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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도자기 해남 녹청자, 도자 기술의 결정판
기사승인 2019.08.01 23: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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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 ...
▲ 청자 철화 국화넝쿨무늬 매병 |
1200여 년 전 탄생돼 3백여 년 생산을 끝으로 명맥이 끊긴 해남녹청자, 녹암갈색도자기로 태어나 청자 탄생에 큰 영항을 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녹청자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 사실상 잊혀진 도자기다.
한반도 지배세력의 전유물이었던 청자, 백자, 분청자와 서민들이 사용했던 생활용기인 옹기와 영암의 도기는 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옛날 그 방식 그대로 생산되고 있는데 유독 녹청자만이 도자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문화적 큰 손실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해남녹청자가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오는 10월 13일까지‘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해남녹청자들을 보면 저급에서부터 고급 녹청자까지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갖춘 자기로 생산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청자 유물에서 볼 수 없는 철화문녹청자장고는 가히 훌륭한 걸작(傑作)으로서 그 시대의 도공들의 창의력에 경외심을 갖게 했다.
해남 진산리 74호 가마터 출토품 |
본보는 해남녹청자가 도자기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발자취를 찾아 녹청자를 재조명하며 제2의 탄생을 위한 부활 가능성 타진과 현재 유통되고 있는 청자·백자·분청자 등과 비교해 경쟁력과 차별성을 이끌어 내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도자문화 산업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또한 9~12세기까지 한반도에 분포돼 있던 전국 각 지방의 녹청자와 해남 녹청자의 비교, 인천서구의 녹청자와 부안군의 녹청자 관리 운영, 강진군의 청자산업의 현주소도 집어보며 해남녹청자에 대한 해남군의 정책지원 등을 제안해 본다.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해남청자 전시장을 찾은 명현관 해남군수 |
- 글의 순서-
■ 잊혀진 도자기 해남녹청자, 도자기술의 결정판
■ 녹청자 도자기의 시원
■ 중국 비색청자 선호문화, 한국의 동조현상?은 녹청자 성장의 걸림돌
■ 해남녹청자 기술·품종 전국 최고...타 지역 녹청자보다 연대 앞서고 다양
■ 1천2백여 년 전 해남지역은 도자기 생산의 최적지
■ 인천서구·전북부안군 녹청자, 강진군 청자, 문화관광산업‘활발’
■ 녹청자기, 청자,백자,분청자와 견줄 경쟁력 충분...발전 가능성 높아
■ 해남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 ...신 성장 동력의 신소재도 지자체의 혜안과 의지가 절대적
■ 녹청자 도자기의 시원
귀중함의 사전적 해석은“가치를 정할 수 없을 만큼”을 뜻한다.
조선시대 막사발은 함부로 사용했던 그릇이지만 일본은 귀중한 보물로 지정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민초들이 국·밥·찬 등 다용도로 사용한 식기그릇인 막사발을 일본은 보물로 지정했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평가시각이 극명한 것은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란 해석을 낳게 한다.
청자 꽃모양 접시 |
그런 반면 녹청자는 비색 청자를 탄생시키기까지 태토와 유약, 성형, 예술적 조형미, 표면 문양 등 고도의 도자기술을 발전시켜온 귀중한 도자문화유산이지만 정작 청자의 명성에 밀려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잊혀진 도자기다.
학계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녹청자기류가 약 9~13세기 초까지 다양한 종류의 녹갈색 도자기로 생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남녹청자 재현에 성공한 전라남도 도자기 명장 남강 정기봉 도예가가 발간한“해남녹청자의 특성 분석 및 재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도 6건에 불과하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자기소(磁器所)가 각 1곳만 소개 됐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등의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이는 민수용으로 한정됐을 것이라고 기술했다.
당시 우리의 토기들은 중국의 선진 도자기술에도 훨씬 못 미친 저도(底度:1천도 이하)에서 구워낸 도기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해남의 도공들은 저급도기 녹청자 수준을 칼슘성분의 회유와 잿물을 섞은 유약과 고화도의 산화번조(酸化燔造:산소를 넣어서 연료를 완전히 연소시키는 방법) 및 환원번조(還元燔造:가마의 온도가 1,100℃ 이상으로 올라갈 때, 땔감을 많이 넣고 산소가 유입되는 가마의 모든 구멍을 막아 불완전연소가 되게 하는 방법)로 구워낸 방법을 찾아 녹갈색을 띤 경도(硬度)로 유리질화 된 녹청자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도자기 생산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아름다운 비색 청자 탄생에 영향을 준 녹청자는 청자에 버금가는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받아도 될 훌륭한 문화재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녹청자에 대한 학술적 발표나 본격적인 위상 정립 등에 관한 사료적인 문헌 자료는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현재 발굴된 녹청자 유물들은 청자와 같은 고급자기로서 재조명 할 수 있는 환경은 상당히 축적돼 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녹청자의 생산과 상감기법, 철화문 기법 등이 중국 도자기보다 더 앞서고 또 기술접목도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학계, 녹청자와 관련된 지자체 등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을 밝혀줄 학술적 연구를 위해 적극적인 행·재정적 지원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완도선의 해남청자 |
■ 중국 비색청자 선호문화, 한국의 동조현상은 녹청자 성장의 걸림돌
중국에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녹청자와 유사한 녹유자기와 흑유, 비색청자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유독 비색청자의 호응도가 더 높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붉은색(복을 부르는 색), 황색(황제의 색), 청색(귀족, 우아함?), 옥색(건강, 장수) 등이라고 한다.
물빛의 옥색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색상의 도자기들 중 옥빛과 닮은 비색 청자의 선호도가 더 높은 편이 아닌가 싶다.
당시대의 한반도에도 청자에 대한 편향 현상이 지속되다 조선조로 바뀌며 백자, 분청자기 등으로 대체 된다.
조선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청자의 시대가 백자, 분청자에 밀려 나듯 만일 중국의 도자문화가 녹유자기를 더 선호했다면 우리나라 녹청자도 더 높은 위치에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중국의 녹청자는 녹유자기라 칭하며 우리의 청자처럼 고운 점토를 사용한 양질의 고급자기인 반면, 우리나라 녹청자는 약간의 모래가 섞인 사질토로 빗어낸 저급 녹청자가 대다수다.
그러나 해남군 산이 진산, 초송리 지역에서 출토된 녹청자 편과 서남해안 각지의 해저에서 인양된 원형의 녹청자들 중에는 고급청자의 태토처럼 잘 정제된 점토로 성형된 기물을 갑발(匣鉢:자기를 개별로 굽기 위한 큰 통)을 이용해 생산된 고급녹청자기들이 포함됐다.
비록 비색 고급청자에는 미치지는 못 했지만 고급화된 해남녹청자는 본격적인 청자 전성기 전인 12세기 이전까지 나름의 틈새시장을 확보한 가운데 민요(民窯)로서 전국에 공급됐다.
산이 진산리 사적 310호 녹청자 가마터(항공사진=해남군 제공) |
■ 해남녹청자, 기술·품종 전국 최고...타 지역 녹청자보다 연대 앞서고 다양
녹청자는 9~12세기까지 서남해안을 접한 북녘의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 인천시 서구 경서동, 경기 고양시 원흥동,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시흥시 방산동, 용인시 서리 충남 공주군 사곡면 신영리,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전북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부안군 용계리, 전남 강진군 삼흥리, 용운리, 고흥군 운대리 등에서도 생산됐으며 이외 지역에서도 생산된 흔적들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
해남녹청자는 이들 지역보다 더 앞선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부터 생산됐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 해남 도공들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토기에 회유를 입혀 도기를 생산한 영암구림도기 가마터와 근거리에 있어 기술적인 부분을 공유하기 위한 인적 물적 등 활발한 교류를 통해 녹청자의 증산을 가져 왔을 것으로 보인다.
타 지역에서 발굴된 녹청자는 투박한 조질 태토의 완(碗), 발(鉢), 호(甁), 접시, 유병 등 비교적 적은 종류의 편들인 반면 해남녹청자는 완(碗), 사발(鉢), 호(甁), 장고, 화형접시, 유병, 편병, 항아리, 흑유자기, 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급자기 출토 편(片) 등이 육지와 서남해안 해저에서 대량 발굴돼 기술과 종류, 수량은 타 지역 녹청자를 압도했다.
지난 1983년 12월 완도 약산 어두리 앞바다와 전북군산 십이동파도, 그리고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 앞바다 등에서 인양된 녹청자들 중에는 철화청자장고 4점도 인양돼 당시 도자기로 악기를 생산한 기발한 발상은 생산범위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학계에 놀라운 충격을 안겼다.
이 철화녹청자 장고 중 한 점은 KBS 진품명품 평가에서 희소성과 독창성, 예술적 조형미를 갖춘 도자기로서 12억 원의 최고 감정가를 받는 등 해남녹청자가 청자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세련된 철화문 도자기로 평가되는 순간이었다.
청자 철화 모란 국화무늬 장고 |
철화청자는 산이면 도요지에서 최초 제작한 고려청자의 한 종류이자 색과 제작방법에선 중국 도자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자기로 평가된다는 주장도 있다.
녹청자는 유약을 얇게 처리함에 따라 철화가 발달돼 있지만 때로는 양각과 음각, 상감으로 제작된 녹청자도 있다. 철화청자는 철 함량이 많은 황토로 도자기 표면에 문양을 그려 제작하는 방법이다.
이에 비해 강진청자의 특징은 몸체에 문양을 그려 흙을 긁어낸 자리에 백토를 메우는 상감기법의 청자다.
귀족적이고 차가운 느낌의 비색 청자는 1천여 년 전 권력의 상층부인 집권세력의 전유물로서 그 생산량은 한정돼 있었던 반면 녹청자는 대량 생산돼 지방향족이나 낮은 신분계급들의 청자 대용 애장품으로 판매했다.
녹갈색, 녹암갈색의 녹청자의 첫 인상은 온화한 느낌을 준다.
누구나 좋아 할 수 있을 것 같은 녹청자는 고급스러운 풍모(風貌)와 위엄(威嚴)을 지녔으면서도 보는 이를 편하게 하는 대중에게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도자기다.
이렇게 매력적인 녹청자를 생산했던 해남지역 전통가마터는 162기(화원56기, 산이 106기)가 발굴돼 강진지역 고려청자 가마터 180여 기에 버금가는 전국 두 번째로 큰 대규모 생산단지를 갖춘 것이다.
해남녹청자는 서남해안 일대에서 생산된 녹청자들과 달리 민요에서 도자기술을 발전시켜 관요인 강진청자를 만들어 낸 주도적 역할을 해온 것으로 일부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는 해남녹청자 생산연대가 강진청자 생산연대 및 전국 각지의 모든 녹청자 생산지역보다 앞서 있고 해남녹청자의 쇠퇴기 이후 관요로 지정된 강진청자 생산을 위해 해남도공들이 시차를 두고 강진으로 집단 이주 했다는 설, 그리고 160여 가마에서 해남녹청자를 생산했던 1천여 명에 달하는 도공들과 그 가족들이 사라지고 녹청자는 명맥이 끊긴 후 인근 강진에는 180여 기의 청자생산 가마가 조성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해남녹청자가 당시 상감기법의 흑청자를 생산 한 것도 무관하지 않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측면도 있어 이에 대한 명확한 고증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 1천2백여 년 전 해남지역은 도자기 생산의 최적지
1200여 년 전 해남지역은 바다에서 내륙 곳곳으로 입출항이 가능한 해상교통이 잘 발달된 지역이었다.
질 좋은 점토와 도자기를 빗을 수 있는 연료인 소나무와 물 등 또한 풍부한 천혜의 도자기 제조 및 양산에 안성맞춤인 최적지였다.
해남지역 곳곳에는 현재도 심심치 않게 자기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지표조사가 재개되면 더 많은 가마터가 발굴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해남의 녹청자 가마터는 전국최대규모의 녹청자 생산단지로 다시 한 번 도자사를 고쳐 써야 된다.
이렇게 큰 규모의 녹청자 단지에서 생산된 대량의 녹청자는 전국 보급을 위해 해로를 타고 운반하던 중 해상 침몰이 빈번했으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해저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산 십이동파도선 |
완도선 |
군산 십이동파도 인근 해저에서 인양된 4만여 점에 달하는 해저유물과 완도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인양된 녹청자 3만673점이 해남 산이 녹청자로 확인됨에 따라 해남의 녹청자 생산규모는 전국의 유일한 대규모 세라믹공단이었음을 입증하게 했다.
해저에서 발굴된 양질의 고급 녹청자는 해남 산이 지역 녹청자 외 타 지역에서 생산된 녹청자가 대량 발굴됐다는 보고는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과 해남사람들은 녹청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녹청자는 우리의 도자문화를 이끌어 온 선구자적 유형문화재로서 소중한 자산이지만 아직 학계와 사회적 분위기는 저급청자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
■ 인천서구, 전북부안군, 녹청자, 강진군 청자, 문화관광산업‘활발’
해남녹청자 생산시기보다 늦은 전북 부안과 인천서구는 해남녹청자 유물과 가마터보다 현저하게 적은 소량임에도 도자문화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쏟으며 교육환경 제공 및 문화관광산업으로 활용가치를 높여 나가고 있다.
강진군도 청자산업의 전국화, 세계화를 위해 매년 청자축제와 토요청자경매를 실시하며 지역경기 부양에 힘써오고 있다.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고 있는 이들 지자체에 비해 해남군은 유형문화제로도 손색이 없는 전국에서 찾기 힘든 대규모 자기생산지역이란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도자기 육성을 위한 행정지원은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 녹청자기, 청자,백자,분청자와 견줄 경쟁력 충분...발전 가능성 높아
청자의 빛에 가려진 고급녹청자는 청자, 백자, 분청자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도자기술의 집약체였다.
아름다운 철화문 기법과 양각·음각 기법, 상감기법, 아름다운 조형미의 철화문의 장고는 도자영역의 상식을 뛰어넘은 훌륭한 문화재다.
해남녹청자는 녹청자라는 독자 영역의 새 도자기로 발전시켜나갈 훌륭하고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녹청자 색감은 온화함을 더한 또 다른 감성의 자기로서 세상의 귀천을 구분하지 않은 포용적 대중성이 담겼다.
그러하면서 조형미에서 풍기는 세련미는 결코 범잡할 수 없는 위엄(威嚴)을 갖췄다.
1200여 년 전 저급청자로 각인된 녹청자를 강진청자, 여주, 이천, 광주의 백자 등과의 경쟁력 있는 도자문화의 신소재로서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기봉 도예가 |
정기봉 해남녹청자 재현 도예작가는 국내를 비롯해 일본 및 미국 등지에서 전시회를 여러 차례 갖고 있다.
그는“국내를 비롯해 일본과 미국에서 개최한 녹청자 전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고급녹청자 전시회를 찾는 소비자들은 의외로 친근함을 나타내며 구매력도 높다.”고 전했다.
또한 해외에서의 반응은 비색청자가 녹청자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호적 관점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시장은 다변화 되고 있는 가운데 차별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시장은 트랜드라는 변화가 있기에 항상 역동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녹청자의 등장은 도자기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에 적기라는 생각이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및 유형문화제 등록, 녹청자 박물관 건립 등 현안 산적...구슬도 꿰어야 보배...신 성장 동력의 신소재도 지자체의 혜안과 의지가 절대적
유약이 녹아 기포가 발생돼 볼품없는 불량품에 가까운 막사발이 이도다완이란 일본의 보물이 될 수 있듯이 녹청자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녹청자는 하나의 자기류에 속하지만 세련되고 우수한 기술은 청자, 백자, 분청자기 등 고급 도자기 탄생을 견인해 온 훌륭한 유형 문화유산이다. 녹청자는 제기, 식기, 다기, 매병과 예술적 조형미에 창의성이 더해진 다양한 작품으로 생산돼 옛 선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도자기다.
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얼이요 정신과도 같은 것으로서 결코 작은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녹청자라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너무도 많은 세월동안 잊고 있었다.
또한 저급청자라는 잘못된 편향성에 매몰돼 무시하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선인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대승적 차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문화는 대중과 함께 공유하고 호흡 할 때 가장 빛을 발한다.
타 자치단체가 갖지 못한 해남의 도자기문화를 이제는 지역의 자랑으로 특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남군이“해남녹청자 브랜드 육성사업”을 위한 도자문화 부활을 위해 관심과 지원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이와 함께 유형문화제 등록과 녹청자 박물관 신축건립에 따른 부지 적정장소 확보(명승지별 입장관광객 수 참고 및 상징적 장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고유명사인 녹청자를 해남청자라는 새로운 명칭 사용에 대한 고찰(考察) 등 산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늦었지만 그렇다고 졸속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보다 철저하고 섬세하게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한사람의 생각보다 사회 각계각층의 담론(談論)을 담아 내 야 하며, 필요하다면 학계 등 전문적인 외부 용역을 통해 짜임새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더 나아가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녹청자의 비전을 제시해 나가야 한다.
해남군에는 역사가 깊은 문화재와 명승고적 등 유·무형의 보석 같은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여기에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녹청자는 해남의 또 다른 볼거리, 먹거리, 일자리 창출 등을 안겨줄 전통도예문화를 산업화 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녹청자가 보물이 될지 저급청자로 잊혀질 것인지 선택은 해남군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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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도자기 해남녹청자, 도자기술의 결정판
1200여 년 전 탄생돼 3백여 년 생산을 끝으로 명맥이 끊긴 해남녹청자, 녹암갈색도자기로 태어나 청자 탄생에 큰 영항을 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녹청자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 사실상 잊혀진 도자기다. 한반도 지배세력을 비롯해 서민들이 사용했던 생활용기인 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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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가공해서 파는 세상이다 그러하나 가마는 직접 불을 다스려야 한다 온갖 땔감이 많아도 나무는 최상급이다 실용적이 아닌 것은 불필요하다고 보는 나님이기에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한숨만 나온다 왜 강요하는 것인지.
아이언옐로우는 가장 많이 쓰이던 거였다 철의 산화물은 최소 다섯가지의 단색을 나타낼 수 있다 어디지? 동두천? 맞나 아무튼 거기에 아이언엘로우 즉 황색 산화철 공장이 있었는데 앞마당이 온통 노랗고 신발에도 묻어서 승용차 바닥에 발도장이 찍혔던 기억이 있다.
청색 적색 흑색 황색인데 아. 녹색이 되던가? 금속계열 녹색은 크롬그린 즉 삼산화크롬이 거의 불변의 녹색이다. 황에 청을 섞으면 녹이 되기는 하지만 색감이 단순하지 않고 어둡다. 뭐 아무튼 ㅎ 철의 산화막을 보고 있노라면 꼭 무지개와 같다. 온도만 잘 다루면 무지개를 낼 수 있지만 변함이 없는 유지가 어려워서 실험실이 아니면 재현이 불가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