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월요일, 월계수를 향하여 인내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눈길, 조심하세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에베소서 1:11절 말씀)
에베소서 1장 11절의 의미와 해석
에베소서 1장 11절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역사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기업을 받기로 예정하신 그 안에서 우리가 또한 구속을 받은 것이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구속의 목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계획과 근본적인 진리를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에 대한 신앙의 기초를 확보하기 위해 중요한 맥락을 가집니다. 매튜 헨리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이 섭리를 따라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주권을 아는 것이며, 우리의 구속과 기업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명확히 해줍니다. 앨버트 바넷은 이 구절이 하나님의 계획을 포괄적으로 드러내며, 성도들이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과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는 경배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아담 클락은 이 구절에서의 예정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를 위한 은혜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겸손과 신뢰를 요구합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은 구속 이론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기초를 제공합니다. 신약에서의 구속과 예정은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언약과 깊은 연결을 가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은 우리의 정체성과 하나님 안에서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구절입니다. 이는 성경 구절의 해석과 이해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주며, 믿음의 기초를 확고히 만들어 줍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2. 예정론이란 무엇입니까?
로마서 8장 29-30절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5절과 11절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정론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정론은 성경에 부합하는 교리입니다. 핵심은 예정론이 성경적으로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성경에서 “예정되었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말 (프르리조)는 “사전에 결정하다”, “미리 명하다”, “미리 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정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을 미리 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미리 정하셨을까요? 로마서 8장 29-30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떤 개인들이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들이 구원을 받도록 미리 정하십니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미리 택함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마 24:22, 31; 막 13:20, 27; 롬 8:33, 9:11, 11:5-7, 28; 엡 1:11; 골 3:12; 살전 1:4; 딤전 5:21; 딤후 2:10; 딛 1:1; 벧전 1:1-2, 2:9; 벧후 1:10). 예정론은 하나님이 그분의 주권으로 어떤 개인들을 구원받도록 택하신다는 성경적 교리입니다.
예정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대는 그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선택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고(롬 3:23), 모두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롬 6:23).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지옥에서 영원히 보내게 하셔도 이는 완벽하게 공의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중에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선택하십니다. 이때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받아 마땅한 처우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하셨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공평한 분이 되실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따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20명의 군중 속에서 다섯 명에게 무작위로 돈을 거저 준다고 합시다. 돈을 받지 못한 15명의 사람들이 화를 낼까요? 아마도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화를 낼 권리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을 거저 준 그 사람은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몇몇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기로 결정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를 택하신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믿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닙니까? 성경은 우리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요 3:16; 롬 10:9-10). 성경은 결코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 그 누구라도 거부하시거나 그분을 찾는 그 어느 누구라도 외면하시는 일이 없다고 언급합니다(신 4:29). 어떻게든, 예정론은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지고(요 6:44) 구원받기 위해 믿는(롬 1:16) 사람들과 밀접하게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두 사실은 동등한 진리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3. 그 안에서 그의 기업이 무엇인지요?
그는 우리를 그의 기업(基業)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기업이 된다는 말은 성경에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업은 세상에서 나오는 회사, company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터를 말합니다. ‘터 기(基)’, 터에서 일하는 것이겠죠. 일하는 터를 목적지로 삼아서 거기에서 일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땅을 상상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기업을 얻다’, 원래는 ‘제비 뽑다’, 제비를 뽑아 결정한다는 말이예요. 제비 뽑는 것을 알죠? 상품권을 박스에다 넣고서 “여기에 상품이 많습니다. 이 중에서 전기밥솥을 타실 분을 뽑겠습니다.” 이렇게 흔들어서 뽑아서 “120번” 그러면, 제비를 뽑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구출해 주셨어요. 그래서 빠져나와서 이제는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서 얻은 땅을 하나님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열두 지파에 따라서 열두개의 지역으로 이렇게 이렇게 나눠준 것이죠. “여기는 너희가 맡아라, 저기는 너희가 맡아라.” 아주 정확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왜 나누어 주었느냐 하면 “이것은 너희가 경작하고 너희가 목축을 하고 경제활동을 해라.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을 살려라. 너희는 잘 성공하고 장대하고 창성해야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 거기를 잘해 나가는 것이, 경제활동을 잘 나가게 하고 부강하게 하는 것이 이스라엘 전체를 부강하게 합니다. 그런 하나님에게 영광을 올립니다. 그런 민족으로서의 공동체는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 성공하게 해 나갈 것입니다. 존속해 나갈 것입니다. 성경에 자기 인생을 자기 운명을 분깃이라고 표현합니다. ‘내 인생, 내 분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내게 준 나의 분깃은 무엇인가?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원하심은 무엇인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레위는 성직자, 성전에서 예배를 하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자손대대로 물려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레위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이 손을 대면 즉사하기도 하고 그랬죠. 기업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기업은 유산입니다. 영어로 하면 inheritance 라고 하는데 유업, 부모가 유산으로 준 거예요. 아버지가 자식에게 유산을 줍니다. 자식이 일궈가고 또 그 자식에게 넘겨줍니다. 그래서 하는 일은 유업이 되죠. 유산이 현장에서는 유업이 되는 것입니다. 남겨진 일을 하는 것인데 우리 개역성경에서는 기업이라고 해 놓았습니다. 땅을 기초로 하는, 그러니까 터를 얻어서 일하고 있는 거죠. 많이 쓰이지 않는 단어지만 바로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에 나오는 ‘기업이 되었다.’ 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 sub title로 보여 드렸는데 하나님의 기업은 뒤집어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거기에 ‘기업이 되었으니’ 하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표현인데, 우리 성경에 표현된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기업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또 동시에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어는 그렇게 되었더라고요, 킹제임스 버전이라든지 많은 다른 성경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기업을 우리가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기업입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