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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0
가장 귀한 선물 / 홍문수 목사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는데 나중에 보니까 오히려 잘 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이 감기에 걸려서 주사 한 대 맞으려고 병원에 갔는데, 진찰 과정에서 중병을 발견했습니다. 모르고 있다가 큰일 날 뻔했는데 잘 치료받고 건강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감기 걸린 게 오히려 잘 된 겁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니까 그와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나병 때문에 전전 긍긍하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병도 고치고, 더 나아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전화위복이죠. 아주 잘 된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이렇게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전화위복입니다. 모든 게 잘 됩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잘 났어도 별 게 아닙니다. 아무리 잘 돼도 별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별 수 없는 인간 :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인생
본문에 등장하는 나아만은 가장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없으면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나아만의 프로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여기 보면 나아만에 관해 알 수 있는 몇 가지가 나옵니다.
‘군대 장관’은 요즘으로 말하면 국방부장관입니다.
‘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는 말은 왕에게 총애를 받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말하자면 실세요 복심(腹心)입니다. 특별히 그는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큰 공을 세운 구국 공신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갖추지 않았겠습니까? 부귀영화, 권세, 명예 등 ...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그에 관한 소개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나’(but)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이 중요합니다. 이 말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이 말이 엄연히 붙어 있습니다. 다 좋은데 나병환자였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문둥병은 난치병입니다만, 당시에는 불치병이요 천형으로 인식되던 병입니다. 돈도 있고 권세도 있었으니 얼마나 병을 고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보았겠습니까? 그러나 다 헛수고였고,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입니다. 그는 아마도 수치와 고통,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쯤 되니까 그동안 쌓아올린 권세나 부귀영화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더 허무하고 비참해집니다. “아, 인생이 이런 건가?” 하는 한탄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완벽한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 저것 다 갖춘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뭔가 부족한 게 있고,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별 수 없는 인간’입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모 재벌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분이데, 그분이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흰죽만 먹고 살았습니다. 대통령이 부럽지 않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한 가지 조건 건강을 잃어버리니까 인생이 허망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 인생이 다 그렇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봐도 정말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 솔로몬은 왕 중의 왕 아닙니까? 부귀영화, 권세, 명예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부족한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말년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얼마나 허무하면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벧전1:24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아무리 잘났어도 인생은 풀과 같이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그 영화가 꽃과 같이 화려해 보여도 속절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심지어 약4:14에서는 인생을 가리켜 뭐라고 표현합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 온 세상을 뒤덮는 것 같지만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육신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영혼의 생명입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생명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아만이 얼마나 허망했을지!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모든 것은 갖추고 있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실패하는 것도 비참하지만, 혹시 성공한다 해도 허무합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의 끝은 허무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고 ‘하나님 의존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잘나 봤자 별 수 없는 인생여요, 결국은 죽음을 맞이할 시한부 인생입니다. 마치 ‘뿌리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아직 가지가 무성하고 이파리가 달려 있지만, 꽃이 만발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뿌리가 뽑히면 죽은 겁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이파리가 무성한들, 꽃이 만발한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급선무는 땅 속에 깊이 심겨지는 겁니다. 그래야 생명이 있습니다.
흔히 인생을 살다 보면 부족한 게 생기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것만 붙잡고 씨름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나병이 큰 문제이기는 했지만,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적인 생명의 문제입니다. 나병을 고치기도 힘들지만 고쳐도 다시 병들고 결국은 죽습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위암환자가 속이 쓰리다고 겔포스 몇 봉지 먹는다고 해결되나요? 암세포를 도려내야 생명을 회복할 수 있듯이 예수 십자가 대속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영생을 얻습니다.
[2] 인생 최고의 축복 : 하나님과의 만남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시죠. 그는 나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헛수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가면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왕에게 허락을 받고 떠납니다. 아람 왕은 자기가 총애하는 신하의 문제인지라 많은 선물에다 친서까지 써서 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그 친서를 보고 황당해 합니다.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내라니 내가 무슨 하나님인가? 필시 이를 빌미로 침략하려는 것아야 ... 이렇게 오해하고 전전긍긍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왕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자기에게 보내면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아만 장군 일행이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의 집 앞에 당도했는데도 엘리사는 만나 주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몇 마디 던지고 맙니다. 10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 장군이 큰 모욕감을 느낍니다. 그래도 아람 왕의 복심이요 제2인자인데 이렇게 푸대접을 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안수기도라도 해줄까 싶었는데, 안수기도는커녕 코빼기도 뵈지 않습니다. 그저 벌거벗고 강물에 들어가 씻으라고 말합니다. 화나 났습니다. 물로 치면 아람의 강물이 더 깨끗하고 맑은데, 요단강 흙탕물에 들어가라고 ... ? 씩씩거리면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부하들이 현명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해도 해야 될 판국인데, 그저 목욕을 하라는데 왜 화를 냅니까? 밑져야 본전이지 ... 이렇게 간언합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정말 그래요. 그래서 나아만이 마음을 돌이켜 먹습니다. 정말 이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병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작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순종했더니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14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 장군은 큰 축복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축복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축복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5절.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 ”
나아만은 지금까지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림몬 신이 있었는데 헛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겁니다. 이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이게 바로 최고의 축복입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양에게는 목자만 있으면 다 됩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길을 인도해 주고, 위험에서 보호해 주고 ... 그것도 평생토록 보호하고 축복해 줍니다.
더욱이 이런 사실에 대한 보증까지 있습니다. 그 보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 대속물로 보내주셨는데, 가장 큰 것을 주신 겁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영혼 구원으로부터 온갖 축복과 은혜가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보화를 ‘꾸러미’(package)로 주십니다. 옛날 미국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명화를 수집하는 취미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월남전에 참전합니다. 그 아들은 남달리 용감해서 다른 전우들 구하려다 장렬히 전사합니다. 큰 슬픔 중 한 젊은이가 방문합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아버님, 저는 아드님이 구해준 병사입니다.” 그러고는 보따리를 푸는데, 그 아들의 초상화입니다. “잘 그리진 못했지만 눈물로 그렸습니다. 이 초상화를 아버님께서 소장하십시오.” 그 부자는 눈물 흘리며 받았습니다. 당장 거실에 걸어 놓고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바라봅니다. 그리고 방문자들에게 보여 줍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렀고, 그 부자가 별세합니다. 유언장을 받은 변호사와 경매인이 사후 처리를 합니다. 저택과 명화, 그 외에 재산을 처분하려고 경매를 엽니다. 많은 사람들이 싼 값에 사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초상화를 먼저 꺼내놓고 경매를 시작합니다.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그림을 놓고 사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경매인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주인의 유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는 가운데 10달러에 낙찰이 됩니다. 그 장본인은 그 집의 가난한 정원사였습니다. 그는 주인과 그 아들을 사랑했기에 집을 떠나는 그 순간 섭섭해서 그 초상화를 산 것입니다. 그러자 경매인이 발표합니다. “이것으로써 모든 경매를 마칩니다. 사실은 주인이 이 초상화를 사는 사람에게 모든 재산과 소장품을 물려주라고 했소.”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나아만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니까 불치병도 고치고, 영혼 구원도 받고, 남은 생애도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근본문제가 해결되고 그 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겁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전부이십니다! 이런 사실을 확신한다면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시16:2 “ ...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가장 귀한 선물 : 복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됩니다. 나아만이 최고의 축복을 받았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이름 모를 소녀를 통해서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대개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주인공인 나아만이나 엘리사 선지자에게 앵글을 맞춥니다. 그러다 그 외의 인물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나와 있지 않지만 그 소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 앵글을 맞춰야 합니다.
본문 2~3절을 보시죠.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나아만이 돈도 많고 권세도 있는데 아람 나라에서 유명한 의사들을 다 찾아다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헛수고였고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부엌데기 소녀가 전해준 소식은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복음(福音 Good News)입니다. 그 소녀가 복음을 전해 준 겁니다. 그로 인해 나아만이 하나님을 만났고 병도 고치고 모든 인생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작은 소녀가 복음을 전하니까 아람의 유력인사의 인생이 완전히 변화된 겁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나아만이 귀국한 후 왕에게 여러 사람들에게 간증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널리 퍼졌을 겁니다. 성경은 그 후의 일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엄청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소녀를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작은 거인!(Little Giant)
복음 전도는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전하는 사람은 비록 연약해도 그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기에 그런 겁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런데 전도가 참 어렵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방해요소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입니다. 내가 복음 전하면 혹시 상대방이 싫어하지 않을까, 혹시 핍박하지 않을까, 혹시 손해 보지 않을까, ... 이런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모순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중병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내 가족, 내 친구이면 어떻게 하나요? 용한 의사, 용한 병원 알려줍니다. 가라고 하는데도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합니까? 싫으면 그만 둬! 하고 내버려 둡니까? 그렇지 않죠. 계속 설득합니다. 안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몇 사람 사서 강제로 끌고 갑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눅14:23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또 한 가지 전도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도는 전부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는 가장 좋은 선물을 주는 것이고, 모든 행위 가운데 최고의 선행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회고해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고맙고, 친구들이 고맙고, 선생님들이 고맙고, ... 그런데 그 중에 정말 천국까지 가서 고마워할 분들이 있습니다. 전도자입니다. 그리고 신앙이 어려서 방황할 때 양육해 준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고마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도할까요?
전도 방법입니다. 간단히 생각해 보면 세 가지입니다! 이미지 전도, 관계전도, 초청 전도 등입니다. 입술로 증거해도 잘 안 됩니다. 이미지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와 교회가 이미지 관리를 잘 해야 됩니다. 매일 죽상을 하고 다니는데 그 모습 보고 믿겠습니까? 교회 가자면 순순히 따라오겠습니까? 이미지가 나쁘면 아무리 전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얼굴 전도지’라는 말도 있는 겁니다. 관계전도는 동심원으로 생각해서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 전도하는 것입니다. 초청 전도는 전도주일 같은 때 교회로 인도해 오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알아서 복음을 전해 줍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 중요한 게 접촉점(Point of Contact)입니다. 우리 주변에 나아만 장군과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겉보기에는 번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으면 인간은 별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고 그 문제에 접근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질병의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치유와 관계된 말씀이나 간증을 전해 주면 됩니다. 자녀의 문제 있는 사람에게는 자녀에 관계된 말씀이나 간증을 전해 주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복음을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부르짖습니다. S. O. S.! 무슨 말인가요? 우리 배를 구조해 주세요!(Save Our Ships!) 선박이 조난당했을 때 긴급 구조 요청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은 또 이런 겁니다.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세요!(Save Our Souls!)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십시오!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더라도 복음 자체가 위대하기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런 사례들이 있습니다.
D. L. 무디는 19세기의 위대한 전도자요 부흥사였는데, 그를 전도한 분이 있습니다. 킴볼 선생님입니다. 그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무명 인사입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무디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위대한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미어즈 여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녀는 본래 화학을 공부한 분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감격으로 독신으로 살면서 기도원을 설립하고, 많은 청년들을 인도했습니다. 그 주에 C.C.C. 창설자 빌 브라이트 박사와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 등이 있습니다. 정말로 귀한 일입니다.
여러분! 오늘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마음 속에 새기시고 하나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재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로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도, 그들도,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 인해 평생 승리하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