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 저어새
부리부터 눈까지 검은 당신은 그때 겨울깃어었지
가슴 가득 품었던 노란색이 사라지며 풍경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어
저어, 저어 하며 차가운 햇살을 물고 물었던 말들
당신이 견디었던 작은 노란 반달 모양의 상처들
우리는 차가운 겨울밤에 번식깃을 지나갔지
내게서 번져 당신에게 옮아가는 눈물은 참 붉었지
저어, 저어 하며 날아가고 싶은 날개를 비벼대던
당신은 멸종하는 어느 새의 날갯짓을 습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등 움츠리고 걸어가던 인사동 골목 한지 불빛 아래서
갈 곳 잃어버린 새 떼들이 날아올랐지
습지는 가벼웠고 오염된 구석은 무서웠어
저녁은 귓속말을 잊어버렸을까
우리는 저어새처럼 따뜻한 곳으로 슬픔을 옮기고 말았지
탄소발자국
스무 살부터 만지는 장난을 좋아했다
여름을 신나게 만지다 가을을 놓치곤 했다
날마다 가지고 놀던 강의 종아리, 풀꽃의 입술, 느티나무의 가슴
마흔 넘어서는 만질 수 없는 순한 시간들이었다
그때 만지던 것이 나의 젊음이었는지, 불만이었는지
밖으로 끌려 나가던 욕망들을 보았다
어떤 눈물은 만지지 않아도 흘렀고 색깔이 검었다
눈동자를 잃어버린 저녁이 기침하곤 했다
그 후로 성이란 호기심 발자국이 탄소 가득한 거리를 맨발로 걸어 다녔다
사랑은 서로의 에너지를 연소하는 호기심
서로를 원할 때마다 불완전한 발자국을 몸에 남겼다
지금 지구의 눈물은 12시 5분 전
장난칠 여름이 보이지 않는다
메타버스
영상 속 글자들이 가상공간에서 움직인다
그녀에게 가 닿은 내 몸이 한 문장
아바타가 아바타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거울 세계에 비친 현재도 한 문장
그녀와 나의 세컨드 라이프
어제 그녀를 가상현실에서 만났던 것일까
지나간 사랑을 새로운 세상으로 끌어내어
헤어진 그녀를 재구성했다
현실과 가상이 한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허상을 끌어안고 있는 것
내가 지난 시집에서 쓴 넷플릭스 속 그녀는 가상인물이었다
시집 <<술의 둠스데이>>에서
문정영
전남 장흥 출생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잉크>> <<꽃들의 이별법>> <<두 번째 농담>> 등 다수
계간 <<시산맥>> 발행인
동주문학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