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xSFRoalw 나관중의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동서고금의 수많은 소설 중에서 가장 멋 있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함의(含意)를 지닌 첫 문장을 꼽으... blog.naver.com
나관중의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동서고금의 수많은 소설 중에서 가장 멋 있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함의(含意)를 지닌 첫 문장을 꼽으라면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단연코 <삼국지연의>와 <안나 카레니나>를 택할 것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첫 구절은 바로,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이다. 또 러시아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나오는 첫 구절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두 장편소설에서 이 첫 문장은 두 소설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삼국지연의> 첫부분에 나오는 구절,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이란 '천하 대세는 나뉘었다가 반드시 합하고 또 합하였다가 반드시 나뉘어진다.'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필(必)이다. 그냥 합치고 나뉘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합치고 나눠진다는 의미다. 그만큼 변화는 필연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삼국지 이전 중국의 고대사를 보면, 하(夏) 은(殷) 주(周) 시대를 거쳐 춘추 전국(春秋 戰國) 시대를 지나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秦) 제국은 15년을 넘기지 못하고 분열되고 5년 후 두 번째 통일 국가인 한(漢) 제국 역시 전, 후한을 합해 400 여년 만에 또 분열의 삼국지 시대를 맞았으니 나관중이 보는 역사관은 왕조 시대 역사는 분열과 통합이 반복되는 과정이 필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예외 없이 통일을 했다가 분열을 하는 과정을 반복했으므로, 나관중의 관점에서 봤을 때 천하대세는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이 아마 만고불변의 법칙이라도 되는 듯한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에서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다음 구절은 주(周)나라부터 한(漢)나라 말까지 실제 나뉘었다가 합하고 또 합하였다가 나뉘어진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즉, 이어진 구절은 다음과 같다.
'주말칠국분쟁 병입어진(周末七國分爭 並入於秦)', 주나라 말기에는 일곱 나라가 나누어져 다투다가, 진나라에 합병되었다.
'及秦滅之後 楚漢分爭(급진멸지후 초한분쟁)', 진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초나라와 한나라가 나뉘어 다투다가,
'又並入于漢(우병입우한)', 또다시 한나라에 합병되었다.
한(漢)나라는
'自高祖而起義 一統天下(자고조이기의 일통천하)', 한고조(劉邦)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였고,
'後來光武中興 傳至獻帝(후래광무중흥 전지헌제)', 그 후 광무제가 중흥하여 헌제에 이르기까지 전해 내려왔으나
'遂分爲三國(수분위삼국)', 마침내 세 나라로 나누어졌다.
이처럼 나관중은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을 실제 중국 역사에서 자기 역사관을 입증하면서 후한 말 한나라의 분열로 삼국 시대가 초래하였고 이는 또 진(晉)나라 출현으로 통합이 되기까지 삼국지의 시간적 범위를 첫 문단에서 소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건국한 창업 군주나 선양(禪讓)이라는 명분으로 역성혁명을 한 군주는 가능하다면 분열없이 통합된 체제로 자손 만대로 사직이 영속되길 애 쓰며, 죽을 때는 이를 위해 유훈(遺訓)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통일 신라(新羅) 같은 왕조는 천 년 가까운 사직을 지속하기도 하였지만,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 제국인 진(秦)나라는 15년 만에 사직이 패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천년이 지속되었든 15년으로 단명에 끝났든 영원히 존속된 왕조는 인류 역사상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천하의 대세는 하나로, 분리된 것은 다시 합쳐지고, 합쳐진 것은 언젠가 다시 분리될 것이지만, 특히 합쳐진 통합이 분리되는 분열을 늦추거나 연장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이 바로 성리학(性理學)에서 말하는 경장론(更張論)이다.
성리학에서는 어느 국가나 왕조는 창업기와 수성기가 있고, 그 다음으로 소멸의 단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수성기와 멸망 사이에 경장(更張)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개국인 창업기(創業期)를 거쳐서 건국에서 멀지 않은 시점에 위기를 겪고 이를 잘 극복하는 것을 수성기(守成期)라 하였다. 수성기의 단계를 거친 뒤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정착된 뒤에는 국가나 왕조는 다시 관료주의에 빠지거나 무사안일, 퇴폐에 빠진다고 보았다. 이때 그는 다시 국가와 왕조의 건국 정신을 다시 다잡을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그러한 관료주의, 무사안일, 퇴폐를 극복할 대안으로 개혁이나 혁신을 통해 다시 개국 초의 건국이념으로 팽팽하게 긴장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보았다. 율곡은 다시 긴장시킨다는 뜻의 경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 시기가 경장기(更張期)라 하였다.
그는 자신이 살던 사회를 조선이 건국한 뒤 어느정도 체제는 안정되었지만 정비된 각종 제도가 무너져가는 중쇠기(中衰期)의 단계라고 보고, 일종의 국가 재건, 조직 재건과 비슷하게 시급한 국가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경장(更張)이라 하였다. 그는 당시 시대가 바로 경장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전통이나 구질서에 집착하지 말고, 기존의 것을 현실에 맞게 수정, 개혁을 통한 일대 경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정치에 있어서는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하고 일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것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때에 알맞게 한다(時宜)"는 것은 시대의 변화,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개혁을 하고, 각종 제도와 법을 마련하거나 기존의 법, 제도를 정비해서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습에 안주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변화된 시대나 생활에 맞춰서 현실에 맞도록 고치고 개정하는 것이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라 보았다.
이처럼 율곡의 경장론(更張論)을 실천한다면 나관중이 말하는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에서 벗어나 천하대세를 하나로, 개혁을 통해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국가나 왕조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시켜 패망을 가능한 늦추거나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후한 말 분열의 시대를 맞아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천자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천하삼분정립의 거쳐 결국은 진(晉)나라라는 통합의 시대를 맞았으니 나관중의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은 또 다시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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