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한국인은 수천 년간 모진 삶을 살았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해방에 이은 6·25의 격동기를 거친 세대는 처절했다. 송담은 그 중심세대로 갖은 고초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았다. 더구나 농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삼시 세 끼란 말이 사치였다. 소박한 염원은 몇 끼라도 쇠고기 장조림에 쌀밥을 먹어 보는 것이다. 쌀밥 못 먹으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라는 세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일제강점기는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들은 버거운 전쟁을 치르느라 식민지 백성들을 노예로 취급했다. 청년은 군대로, 장년은 노무자로, 처녀는 정신대와 위안부로 끌어갔다. 그것도 부족해서 공출과 유기그릇까지 수탈해갔다. 농촌은 더욱 처절했다. 농토가 생계의 바탕이기에 영세농가의 자녀로서는 미래나 비전을 생각할 수 없었다. 송담은 그 열악한 여건을 절묘하게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한 주인공이었다.
마치 중국의 대학자 왕꾸어웨(王國維, 1877~1927)가 「人間詞話」에서 주장한 ‘人生三重境界’를 일찍이 터득한듯하다. 왕꾸어웨는 인생을 고통의 연속으로 봤다. 그래서 사람이 목표에 도달하려면 3단계의 경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목적대상을 모색하는 단계, 둘째는 그 목적대상을 얻기 위한 본격적 고통의 단계, 셋째는 목적대상을 찾아 경계에 도달되는 마지막 단계를 거쳐 소기의 목적이 이뤄진다고 했다.
즉 ‘望盡天涯’는 제1경지로 환난이 닥쳐도 고매한 이상을 품고 위를 향해 고독하게 걸어가야 한다. ‘衣帶漸寬’은 제2경지로 옷이 헐렁해질 정도로 신체적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驀然回首’는 제3경지로 “노력이 지극하면 어느 순간 문득 머리를 돌려보니 그가 거기 있었다.”라는 본래의 풀이처럼 궁극 성취는 인위적인 갈구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정진 속에 스스로 찾아온다는 뜻이다.
속담에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다. 송담은 텃골에서 태어났다. 마을 앞에는 예양강이 흐른다. 그는 강의 이무기였던가. 가난한 농가의 장남은 농사를 돕고, 지게 지고 할머니와 산에서 땔나무를 했다. 남보다 2,3년 늦은 10세에 보통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도 1년 지난 뒤에 들어가 영어시험에 1등하면서 공부에 눈을 떴다. 고교에서는 줄곧 1, 2등을 했다. 여건이 되지 않음에도 서울대 의과대학에 원서를 접수했다.
의대 진학은 송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부모도 일가들도 심지어 담임교사까지도 의아해하는 선택이었다. 물론 낙방했다. 이듬해는 전남의대에 원서 를 접수해 당당히 합격했다. 천재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내는 의대에 합격했어도 뒷일이 캄캄했다. 누가 무슨 돈으로 뒷바라지 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는 입학금을 마련해줬다. 의예과와 본과 6년간 8마지기의 전답은 바닥났다. 본과 4년간은 가정교사로 학비를 조달했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 의사가 된다. 더는 가정교사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국비로 레지던트과정까지 이수가 가능해 진학했다. 1년을 수료한 후 1년은 보건소 파견, 그리고 군의관학교를 나와 4년의 군대생활을 마쳤다. 보건사회부에서 의료보험제도를 설계하고, 서대문병원을 거쳤다. 선배의 소개로 이화여대 의과대학 전임강사로 보임되어 29년간 교수로 활동했다.
송담의 생애를 찬찬히 살펴보면 왕꾸어웨가 말한 인생 삼중경계가 보인다. 그는 고교 3학년 때 목적대상을 설정했고, 그 목적을 위해 고통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러고 나니 대학교수라는 목표가 이루어졌다. 이는 인위적으로 이루려는 것이 아니고 1, 2의 경계를 거치면서 극한의 정진 속에 얻어진 것이다. 그가 거친 인생은 한마디로 “희생과 봉사”였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천부적 덕성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이 책은 송담의 생애를 살펴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제목은 『송담전기, 희생과 봉사의 생애』이다. 대종회 전기편찬회는 문중의 발전을 위해 크게 노력한 「모선주역」의 전기를 간행해오고 있다. 제 1차 사업으로 범 곡에 이어 2차 사업이다. 다만 필진의 역량 부족으로 주인공의 거룩한 행적을 샅샅이 들춰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매우 아쉽게 여긴다. 강호제현의 질정을 바라면서 발간사에 갈음한다.
2021년 5월 1일
대종회 모선주역전기편찬회
회장 위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