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강의와 교수가 없는 학교
세인트존스에서 1학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 밤새 눈이 평펑 내린 적이 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교수님이 수업에 못 오시는 불상사가 발생해 속으로 '오호, 휴강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수업하래."
그날 우리는 교수님 없이도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수업을 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렇다.
여기는 세인트존스였다.
세인트존스 수업에는 다른 대학들과 다르게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강의, 두 번째는 교수다.
그게 대학이야?
그게 수업이야?
강의가 없고 교수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대학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지?
하지만 대신 이곳에는 세인트존스만의 수업을 만들어주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토론과 튜터다.
강의가 없고 토론이 있는 수업
세인트존스의 수업은 100퍼센트 토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직사각형 테이블에 학생들이 둘러앉아야만 한다.
토론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간단하다.
그날 수업에 읽어 와야 하는 책을 읽고 와서, 서로 화목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문제는 읽어 외야 하는 책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설록 홈즈> 같은 추리소설도 아니고, 읽고 있으면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트와일라잇> 같은 연애소설도 아니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이 세인트존스에서 읽는 책은 고전이다. 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나와는 평생 관련 없을 책 리스트에 넣어놨을 법 한 작가들의 책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physics>,
플라톤의 <국가론Politeia>,
칸트의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Theory of relativity> 등등.
수업을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은 그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칸트? 헤겔? 뉴턴? 저렇게 어려운 고전을 읽고 토론하려면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세인트존스 수업, 즉 토론 수업의 핵심이 있다.
똑똑해야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토론 방식의 수업을 하는 것이다.
책이 너무 어려워 다들 모르는 것 투성이니, 강의 형식이 아닌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토론식 수업이 유일한 배움의 길인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진리에 대해 토론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교수가 없고 튜터가 있는 수업
교수professor가 없고 튜터tutor가 있다는 말은 무슨 소리일까?
튜터는 보통 개인 지도 교사, 과외 선생님 정도의 의미로 해석된다.
대학 수업에 개인 지도 교사라. 뭔가 미심쩍다.
세인트존스에서 말하는 튜터는 개인 지도 교사가 아니다.
세인트 존스의 튜터들 역시 다른 대학 교수님들과 다를 게 없다.
다른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 온 분들도 있고 다들 그만큼의 학위를 가진 분들 이다.
그렇다면 왜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튜터라고 할까?
세인트존스에서는 그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강의를 해주지만 튜터는 학생과 함께 공부한다.
학생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나 책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민을 해온 '선배'의 느낌으로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이 세인트존스의 튜터다.
토론 수업인 데다 튜터의 역할이 이렇다 보니 수업 시간에 심지어 튜터가 오지 못해도 학생들만으로도 수업이 가능해지는 비극 아닌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보다 좋 더 많은 시간 동안 고전을 읽고 고민해온 선배'가 튜터가 하는 역할의 전부는 아니다.
아주 중요한 튜터의 역할이 있는데 그건 바로 수업 시간 동안 학생들로부터 좋은 토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좋은 토론의 힘은 막강하다.
토론의 성숙도와 수준에 따라, 수업의 수준이 결정되고 학생들의 배움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토론을 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토론이라는 공부 방식은 참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토론하는 책의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토론의 종류, 토론이 진행되는 방식이나 내용까지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리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토론 기술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세인트존스 학생들이 배움을 얻기 위해 수업 시간에 갈고 닦는기술이다.
정말 좋은 수업에서는 토론하는 내내 새로운 깨달음과 배움으로 마치 뇌 속의 전구에 불이 1초 간격으로 빤짝빤짝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느끼기도 했다.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배움의 경험이다.
1학년은 원석, 4학년은 보석
토론의 특징이 이렇다 보니 세인트존스에는 이런 말도 나돈다.
"1학년 토론은 원석이고, 4학년 토론은 보석이다."
즉, 1학년은 아직 갈고 닦은 토론 기술이 없기 때문에 (좋게 말해서) 원석이고, 4학년은 많은 토론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좋은 토론이 가능하므로 (과장해서) 보석이라는 거다.
막 입학한 1학년의 에너지는 엄청나다.
열정 폭풍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아직 좋은 토론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1학년 수업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학생들이 많다.
수없이 충돌하고 서로가 서로를 밟고 일어서려 하는 1학년 수업에서 튜터의 역할은 더욱더 커진다.
튜터는 지나치게 토론을 독점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에게 과감히 무안을 주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
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며, 토론이 너무 산으로 가면 방향을 바로잡기도 한다.
그럼 이제 4학년을 살펴보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4학년은 갈고닦은 내공이 있어서 책을 통해 좋은 생각을 이끌어낼 줄 알고, 성숙한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업에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학교의 말이다.
4학년 수업은 좀 더 차분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발전시키고 표현하는 데 신중하고 겸손하다.
이 부분이 배움의 핵심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배움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걸 인정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귀가 쫑긋 열린다.
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남의 말이라고 다 정답이고 교훈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도 얘기하면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면 다른 사람의 해석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혼자 책을 해석할 때보다 배움이 더 풍부해진다.
배움에는 많은 종류가 있겠지만 이 역시 진정한 배움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배움은 좋은 토론을 통해서 얻게 된다.
이런 좋은 토론이 가능한 수업에선 튜터의 역할 역시 바뀐다.
1학년 수업에서처럼 튜터가 토론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튜터도 소중한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깊이 있는 의견을 내놓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학생들과 함께 지식의 파도 속을 헤엄친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중에서
세인트존스를 소개합니다
조한별 지음
첫댓글 꽃계에서 얼만큼 성숙된 보석인지
반추해 봅니다~^^
즐 하루되세요~
더운날, 너무 깊은 생각은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토론을 한 내용은 머리속에 남더라구요 이사회때 토론 많이 할까요?😆 보석으로 고고
저는 원석!으로 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