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미즈회헌신예배)
하나님을 경험하기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3. 4. 16.
본문 : 왕상 17:8-16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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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오늘 본문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르밧 여인은 이스라엘 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시돈은 바알 우상의 본부가 있는 이방 나라 사르밧이라는 작은 동네 여인입니다. 가뭄과 흉년이 극심해 양식이 모자랄 뿐 아니라 땔감조차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만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 여인을 만나자마자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사르밧 여인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했습니까?
첫째,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기
본문 12절에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르밧 여인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이름은 부르지만 충분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왜 죽겠다고 합니까? 우리의 입술로 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과 우리의 믿음이 있다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부를 수 있습니다. 절망적이고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 오병이어 기적 사건에서 제자들은 눈앞에 창조주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 앞에 와 계신 데도 그들이 하는 말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사르밧 여인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당신의 하나님을 말씀하지만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 들이면 기적을 경험합니다.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는 말에서 엘리야를 만난 사르밧 여인은 책임감 있었습니다. 자기 자녀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이 여인은 책임 의식이 대단합니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왕하 6:29).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포위당했을 때 굶주리게 되자 아들을 삶아 먹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여인은 최후까지 아들을 걱정하며 아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는 좋은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호세아서는 불륜이 아니라 결혼을 강조합니다. 결혼은 사랑의 책임을 지지만 불륜은 책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혼 믿음입니까? 불륜 믿음입니까? 결혼 직분자입니까? 불륜 직분자입니까? 남편이 나의 편입니까? 남의 편입니까? 우리는 주님과 결혼했습니다. 왜 혼자입니까? 주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십니다. 왜 당신의 하나님입니까? 나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했던 다윗은 얼마나 신바람 난 인생을 살았던가요?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이 떡을 받아 먹으라 내 몸이라 이 잔을 받아 마시라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주님과 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등불 들고 나갈 준비됐습니까?
둘째, 작은 믿음부터 실천하기
본문 13절에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큰 믿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르밧 여인의 작은 떡 한 개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아무리 작약천하(작고 약하고 천하고 하찮아도)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헌신의 충성이 서려 있으면 그 작은 것이 큰 믿음의 증거가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사르밧 여인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큰 대조를 이룹니다.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은 바알 우상을 따르면서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드리지 않습니다. 헌신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면서 바알에게 몸을 바치고 마음이 홀렸습니다. 바알에게 헌금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칠 한 웅큼의 밀가루 한 방울의 기름도 없습니다. 왜 엘리야 선지자는 마지막으로 먹고 죽겠다는 그녀의 마지막 떡을 자신에게 먼저 가져오라고 합니까? 너무 야박한 태도 같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내가 바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헌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힘든 상황에서도 드릴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 등 모든 이방 민족에게서 빼앗아 온 은금과 함께 하여 드리니라”(대상 18:11).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하는 다윗은 ‘그것도’ 드립니다. 꼭 이런 것까지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원하면 먼저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순종하기 힘들 때 순종하면 하나님이 더 감동하십니다. 축복만 바라기보다 축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왕하 5:13). 나아만 장군의 나병 치유 사건입니다. 부정적인 나아만 장군입니다. 내가 장군인데 ‘예’도 갖추지 않고 꼭 요단강에 가야 하냐? 꼭 일곱 번이냐? 한 번 하면 안 되냐? 부정적인 마음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부하들이 이보다 더 큰 일도 하겠습니다. ‘하물며... 씻어 깨끗하라’는 이것쯤이야 못하겠습니까? 이는 작은 일이고 너무 쉬운 일입니다. 그냥 믿고 순종하는 순간 하나님의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나아만 이름의 뜻처럼 기쁨, 즐거움, 유쾌함이 회복됩니다. 나아만과 사르밧 여인에게 베푼 기적의 선물이 우리에게도 주어지길 원합니다.
셋째, 엘리야의 말씀대로 하기
본문 14-16절에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기적의 핵심은 이방인 사르밧 여인이 여호와의 말씀을 확실히 믿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흉년의 보릿고개가 심각해도 통에 가루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여인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마중물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통에 가루 병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중물처럼 붙잡고 믿었더니 그 말씀 그대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당신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면 말도 안 되는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엘리야의 말대로 하는 것입니다. 통의 가루 병의 기름 누가 갖다 붓는 것도 아닌 데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약속은 말도 안 되는 약속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예, 아멘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메뚜기 인생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우리의 밥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말씀을 듣는 귀가 있었습니다. 먼저 엘리야 선지자를 위하여 빵을 만들면 그다음 자신과 자기 아들을 위하여 또 빵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듣는 귀가 있어야 행동합니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막 7:32-34). 예수님이 언제 탄식합니까? 38년 된 환자 치유, 12년 혈루증 여인의 치유,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나병환자를 고칠 때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사람 고치실 때 탄식하십니다. 이사야 1장에 하나님은 탄식하십니다.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내 백성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고 탄식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고 사르밧 여인같이 한 끼 남은 식량이 삼 년의 흉년을 견딜 수 있는 기적을 체험합시다. 새롭게 하나님을 경험합시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말씀, 댓글 일기를 쓰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기.
주여 주여라고 부를 때 당신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동행하시는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간증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 작은 믿음부터 실천하기.
마지막 생명줄인 통에 가루 한 움큼, 병에 기름 조금 남은 것으로
축복의 씨앗을 심는 작은 믿음을 실천하겠습니다.
@ 엘리야의 말씀대로 하기.
하나님이 탄식하시지 않도록 말씀을 듣는 귀가 있었던 여인처럼
엘리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실행함으로
3년 6개월의 흉년기간 동안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겠습니다.
@ 들음의 귀가 활짝 열려 곧 바로 실천하는 믿음 되어
하나님을 경험하는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 그것도 드립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말씀을 듣는 귀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멘.
@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며 아주 작은 일에도 하찮게 생각 되어지는 일까지도
순종함으로 실천하며 말씀을 잘 받아먹은 자로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감사하며 살기 원합니다.
@ 늘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삶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작은 것부터 실천하며 믿음으로 걷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은 믿음과 실천부터 시작하며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있어 행동하기 원합니다.
@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으로’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마음에 모시고
작은 믿음부터 실천하며 엘리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믿음으로 걷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작은 것 하나라도
드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 사렙다 과부의 작은 떡 하나를 사용하신 주님,
침묵하시는 주님의 훈련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다 도는 것처럼,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는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라고 하시는 그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수 있게 하소서.
큰 나무보다 잔뿌리가 많은 나무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당신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며 한 주간도 힘을 내어 살아갑니다.
@ 주일 오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믿음으로 걷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기’입니다.
@ 주일 오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말씀을 듣는 귀’입니다.
@ 주일 오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하나님을 경험하기’입니다.
@ 주일 오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기’입니다.
@ 주일 오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작은 믿음부터 실천하기’입니다.
@ 주일 오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엘리야의 말씀대로 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