은 것들”이라는 표현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경험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관계를 농밀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내밀한 공감력을 높이는 것이기도 한 셈이다. 다음 작품은 시간이 탈피와 우화의 기제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간신히 까막눈 면한 그녀
육십 바라보는 나이에
수필가로 등단했단다
구로공단 미싱사로 봉제 일 하면서도
배움의 허기 책으로 달랬다는
그녀는 문장 중독자였단다
반지하 방에서 사춘기 보내며
고치 속에서 까맣게 울다
하얗게 혼절하던 나날들
청춘은 번데기가 되었어도
뽀얀 세월 올올이 풀어
초사흗날이면 누에나방 눈썹 같은
가는 문장 하늘에 수 놓으며
아미월로 떠오르곤 했단다.
―「초승달」, 젼문
시적 서사는 매우 간단해서 “구로공단 미싱사로 봉제 일”을 하다가 나이 육십이 다 되어 “수필가로 등단했다”는 여성 수필가가 시적 초점이 되고 있다. 간단한 서사임에도 이 시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수필가가 되기까지 겪어야 했을 온갖 고난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수필가의 꿈을 지니고 살아왔을 시적 인물의 내면의 열망 때문이다. “간신히 까막 눈을 면한 그녀”라는 점, 그리고 “배움의 허기”를 “책으로 달랬다는” 것, “그녀는 문장 중독자였다”는 것 등의 정보 등이 수필가로 등단한 한 여인의 결핍과 열망, 그리고 몰입과 열정이라는 내면의 드라마를 완성하고 있다.
더욱 절묘한 것은 이러한 여성 수필가의 삶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시인은 수필가의 꿈을 지니고 그것을 이룩해 낸 여인에 대해서 “반지하 방에서 사춘기 보내며/ 고치 속에서 까맣게 울”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청춘은 번데기가 되었어도/ 뽀얀 세월 올올히 풀어”라고 하면서 누에가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는 탈피의 과정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류 수필가의 청춘 시절이란 곤충의 애벌레가 성충으로 되는 과정 중에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고 고치 같은 것의 속에 가만히 들어 있는 번데기와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인데, 실제로 곤충의 번데기란 겉보기에는 휴식 상태 같지만 애벌레의 기관과 조직이 성충의 구조로 바뀌는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결국 여성 수필가는 누에나방이 되어 비상하는데, 다시금 수필가의 문장은 하늘에 떠 있는 아미월과 같은 것으로 비유된다. 아미월이란 음력 초사흗날의 달로서, 달의 모양이 누에나방의 눈썹같이 예쁘게 생겼다고 하여 이르는 말이다. 애벌레와 고치, 그리고 번데기 단계를 거쳐 나방이 되는 우화의 과정을 통해서 여성 수필가가 겪었을 우여곡절과 변신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번데기의 변태 과정과 까막눈의 수필가로의 변신 과정을 오버랩하면서 이 시는 아름다운 시간의 무늬를 아로새겨 놓고 있다. 한편 더 읽어보자.
파도가 부려놓고 간 파도리 해변
굴러온 사연 제각각이어도
인고의 세월, 전설은 하나같아
오랜 세월 몸의 파문 다 지워지고야
마침내 몽돌이었다
잘 이겨 냈다고
잘박잘박 다독이며 보듬어
물들이고 물들어 그놈이 그놈 같은 것들이
반들반들 쏙 빼닮은 것들이
가슴 포개고 일렁이는 아득한 것들이
아슴푸레한 기억의 실루엣 덧칠하는
기암괴석에 뿌리내린 소나무 향해
오히려 안부 되묻고 있다
아버지의 스무 살 허리 침식하던 이념의 상흔들
앙상해진 늑골 사이로 빠져나간
황해도 어촌의 고향과 가족
아픔은 아픔으로 굴리고 다독여야 한다는 듯
아버지의 이력 닮은 모서리 깎인 돌들이
해변에 둥글게 모여 서로를 쓰다듬고 있다
몽돌, 해옥이다.
―「몽돌 해변에서」, 전문
몽돌은 물론 모가 나지 않고 둥글 돌을 지칭하는데, 불쑥 튀어나온 모가 없어져 둥글어질 때까지 겪어야 했을 모진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돌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는 “인고의 세월”이라든가 “오랜 세월 몸의 파문 다 지워지고야/ 마침내 몽돌이었다”라는 표현이 몽돌이 겪었어야 할 모진 시간을 암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서리를 둥글게 하는 그러한 시간의 단련이“몸의 파문을 다 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며, 몸의 파문을 다 지운다는 것은 타자들과 닮아지는 것이며 그들과 공감과 유대를 형성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점이다. “물들이고 물들어 그놈이 그놈 같은 것들이”라든가 “반들반들 쏙 빼닮은 것들이”라는 표현이 몽돌이 된다는 것이 곧 타자들과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동질감을 형성하며, 그러한 동질감으로 인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한 동질감과 유대감의 형성은 “가슴 포개고 일렁이는 것들”이라든가 “오히려 안부 되묻고 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타자들에 대한 환대와 위로의 기제로 작동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그러한 세월의 단련이 이데올로기로 모난 세월을 겪은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극심한 대립으로 분열된 우리나라의 파행적인 현대사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시인의 비전이다. “아버지의 스무 살 허리 침식하던 이념의 상흔들”이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이념으로 인해서 모난 생활을 겨험했고 그로 인해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몽돌을 보면서 “아버지의 이력 닮은 모서리 깎인 돌들이/ 해변에 둥글게 모여 서로를 쓰다듬고 있다”고 하면서 세월의 단련이 그러한 아버지의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이념의 폭력적 국면을 무마할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공감과 유대라는 정서적 효과가 현순애 시인이 발견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의 무늬가 될 것이다.
4. 시간과 자연, 혹은 예술의 근원
지금까지 시간이 그려내는 다양한 구상적이고 추상적인 무늬를 중심으로 현순애 시인의 시적 비전을 살펴보았는데, 발효와 숙성의 미학도 그렇지만, 공감과 연대의 시간 미학 또한 매우 의미 있고 아름다운 국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간, 혹은 자연이 빚어내는 예술, 혹은 그것들이 품고 있는 심미적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사실 앞서 분석한 작품들에서도 우리는 심심찮게 자연과 시간 속에서 화음이라든가 무늬의 이미지를 지닌 심미적 형상을 발견하려는 충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연과 시간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 혹은 심미적 가치를 발굴하려는 의지는 현순애 시인의 시적 특징으로 생각되기도 할 만큼 매우 의미 있는 국면이기도 한 셈이다. 대표적으로 다음 작품에서 이러한 경향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지독한 산통의 몸 트림
뭍에서 태어난 해저의 석회암 억만년 서사
제 살점 녹여 쓴 육필자서전이다
물로 세운 지하 궁전
기기묘묘한 형상, 난독의 문장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사나운 물발에 할퀸 상처들
물 숨에 휩쓸린 살점의 무덤들
물멀미 연속무늬가 빚어낸 만물상 공원이다
여린 속살 녹여 만든 에밀레종 같은 것이
가슴과 가슴으로 수수만년 이어갈 파문이다
추신으로 휘갈겨 쓴 화려한 문장 말미
늙는다는 것은,
둥글어지는 일이라고
허공 키우는 일이라고.
―「고수동굴, 오감으로 읽어보면」, 전문
충북 단양에 있는 고수동굴을 보면서 유정하고 그윽한 시적 사유가 펼쳐지고 있다. 고수동굴은 석회 동굴인데, 석회 동굴은 석회암이 물에 녹아서 형성된 천연 동굴이다. 석회암이란 물속에 사는 동물의 뼈나 조개, 그리고 소라 껍데기나 산호와 같이 작은 생물이나 바다에 녹아 있는 석회질 물질이 가라앉아 쌓여 만들어진 암석인데, 다른 암석에 비하여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이런 석회암이 오랜 침식 작용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석회 동굴인데, 고수동굴은 가장 대표적인 석회 동굴 중 하나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러한 자연의 침식작용에 대해서 시인은 “억만년 서사”라든가 “제 살점 녹여 쓴 육필자서전”이라고 하면서 은유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독한 산통의 몸 트림”이라도 하면서 자연이 빚어낸 동굴을 산고를 치르고 탄생시킨 예술품으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석회 동굴에서 시인은 자연의 창작품으로서 예술을 발견하고 있는 셈인데, “기기묘묘한 형상”이라든가 “물멀미 연속무늬가 빚어낸 만물상 공원” 등의 구절들이 그러한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예술품에서 현순애 시인의 특유의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세월의 단련과 고통의 내력을 읽어낸다. “억만년의 서사”라는 표현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세월의 누적이 응축되어 있으며 “사나운 물발에 할퀸 상처들”이라든가 “물 숨에 휩쓸린 살점의 무덤들” 등의 표현들이 자연의 예술품에 깃들어 있는 상처와 고통의 흔적들을 함축하고 있다. 시인이 읽어내는 효과 또한 주목되는데, “가슴과 가슴으로 수수만년 이어갈 파문이다”는 구절이 깊은 공감력을 암시하고 있다면, “늙는다는 것은/ 둥글어지는 일이라고/ 허공 키우는 일이라고”라는 구절은 고수동굴이 전하는 예술적 메시지와 함축적 의미를 시시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조금씩 침윤되어 공간이 생기고 또한 깎이고 다듬어져 둥근 형상이 빚어지는 석회암 동굴을 통해서 둥글어지고 비우는 세상의 지혜를 읽어내고 있는 셈이다.
자연의 섭리나 생태에서 예술적 형상을 발견하려는 것은 시인의 주된 상상력의 구도이기도 한데, 「봄바람」에서는 “봄 물결 출렁이는/ 목덜미 붉은 어린 사월이 초상/ 수채화로 완성하고/홀연히 떠나가는 화공이다”라고 하면서 봄바람이 그려내는 자연의 풍경을 한편의 수채화로 읽어내기도 한다. 또한 제주도 오름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낸 예술가의 생애를 그린 시에서는 “섬을 본 사람은 이내 영혼을 빼앗기고 말아/ 영영 이별 없는 곳으로 가고 말아/ 비바람과 안개에 홀린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갤러리 두모악」)라고 하면서 자연의 예술품에 매료된 예술가의 영혼을 노래하기도 한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심미적 가치를 묘사한 시를 마지막으로 한편 더 읽어본다.
가지런한 매무새 음전한 자태
주름치마 곱게 입고 부르는 노래
낭창한 허리춤에
햇살처럼 퍼지는 음표들
주름진 고랑에서 불어오는
나뭇잎 흔드는 푸른 숨소리
한여름 소낙비 선율이다
지칠 줄 모르는 고갯장단
영혼 없는 노래에도 응달지는 한낮
혼자 읊조리다 산그늘 내려오는
뒤란 댓잎, 살 비벼 우는 소리
뜨거운 사랑도 이제는 식어
열정의 노래 꿈결처럼 아득해도
산그늘 강물에 아른거리는 실루엣
가지 끝에 걸린 노을빛
명창 한 소절이다.
―「쥘부채」, 전문
쥘부채는 접고 펼 수 있는 부채를 통칭한다. 중요한 것은 쥘부채가 많은 주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현순애 시인의 시에서 주름은 시간의 구상적 형상이기도 하다. 이 시의 시적 공간에는 많은 주름의 이미지들이 등장하는데, “주름치마 곱게 입고 부르는 노래”에서의 ‘주름치마’, 그리고 “주름진 고랑에서 불어오는/ 나뭇잎 흔드는 푸른 숨소리”에서의 ‘주름진 고랑’
등이 바로 그러한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주름의 이미지들은 “뜨거운 사랑도 이제 식어”라든가 “가지 끝에 걸린 노을빛” 등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시간의 축적과 흐름이라는 의미를 생성하게 된다. 그러니까 ‘주름’의 이미지는 노인의 ‘주름살’과 같이 세월의 응축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주름치마 곱게 입고 부르는 노래”가 자연의 음향으로 비유되고 있는 대목이 주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주름진 고랑에서 불어오는/ 나뭇잎 흔드는 푸른 숨소리”라든가 “한여름 소낙비 선율이다”, 그리고 “뒤란 댓잎, 살 비벼 우는 소리”등의 구절이 쥘부채를 쥐고 부르는 노래가 자연이 내는 소리를 닮았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가지 끝에 걸린 노을빛/ 명창 한 소절이다”라는 구절에서 연상할 수 있는 소리가 자연의 소리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쥘부채처럼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온 한 인생이 부를 수 있는 판소리의 그것과 같은 오묘한 소리, 혹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는 득음의 소리와 같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주름살의 소리라고도 할 수 있고, 현순애식으로 표현하면 세월이 삭혀낸 소리, 혹은 복욱한 향기를 발산하는 발효의 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현순애 시인의 첫 시집의 그윽하고 아름다운 시세계와 심미적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첫 시집에서 이 정도 깊이의 시적 사유와 형상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연과 시간이 빚어내는 심미적 가치를 발굴하는 심미안도 예사롭지 않지만, 발효와 삭힘의 미학적 효과라든가 시간이 빚어내는 구상적이고 추상적인 예술적 효과로서의 무늬를 그려내는 상상력도 범상치 않다. 무엇보다 과장과 허세가 없는 시적 전개와 균형감각, 그리고 정갈하고 단정한 시적 형상화가 시인의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