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유항림(兪恒林, 1914-1980) |
국가 |
한국 |
분야 |
소설 |
해설자 |
이재복(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
유항림은 한국문학사에서 소외된 작가 중의 한 명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사라고 하는 김윤식ㆍ김현의 ≪한국 문학사≫(1973)는 물론, 권영민의 ≪한국 현대 문학사≫(1993), 김재용ㆍ이상경ㆍ오성호ㆍ하정일 등의 ≪한국 근대 민족문학사≫(1993), 이재선의 ≪한국 소설사≫(2000)에서도 유항림이라는 존재는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비록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언제나 ≪단층≫과 관련해서다[김윤식ㆍ정호웅의 ≪한국 소설사≫(2000)]. 더욱이 해방 이후 그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문학사적으로 언급된 바가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는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전이나 해방 이후 그리고 작고할 때(1980)까지 적지 않은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외받아 온 데에는 문학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동인지 ≪단층(斷層, La Dislocation)≫(1937. 4∼1940. 6. 전 4권)이다. 그는 구연묵, 김화청, 김이석, 이휘창, 김여창, 양운한, 김환민, 최정익, 김조규 등과 동인지 ≪단층≫을 내면서 ‘단층파’로 불리게 된다. 이들은 김조규와 양운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설 쪽이며, 그 경향은 심리주의 계열에 속한다. 특히 유항림의 소설에는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이념 구현에 실패한 당대 지식인 집단의 시대정신이 내재해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 모더니즘 사이의 상호 침투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모더니즘 운동의 심화 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인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문학사적인 의미는 개인의 심리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이상 문학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소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馬券>(1937), <區區>(1937), <符號>(1940), <弄談>(1940)에서 보여주고 있는 세계는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변화하는 현실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강한 자의식과 냉소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폭로 등 지식인의 내면 의식을 잘 묘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특성은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모던하게 묘파해 낸 이상이나 박태원 등과도 일정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김남천, 한설야 등 카프 작가의 전향의 논리와도 차이가 있다. 모더니즘 혹은 프로이트주의적인 특성을 보여준 점에서 그는 이상이나 박태원과 동류이지만 이들에게 없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강한 정치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정치성이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른 심층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 부각시킴으로써 당대 지식인의 내면 심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힘이다. 이 같은 정치성은 한국 모더니즘 소설사의 또 다른 자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이 문학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 제대로 주목하지 않음으로써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한 흐름을 놓쳤다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문학사의 오랜 과제다.
‘단층’ 동인의 활동 기간이 길지 않은 것도 문학사적으로 이들이 주목받지 못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원인은 이들의 활동 무대가 평양이라는 데에 있다. 경성에 비해 평양은 문학이나 문화의 외곽이요, 변두리에 지나지 않았다. 경성 중심의 문학 담론이 지배적인 시대에 평양에서의 ≪단층≫ 발간과 동인의 결성은 한 변두리 지방 도시의 잔치로밖에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들이 보여준 세계가 비록 모던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후 경성 중심의 문학 혹은 문학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자연히 소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방 자치나 지방 분권화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우리 문학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유항림이 본격적으로 중앙 문단에 작품을 발표한 시기는 1940년 이후다. 1940년 10월에 ≪인문평론(人文評論)≫에 발표한 단편 <부호(符號)>와 그 이듬해인 1941년 2월에 ≪문장(文章)≫에 단편 <롱담(弄談)>을 발표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경성이 아닌 평양에서의 그의 활동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다. 하지만 작품 세계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북에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의 이념에 충실한 작품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프로이트주의적인 것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기에 이른다. 그는 1951년에는 전후 복구 건설기의 고난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북한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잘 형상화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직맹반장> 같은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체제 순응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프로이트적인 것을 지향한 전력은 북한 체제에서는 하나의 지워질 수 없는 얼룩과 같은 것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의 딜레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숙명적으로 그것을 지니고 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항림 문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럴 만한 기회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남한과 북한 어느 쪽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나 소외받아 온 그의 존재를 온전히 복원되어 한국 문학사 전반을 재점검하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참조어
- 마권, 구구, 부호, 롱담, 개성,작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