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24】
인삼의 인공 재배 확대와 더불어 대학에서도 재배법과 인삼에 감염하는 여러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미국에서 인삼 재배가 시작되고 약 15년이 지나자 인삼 재배자들 가운데 초대형 인삼 농장을 설립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중심축이었던 위스콘신의 마라톤 카운티는 주로 독일과 폴란드계 농부들이 정착한 곳으로 1904년부터 인삼 재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곳의 프롬 형제들(Fromm Brothers)가 설립한 ‘인삼과 모피 농장’은 미국에서 20세기 인삼 재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자리잡는다.
프롬 형제들은 은빛 털을 가진 여우에게 매혹되어 모피 농장을 건립할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주위 사람들에게 인삼의 수익성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후 수년 동안 프롬 형제들은 8월이 되면 산에 올라 인삼 수만 뿌리를 캤다.
그러던 중 프롬 형제들은 야생삼을 캐는 것보다 인삼 농장을 세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수입원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거대한 인삼 농장을 키워내기에 이른다
1929년 프롬 형제들의 농장은 인삼과 모피 산업에서 명실상부하게 서구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그들의 인삼은 한국, 일본, 만주, 몽골을 비롯해 서부 태평양 섬에까지 팔려나갔다.
인삼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익 보고, 정보 교류와 친목을 위한 협회, 즉 동업조합이 결성되었다.
1880년부터 1920년대까지는 인삼 재배와 더불어 미국의 인삼 무역이 번창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 인삼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과 곧 이은 중국과의 국교 단절로 수출 시장을 상실하게 되면서 미국의 인삼 경작자들은 어려움에 처했다.
대부분의 인삼 경작자들이 인삼 사업을 접었는데 오직 위스콘신 마라톤 카운티 주변의 대규모 경작자들만 남게 되었다.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의 외교 정상화 이후 중국으로의 인삼 수출이 활기를 띠게 되었을 때 혹독한 시기를 잘 견뎌낸 위스콘신의 경작들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프롬 형제들의 농장이 소재한 위스콘신의 마라톤 카운티 주변은 미국의 재배삼 중심지로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미국에서 생산된 인삼은 거의 전량 국외로 수출되었으며, 주요 수출지는 세계 최고의 인삼시장인 홍콩과 동남아 시장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오랫동안 시장이 거의 전무했다.
설혜심의 저서 '인삼의 세계사'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