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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의 코스 계획에 따라 '용흥사 주차장 → 상산 → 문필봉 → 상사바위 → 갑장사 → 갑장산 → 시루봉 → 용흥사 → 주차장'의 8.2km 구간을 5시간 동안 원점 회귀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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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장산
높이: 806m
위치: 경북 상주시 낙동면
갑장산은 상주시에서 선산 방향으로 6km쯤 떨어져 있는 굴티고개에서 시작된다. 산 아래에는 각종 자생식물과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 백길바위가 있고, 남쪽으로는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기이한 암석이 있는데 이를 시루봉이라 하며,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른다. 산 중턱에는 용흥사와 갑장사가 있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 일요일은 상주 갑장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애초 갑장산은 '신기수갑' 종주라고, 신암산, 기양산, 수선산, 갑장산의 네 산을 연계하는 종주 산행에 참여할 생각이었으나, 일정이 여의찮아, 참여하지 못했다. 와중에 4월 첫 주에 갈만한 산이 없어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한 안내산악회에서 발견한 4월 2일 일요일 진행하는 갑장산 단독 산행을 신청하게 됐다. 그러다, 그 사흘 전 목요일, 지리산 불무장등 능선의 황장산행의 계획 잡혀, 갑장산행을 취소할 예정이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취소 시기를 놓쳤다. 해서 갑장산만 오르고, 구간도 짧아, 비록 휴식 기간이 짧았으나, 체력적으로 부담되지는 않을 거 같아 강행하기로 했다.
8km가 조금 넘는 코스에 5시간의 산행 시간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안내산악회에서 소요 시간을 줄이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산악회 계획 코스를 페이스대로 진행한다면, 대략 3시간 내외에 끝낼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하산주 외에는 남은 시간을 보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와중에 간을 위해 당분간 절주를 선언한 마당이라, 아주 여유로운 산행으로 대체할 생각이다. 물론 신기수갑 산행을 발견했을 때, 날머리 식당 여부를 확인했고. 있다. 지금은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 식당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일요일은 양재역 청과물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아, 점심이 문제다. 그런데도 하산주의 유혹을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식당은 피해, 비상식과 사과, 오이 등으로 점심을 대신할 예정이다. 가까운 속리산 산악날씨에 의하면 당일 좀 더울듯해, 초봄·늦가을용 등산복을 입는다. 그리고, 날씨가 맑아 탁월한 조망을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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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안내산악회의 사당 기점 출발 시각이 산행지에 따라 다양했는데, 고객의 불만 때문인지, 4월부터 6시 40분과 7시 정각으로 이원화했다. 심야에 출발하는 무박은 23시 50분으로 단일 시간으로 일원화했고. 고로, 양재 기준은 6시 50분, 7시 10분, 24시다. 덕분에 과거와 달리 출발 시간을 수시로 확인하는 일은 없어질 예정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질 거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새벽 출발 시각을 이원화했으나, 대부분 버스는 7시 출발로 과거보다 10분 늦다. 휴일 기준, 이 산악회가 출발시키는 버스가 20대가 넘고, 기점인 사당뿐만 아니라, 경유지인 양재, 죽전 등을 대중교통 및 다른 산악회와 같이 사용하고 있어, 그 일대가 대단히 혼잡해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 혼란 속에 버스를 놓치는 승객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해, 시간을 변경한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이번 상주 갑장산행도 이 산악회와 같이하는데, 상주는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이라, 양재 기준 7시 10분에 출발한다. 고로 과거보다 10분의 여유가 생겨, 기상이 10분 늦어졌다. 그 덕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그리고 6시 6분경 도착한 마을버스로 불광역으로 향했다. 6시 10분경 불광역 마을버스 정류장에 내려, 지하철역 구내로 내려가자, 열차의 운행 정보를 알려주는 전광판에는 타야 할 오금행 6시 12분 열차가, 한 역 전인, 연신내에 있는 거로 나온다. 이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매번 환승 때문에 골머리 앓는 일은 없어, 반가운 일이다. 승차장으로 내려가, 조금 있으니 도착한 열차를 타고, 양재로 향해 6시 55분경 도착했다.
하차장에 내려, 일말의 기대를 안고, 개찰구로 올라가며, 빠르게 틈새 상품으로 김밥을 파는 청과물 또는 액세서리 가게가 문을 열었는지 확인했다. 예상대로 셔터가 내려와 있어, 오이와 사과, 비상식이 점심이라고 결론이 나, 오히려 홀가분했다. 이후 날씨도 따듯한데, 공기도 좋지 않은 지하에 있을 이유가 없어, 바로 12번 출구로 나갔다. 그리고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며, 주위를 둘러보니, 평소보다 10분이 늦었을 뿐인데, 이미 다른 산악회 버스가 7시에 출발해 주변이 한가하다. 최소한 다른 산악회와 뒤섞이는 혼란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7시 4분 산악회 버스가 정차하는 외교원 앞에 도착해 보니, 꿈에서 그리는 동호회 수준의 산악회가 전세 낸 버스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한 대 정도야 뭐, 그리고 3분 후인 7시 7분에 갑장산행 버스가 도착해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탔다.
처음 계획은 버스에서 책을 읽는 거였는데, 죽전에서 나머지 승객이 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상주·보은 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리고 얼마간 달린 후, 실내등이 들어오고, 인솔 대장이 20분간 휴식한다고 공표했다. 사실 김밥에 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고, 지난 선바위산행 때처럼 휴게소에서 충무김밥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중이라,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내렸다. 화서 휴게소다. 급한 건 아니나, 일단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고, 식당으로 가 김밥이 있는지 확인했다. 없다. 다음으로 편의점으로 갔으나, 역시 없다. 대체재가 될만한 게 없나, 찾다가 구운 달걀을 발견하고 하나 샀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려면 시간이 좀 있어, 이 휴게소의 주제는 뭔지 찾아봤다. 캐릭터 공원이란다. 해서 작은 공원에 이것저것 가져다 놨다.
딱히 볼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사진 몇 장 남기고, 버스로 돌아가는데, 전면에 보이는 산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그런데,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거 같다. 언뜻 보기에는 구병산 같은데, 구병산이 상주에서 가까웠나? 궁금한 건 못 참는 인간이라, 버스에 타자마자 지도 앱으로 화서 휴게소를 기준으로 내가 본 위치에 있는 산을 확인했다. 맞다, 구병산이다. 이 동네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저건 뭐지? 아, 구병산!'이 일과가 됐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자기도 초행이라는 말로, 산행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하는데 별것 없다. 다만, 8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5시간은 긴 시간일 수도 있으니, 모두 일찍 하산하면 그에 맞춰 서울로 출발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끝으로 식당이 있다는 것과 아직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이나, 2시 40분에 마감한다고 못을 박았다.
2시 40분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당에서 상주까지 3시간도 안 걸린다고? 7시 전에 귀가한다는 얘기다. 그러자 갑자기 37,000원의 회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신기수갑을 버리고 갑장산 단독 산행을 신청한 걸 후회했다. 그래봐야 소용없지만. 휴게소를 떠난 버스는 9시 37분, 버스가 건너기에는 좀 좁아 보이는 다리를 건너 용흥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옆에 산악회 버스와 같은 색깔의 버스가 주차해 있다. 해서 이 산악회의 다른 지역 출발 버스가 아닐까 하고 살펴봤는데, 아니다. 대구지역 산악회 전세 버스다. 그리고 소형 차량 주차장에도 주차해 있는 차량이 보이는 게 이 동네에서는 인기 있는 산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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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기 위해 주차장 한편에 있는 정자로 가는데, 완장 찬 노인네가 등장해,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러더니, 인솔 대장의 신상 명세를 적고, 동행한 등산객 숫자를 기록한다. 이후 모두를 향해 큰 소리로 얘기를 시작하는데, 불조심하라는 거다. 처음부터 신분을 밝혔으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없었을 텐데. 당연히 불조심해야지! 그래서 산행 며칠 전 상주시에 전화해 갑장산행이 가능한지 문의했었다. 당시 담당자의 답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아, 가능하구나!'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답에 코스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는 걸 산행 후,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인솔 대장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여담이지만, 그 산불감시원의 고향 친구가 이번 산행에 동행해, 친구 상봉이라는 기쁜 일도 있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꽤 오랜만에 만난 거 같았다.
산불감시원의 주의사항을 듣고, 주차장을 떠나기 전, 늘 그렇듯이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235m로생각보다는 낮으나, 갑장산 정상이 800m가 조금 넘으니, GPS의 오차를 고려하면 표고차는 600m가 조금 안 된다. 고로 동네 뒷산으로는 높은 편이나,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높이는 아니다. 대략적인 표고차로 코스의 난이도를 예측한 후 버스가 힘겹게 건넜던 다리를 지나, 들머리로 향하는데, 다리 옆 1톤 트럭 앞에서 마을 주민이 곶감을 하나씩 나눠주며 맛을 보란다. 물론 명함도 같이. 거절하는데도 막무가내로 쥐여줘, 하나 받아, 명함은 배낭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호랑이도 벌벌 떨 정도로 맛이 보장된 곶감을 먹으며, 용흥사 표지석을 지나, 들머리로 향했다.
'등산로 입구'라는 이정표를 따라, 갑장산으로 향하는데, 그 길 왼쪽으로 '연악산식당'이라는 입간판이 있고, 오른쪽 비닐하우스가 식당인 거 같은데, 문은 닫혀 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기 전인지, 아예 영업을 안 하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예정에 하산주는 없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갑장산'이 아니라, '연악산'이라는 식당 이름이 의아했을 뿐이다. 그것도 급경사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느라, 금방 잊어버렸지만. 시작부터 급경사 계단이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800m가량 올라, 9시 54분에 능선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길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보이는 능선 등산로는 양옆에 진달래가 만개한, 완만한 경사의 평탄한 산책로 수준이다.
양옆의 만개한 진달래를 사열하듯이 정상을 향해 가는데,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오른쪽 앞에 대여섯 명의 중년 남성이 무언가를 하고 있어, 자세히 살펴봤다. 무덤을 다듬고 있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매장은 아니고, 이장이나 개장 중이다. 그들을 뒤로하고 100여 미터를 가자 이정표가 있다. 주차장에서 0.8km 거리란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3.1km! 능선에 올라섰을 때 이정표에는 주차장 0.8km, 정상 3.9km라고 적혀 있었다. 둘 중 어떤 게 진실을 얘기하고 있을까? 두 이정표 사이는 7분 거리다. 산책로 수준의 등산로라 7분이면 300~400m 거리다. 뭐가 진실이든, 여기까지 온 거리는 변함이 없으나, 정상까지의 거리가 3.9km에서 3.1km로 800m 줄었으니 됐다.
마지막 이정표에서 6분가량 가자, 평탄한 능선이 끝나고, 다시 급경사다. 그 급경사를 13분 정도 올라가자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이정표에 의하면 정상까지 2.1km, 주차장에서 1.8km 거리다. 그런데, 아랫배에 힘을 주며 급경사를 올라와서 그런지, 아랫배가 슬슬 아파져 와, 갈림길에서 정상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길목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로에서 벗어나, 10여 미터를 들어간 경사지에 땅을 파고 볼일을 봤다. 와중에 인기척이 나, 뒤로 돌아보니, 나와 같은 처지의 등산객이 내려오며, '사장님, 여기가 화장실인가 봅니다!' 한다. 잘 보이는 등산로에 배낭을 내려놓은 건 일을 치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등산객에게 누군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있다. 배낭을 보고도 내려왔다는 건 동성일 확률이 90% 이상이라, 갑자기 일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일을 다 치르고 파냈던 흙으로 그걸 덮는데, 아래에서 본 모습이 떠올랐다. 흙에서 와서 다시 흙으로….
등산로에 벗어 놓았던, 배낭을 둘러메고, 삼거리로 돌아가,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삼거리부터 평탄해진 능선을 따라 앞으로 가는데, 간혹 울창한 숲 사이로 상주의 모습이 보이다. 높은 산은 거의 없고, 다 평지다. 상주는 오지라 생각했던 선입견이 상처 입는 순간이다. 2022년 1월 경주 남산에서 본 경주의 모습과 비슷하다[산행기]. 그리고 왜 이 지역이 경상도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상주와 경주의 머리글자 경상도. 오지 가운데 두 광활한 평야가 이 지역을 먹여 살렸다는 얘기다. 대구와 부산이 아니라! 서울이 아니면 다 오지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며, 앞으로 가는데, 숲사이로 봉우리가 보인다. 갑장산 정상이라기에는 너무 가깝다. 그 봉우리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10시 33분에 정상 1.7km 거리의 이정표를 통과하자, 오른쪽에 바위 전망대가 있다.
아주 당연히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바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드넓은 성주 벌판을 사진으로 남기다 우연히 아래를 보자, 밖으로 툭 튀어 나간 진정한 전망대가 있다. 그걸 보고 망설이면 산꾼이 아니라, 바로 그 튀어나온 바위 전망대로 내려갔다. 역시! 하다못해 나뭇가지 하나 방해하는 게 없이, 성주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전경이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아, 구간별로 나누어 찍은 후 파노라마로 연결했다. 다만, 이번 환 종주 산행의 기준이자, 파노라마의 중앙에 있는 용흥사의 모습은 따로 남겼다. 그렇게 갑장산 기준 성주의 북서 방면을 기록으로 남기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봉우리로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봉우리가 가까워져 오자, 다시 급경사로 바뀌어, 등산로가 갈지자를 그린다. 그리고 올라갈 때는 미처 몰랐으나, 위에서 보니, 밧줄이 설치된 구간도 있다.
몇 번 급경사를 오르고, 와중에 아랫배가 아파, 볼일을 보고 나자, 갈증도 나고 슬슬 배도 고팠다. 해서 물을 마실까 하다가, 아침에 준비한 오이가 떠올라, 오이를 꺼내 갈증과 허기를 동시에 해결했다. 물론 앞에 있는 봉우리로 가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정상 1.4km'의 이정표를 통과해, 앞의 봉우리를 향해 조금 올라가자,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봉우리의 정체가 궁금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을 확인했다. '상산'이다. 갑장산의 부속 봉우리니, 상산(山)이 아니라 상봉(峰)이라 불러야 하는데, 산은 봉우리의 높이 순으로 상봉(上峰), 중봉(中峰), 하봉(下峰)으로 구분한다. 해서 혼란을 피하고자 상산이라 부른 게 아닐까? 어쨌든 늘 그렇듯이 동영상을 찍으며 상산으로 올라갔는데, 예상하지 못한 암봉이라,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상 바위 위로 올라가는데, 위에서 노년의 산꾼이 내려오고 있어, 잠깐 길을 내준 후 바위에 올랐다. 애당초 기대도 안 했으나, 정상석 따위는 없다. 그걸 둘 공간조차 없다. 어쨌든 정상에 서자, 진행 방향으로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갑장산 정상인가? 그리고, 그 봉우리를 기준으로 360도 전 방향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이, 비록 미세먼지로 뿌옇지만, 상주 전경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다. 그렇다고 이걸 파노라마로 찍기에는 서 있는 자세가 좋지 않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거 같은 풍경은 따로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는 셀카봉을 이용해 찍은 인증도 있다. 셀카봉을 이용해 인증까지 남긴 후 올라왔던 길이 아니라, 암릉을 따라, 다음 봉우리로 향해, 암벽을 내려가자, 그 앞에 상산 정상 표지가 있다. 바위 정상에 세울 수 없어, 그 아래에 세운 거다.
상산 정상 표지 앞의 이정표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정보가 갑자기 나타났다. '갑장사(寺)로, 갑장산의 이름을 딴 절이다. 또 이정표에 의하면 정상이 0.9km, 갑장사가 0.6km 거리다. 고로 절은 정상 직전에 있거나, 정상 도착 전에 갈림길이 있다는 얘기다. 갑장산 정상까지 900m라면, 상산 정상에서 본 봉우리가 정상이 맞는 거 같다. 정상이 멀지 않다는 사실에 들떠, 신이 나서 정상을 향해 5분가량 가자,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5분 만에 900m를 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 깜짝 놀라, 핸드폰을 꺼내 정체를 확인했다. 갑장산 정상이 아니라, '문필봉'이다. 앞에 있는 게 정상이라, 문필봉은 정상 다음에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앞서가는 등산객을 뒤따라 '문필봉'이라는 정상 표지가 있는 곳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8분이다.
정상에 도착해 보니, 봉(峰)이라기보다는 대(臺)다. 평평한 곳에 정상석 대신 정상 표지가 서 있다. 앞섰던 등산객은 휙 둘러보고 떠난 후라, 인증을 부탁할 사람이 없어 상산 정상에서와 같이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었는데, 상태가 영 아니다. 그러다. 셀카봉이 삼각대라는 걸 깨닫고 삼각대 기능을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이후 문필봉을 둘러봤으나, 널찍한 대라 조망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바로 갑장산 정상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3분 후 이정표에서 10여 미터 거리에, 바닥에 각목을 박아 만든 계단이 나타났다. 이정표에 의하면, 정상까지 0.4km, 즉 400m가 남았다. 그런데, '150m 용지터 약수샘'이라는 이정표가 계단 옆에 있으나, 다른 등산객은 무시하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약간 떨어져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샘까지 150m에 불과하니, 왕복해야 봐야 300m 정도 늘어날 뿐이라 다녀오기로 해다. 그리고 계단에 도착해하자, 정상 진행 방향에서는 뒤가 보여,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던, 이정표 내용을 확인했다. '용지터 약수샘, 정상'이다. 말인즉 용지샘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 거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왕복이라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인간이라 그 내용을 보자마자,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바로 좌회전해 등산객이 거의 다니지 않아 희미하게 흔적만 있는 길로 샘으로 향하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지 살폈다. 11시 16분, 용지샘 표지가 있는 곳에 도착해, 샘을 찾았다. 일단 표지 근처에서 샘은 못 찾았으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확인했다. 백두대간 연결 산행 중, 샘 표지가 있음에도 막상 가보면, 흔적만 있는 경우가 많아, 용지샘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저 아래 물통 주변에 있을 확률이 높아 보여 그곳으로 내려갔다.
예상대로다! 샘이다. 바닥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라 돌 틈에서 떨어지고 있다. 수량이 풍부한 건 아니나, 요즘같이 가물 때 이 정도라면, 평소에는 꽤 많은 양이 흐를 거다. 약수를 보고 지나치는 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맛을 보려는 데, 입을 대고 먹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아 평소 배낭에 매달고 다니는 잔을 꺼내, 깨끗이 씻은 후 약수를 받아 마셨다. 시원하고 청량한 게 갈증을 깨끗이 씻어 준다. 코스에 없는 샘을 발견하고, 약수 맛을 봤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내려놓았던 배낭을 둘러메고, 희미한 등산로로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11시 28분, 정규 등산로로 들어서, 산책로 수준의 길을 따라, 150여 미터를 올라가자, 헬기장이다. 그리고 그 끝에 정상으로 올라가는 갑판 계단이 있다. 그걸 보자, 갑장사를 지나쳤다는 걸 알았다. 말인즉 갑장사와 용지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니며, 갈림길에서 샘을 왕복하고 정규 등산로로 가야 갑장사에 갈 수 있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이번에는 용흥사 본존불에게 신고하는 거로 만족하고, 다음 신기수갑 종주 때 갑장사 본존불에게 신고하기로 했다.
갑판 계단으로 앞서가는 등산객의 뒤를 따라 정상으로, 30m가량 올라가자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다 왔다! 다른 정상과 같이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려는 데, 오른쪽 위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정자가 보여, 당연히 쉼터이자 전망대로 생각하고 갔다. 그런데 쉼터는 맞는 데, 전망대는 아니다! 한국에 조망이 없는 정자가 있었나? 정자의 기능에 실망을 넘어,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것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가라앉히고, 동영상을 찍으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많아도 너무 많다. 기분상으로는 50m가 아니라, 500m가 넘는다. 동영상의 기록을 보면, 반경 40m 내의 정자에서부터 정상 표지석까지 3분 19초가 걸렸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앞선 등산객이 계단에서 서너 번 숨을 고르는 동안, 같이 지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멀다. 등산 앱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11시 37분, 계단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갑장산을 소개하는 표지석이 있고, 거기서 10여 미터를 더 가야, 산불감시초소와 통신 철탑, 정상석, 돌탑이 있는 정상이다. 그리고 이 자리 왼쪽은 낭떠러지 전망대다. 물론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접근을 막는 금줄이 있다. 그렇게 주위의 상황을 살핀 후, 먼저 표지석의 내용을 확인했다. 용흥사 아래 식당 이름이 '갑장'이 아니고 '연악'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애초 연악산이었는데, 고려 시대에 갑장산으로 바꾼 거고, 바로 아래의 갑장사가 상주 사장사(四長寺) 중 하나란다. 고로 갑장사 본존불에게 신고하기 위해서라도 신기수갑 종주를 해야 한다. 그렇게 대략적인 갑장사와 주변에 관한 정보를 얻은 후, 금줄을 무시하고 낭떠러지 전망대로 가, 저 멀리 아파트 군락을 품고 있는 상주시의 전경과 그 주변을 기록으로 남기고,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200여 미터 아래에 갑장사가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에는 정상석과 돌탑이 나란히 서 있다. 그리고 앞선 등산객이 반대편에서 올라온 등산객의 도움으로 인증을 찍고 있어, 그걸 구경하다가, 자리가 빈틈을 이용해 정상석과 탑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모두 떠난 후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그렇게 정상석과 탑을 배경으로 혼자 놀기하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려, 소리 나는 방향을 찾다가, 출처가 감시초소라는 걸 알았다. 여기저기 산불로 난리라, 감시 초소에 감시원이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기는 하다. 그렇게 찍을 걸 다 찍고, 하산하기 위해 정상을 떠나 조금 가자, 왼쪽으로 지나칠 수 없는, 툭 튀어 나간 전망대가 있어 올라갔다. 그리고 왼쪽과 뒤가 막혀 상산처럼 360도 파노라마를 찍을 수 없어, 180도 파노라마로 상주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정상에서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하는데,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11시 44분으로 점심시간이다. 비록 밥은 없으나, 어디 주저앉아, 먹거리를 꺼내 먹을 곳이 보이지 않아,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서 에너지 바를 꺼내 먹으며, 암릉을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비록 숲에 가려 사각지대가 있기는 하나, 칼바위 능선이나 다름없는 암릉이라, 전후좌우를 감상하는데, 뒤 주 능선 바로 아래 건물이 보인다. 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자세히 관찰한 후 기록으로 남겼다. 처음에는 대피소라 생각했는데, 글로만 보던, 갑장사다! 모든 짐승은 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문제는 물이 있을 거 같지 않은 높이와 위치다. 그러다 갑장산 주 능선을 경계로 그 맞은편에 용지샘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물은 그렇게 해결하고, 저 높이까지 사람이 먹거리를 운반한다는 건 옛말이고, 임도나, 모노레일, 케이블카, 아니며 그것들의 조합이다. 말인즉 저기서 용흥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거다. 해서 다음 신기수갑 산행 때는 갑장사에서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머릿속으로 다음 신기수갑 산행의 코스를 연구하며, 내려가는데, 앞에 작은 암봉이 막고 있고, 갑판 계단이 좌로 그 암봉을 우회한다. 그리고 등산로 반대편 정상 조금 아래에 남녀 한 쌍이 점심을 먹고 있다. 탁월한 선택이라, 그 비슷한 장소가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현 위치에서 왼쪽으로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으면 될 거 같다. 거기로 결정하고, 한 쌍의 남녀를 방해하는 게 걸리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정상으로 올라가 주변을 조망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좀 전에 봐둔 곳으로 돌아와, 휴게소에서 산 구운 달걀, 에너지바 등으로 허기를 채운 후인, 12시 1분경 모든 인적을 깨끗이 지우고 식당을 떠났다. 금줄을 넘어 등산로로 돌아가, 갑판 계단으로 내려가며, 계단이 없을 때는 어떻게 다녔을지 유심히 살폈다.
갑판 계단을 따라 암봉을 우회해 반대편으로 돌아가, 바위 봉우리를 바라보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생각지도 못한 장관이다. 그 암봉을 감상하며, 계단을 내려와 등산로를 따라 좌회전하는데, '꼭대기로'라 양각된, 위를 가리키는 화살표 이정표가 미소를 짓게 한다. 그 앞의 표준 이정표에는, 용흥사까지 2.9km다. 현재 시각 12시 7분, 이 페이스에, 이 산세라면, 1시면 용흥사에 도착한다. 그럼, 마감인 2시 40분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일단 그 고민은 닥쳐서 하기로 하고, 암릉을 따라 하산하며, 가끔 뒤로 돌아 갑장산의 모습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급할 게 없어 유유자적 하산하는데,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응, 봉우리가 또 있었나?" 예상치 못한 봉우리라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시루봉이다. ‘시루봉?’ 코스 계획에서 주의해서 보지 않은 봉우리다.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봉우리 정상을 향해 갔는데, 이 봉우리 또한 문필봉과 비슷하게 봉이라기보다는 대다. 그런데, 문필봉에는 정상 표지라도 있는데, 여기는 없다. 다만, 돌탑 두 개가 있고, 벼랑 방향에 표지가 있기는 한데, '시루봉'이 아니라 '백길바위'다! 절벽의 높이가 백길이라는 얘기다. 한 길의 길이가 대략 2.4~3m라니, 절벽의 높이가 240~300m라는 거다. 해서 끝으로 가서 아래로 내려다봤다. 당연히 그 높이가 아니다. 옛사람이 아래에서 위로 고개를 들고 바라보고 높다는 표현으로 백길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명칭이야 어떻든, 갑장산 정상과 남동 방향 상주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임은 틀림없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갑장산의 모습이 바로 여기서 찍은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봉이 아니라 대라 불러야 좋은 두 돌탑이 있는 곳에는 등산객 서너 명이 점심을 먹고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계속 날머리를 향해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대문바위다. 이름만 봐도 어떤 바위인지 감이 온다. 대문을 통과해 50여 미터를 가자, 갈림길이다. 이정표에 의하면 '낙동 용포' 삼거리로, 용포까지 3.5km다. 신기수갑 종주는 용포 방향에서 갑장산으로 올라오는 거로 알고 있다. 그 위치를 기록으로 남기고, 오른쪽으로 함께 달리는 갑장산의 주 능선을 감상하며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등산로 오른쪽으로 전망대가 있다. 당연히 전망대로 가, 갑장산의 뒷모습과 주 능선 바로 아래에 있는 갑장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등산로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다시 '낙동 용포' 갈림길이다. ‘응?’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정표 옆에 지도가 있다, 간단하다. 용포로 가는 길이 두 개로, 용포 직전에서 합류한다. 다만, 여기가 위의 갈림길보다 용포까지 200m가량 짧다.
갈림길을 지나, 70여 미터를 내려가자, 다시 오른쪽으로 전망대다. 이 짧은 능선에 전망대도 많다. 그 모두가 갑장사와 갑장산의 뒷모습만 볼 수 있지만. 어쨌든 또 전망대로 가, 사진을 찍었다. 갈수록 정상에서 멀어지니, 보이는 것도 약간은 달라, 여기서는 갑장사와 갑장산, 시루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마치 '트윈크 트윈크'처럼 들리는 이름 모를 새의 노랫소리가 새로워 그걸 동영상으로 남겼다. 물론 새는 잘 보이지도 않지만, 울음소리는 확실히 녹음됐다. 이후 다시 전망대에서 등산로로 돌아와,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또 갈림길이다. 동네 뒷산의 특징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갈림길 정도는 아니나, 갈림길이 많기는 하다. 직진은 주차장으로 빙 돌아내려 가는 거고, 우회전은 용흥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래봐야 300m 차이에 불과하지만.
이번 산행의 목표 중 하나가 용흥사라 당연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는데, 등산로 양옆이 만개한 꽃과 이제 막 돋기 시작하는 새잎이 신선한 진달래다. 그 진달래 사이를 사열하듯이 내려가, 12시 54분에 용흥사 700m 거리에 있는 쉼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밥은 아니나, 점심이라고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 하긴 먹으며 에너지바와 달걀의 열량을 보니, 에너지바가 165kcal, 구운 달걀 두 개가 110kcal에 불과했다. 그래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많이 찾는 듯. 어쨌든 줄이 합쳐 275kcal에 불과하다. 성인 남성의 한 끼 권장 열량이 900kcal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에너지바를 먹기는 싫어 남은 반쪽의 오이를 꺼내 먹으며 용흥사 방향으로 내려갔다.
급경사라 조심조심 쉼터에서 7분가량 내려가자 울창한 숲 사이로 주차해 있는 빨간 버스 두 대가, 그리고 왼쪽으로는 기와지붕이 보인다. 다 왔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 가니, 다시 용흥사냐, 주차장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다. 당연히 용흥사를 선택해, 1시 7분에 도착했다. 한여름 햇살같이 따가워 눈을 뜨는 게 쉽지 않은 절 마당을 가로질러, 오가는 불자, 관광객, 등산객과 활짝 핀 꽃을 감상하며, 절집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그리고 본존불에게 신고하기 위해 극락보전으로 갔는데, 그 앞에 표준형의 문화재 소개문이 있다. 최근에 지은 절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해서 어떤 문화재가 있나, 내용을 확인했다. '용흥사 삼불회 괘불탱'으로 보물이다. 혹시 극락보전 안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보전으로 들어가, 먼저 본존불에게 인사하고, 뒤를 유심히 살펴봤다. 원본인지는 모르겠지만, 삼불회 괘불탱이다.
본존불에게 신고했으니, 용흥사를 방문한 목적은 달성했고, 시원한 감로수 한 모금하려고 절 구석구석 돌아다녔는데, 없다. 정확히는 가물어서, 말랐다. 어쩔 수 없이 감로수는 포기하고,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허기가 심상치 않아, 하산주를 거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일단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주위의 경치는 감상하고, 이정표 등은 유심히 살피며, 내려가다가, 갑장사에서 내려오는 갈림길을 발견했다. 당연히 이정표가 있고, 지도도 있다. 다음을 위해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을 향해 내려갔는데, ‘귀래정’이라는 유명 절에는 다 있는 다원이다! 마침 다른 길로 내려온 일행이 식당을 찾아 올라오다가 나와 같이 이유로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 기댈 건 들머리 입구에 있던 문이 닫힌 식당이라, 다시 들머리로 가서 보니 문은 열려있으나, 조용해, 낙담했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안으로 들어갔다.
3
비닐하우스 홀에는 우리 일행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식사나 하산주를 마시고 있고, 나머지 테이블은 한차례 대형 전투를 치른 전쟁터다. 해서 기쁜 마음으로 차림표를 살펴봤다. 다른 건 쳐다도 보지 않고, 식사류만 보고 있는 자신에게 놀랐다. 그런데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식사류는 칼국수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음식은 선택했으니, 자리를 잡고 앉아, 주인장을 부르거나 기다리면 되는데, 전쟁터의 모습을 보니, 찾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판단이 서, 주방으로 갔다. 예상대로, 비닐하우스 홀 외에도 제대로 된 건물의 방이 여러 개 있고, 각 방에는 식사 중이거나,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손님으로 반 정도 찼다. 나머지 반은 치우지 않은 음식과 그릇으로 난장판이고.
비닐하우스 홀과 방의 모습을 보자, 오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품었던 궁금증이 풀렸다. 분명 우리보다 앞선 빨간 버스가 있는데, 등산 중 그 승객이라 생각되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해, 이상했는데, 간단하게 용흥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예약한 백숙을 먹으러 식당으로 몰려와, 만날 수가 없었던 거다. 방 사이로 난 통로로 주방 내부가 보이는 곳에 도착해, 정신없이 바쁜 주인장에게 아는 체를 하고, 혼자 왔고, 칼국수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데, 계속 손님이 들와 우리의 대화를 방해한다. 그들을 다 처리하고 주인장이 날 보더니, '칼국수 1인분 삶을까요?' 한다. 그 말에 짜증이 사라지고, 주인장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해서 '당연하죠!' 하고, 홀로 돌아가 그나마 깨끗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림표를 다시 봤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음식이 한방삼계탕이다. 어차피 저건 주문하면 오래 걸린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데, 주문한 칼국수가 나왔다.
솔직히 맛은 좀 아닌, 칼국수로 허기를 채우고 있는데, 대장이 들어와 다 일찍 도착해 출발할 예정이니, 식사 끝내고,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바로 주차장으로 오라고 한다. 일찍 출발한다는 소리에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칼국수를 먹고, 식당을 나갔다. 계산은 칼국수를 들고 온 주인장이 기분 나쁘지 않게, ‘바빠서 그러니, 미리 결제해주면 안 되냐?’고 했을 때 냈다. 역시 하산주가 없으니, 식사도 금방 끝난다. 하산주를 마시고 있었다면, 대장이 그 말을 했을 때 짜증 냈을 거다. 마감 시간이 아직도 40분 넘게 남은 1시 54분에 식당에서 나와 여기저기를 살피며 주차장으로 향해 가는데, 연안구곡이라는 지도가 있다. 그걸 자세히 볼 시간이 없어, 일단 사진만 찍고 갔다. 당시에는 갑장사에서 시작해 용흥사까지 계곡을 구곡이라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며 사진을 잘 보니, 여기서부터 내려가는 구곡이다.
대장의 호들갑에 씻는 것도 포기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갔는데, 의외로 버스 주변은 한가하다. 그리고 버스는 텅 비었다. 내가 만약 술을 마시다 갔으면 뒤집힐 상황이다. 이번 대장이, 내가 간을 위해 절주를 선언한 덕을 봤다. 상황이 이러니, 처음 계획했던 대로,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고 꽉 묶은 다음 의자 밑에 넣었다. 이후 슬리퍼를 신고, 앞에 보이는 계곡으로 갔다. 그리고 강한 바람에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잎을 감상하며 작은 폭포에 다리를 번갈아 집어넣으며 신선놀음했다. 발을 충분히 식히고, 깨끗이 씻은 후 말리기 위해 계곡 상류로 올라가, 흩날리는 벚꽃잎을 감상하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해 2시 7분경 주차장으로 돌아가 버스에 탔다.
문제는 여전히 버스는 텅 비었다는 거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계곡에서 깨끗이 씻은 후라 불만은 없다. 그저 다른 승객도 빨리 오기를 바라며 창밖으로 승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인솔 대장은 본인이 뱉은 말이 있다 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승객을 찾아 데려오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뛰어다닌 덕에, 2시 20분경 두 명을 제외하고 다 탔다. 그중 한 명은 오랜만에 산림감시원 고향 친구를 만난, 산꾼으로 20분이 되자,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산림감시원과 그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버스로 온다. 이제 한 명 남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 승객들이 짜증이 쌓이기 시작해 폭발 몇 분 전인 2시 35분경 나타났다. 고로 1시 50분경부터 대장이 일찍 출발한다고 그렇게 호들갑 떨었지만, 마감 5분 전에야 서울로 떠날 수 있었다. 그래도 5분 단축한 걸 감사해야지!
과히 힘든 산행도 아니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버스가 출발하자 바로 잠이 들었다. 목요일 구례 황장산행[산행기], 토요일 불광천 트레킹 후 쉬지 않고 계속 산행해서 체력이 고갈됐고, 에너지원인 알콜을 보충해 주지 않아서 그렇다는 게 내 판단이다. 쉽게 말해 산행 후 최소 사흘 이상 쉬고 다음 산행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미 알고 있으나, 이번에는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잠에서 깨어보니, 청주 휴게소라 깜짝 놀랐다. '벌써?' 현재 시각 3시 38분, 그럼, 7시 이전 귀가도 가능하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이번 산행의 여러 가지 실수에 관해 인솔 대장이 사과하고, 그게 발생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뭐,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다만,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았다. 원래 갑장산은 신기수갑 종주가 원칙이나, 산방 때문에 갑장산만 해서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거다. 상주시청에 산행할 수 있냐고 전화했을 때 갑장산만 가능하다고 이미 들은 얘기다. 당시에는 종주 산행과 결부시킬 생각을 못 했다. 그랬으면, 이번 산행은 취소했을 거다.
비록 코스는 짧았으나, 만족한 산행이다. 와중에 마실 수 있는 하산주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하자, 잠도 안 오고, 책도 보기 싫어, 멍때리고 창밖만 바라보다가, 마시려고 들고 탄, 생수병 속의 얼음만 구경했다. 그렇게 멍때리고 있는데, 죽전에서 정차해 승객을 내려준다. 다음이 양재라 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4시 54분에 양재에 도착해 내렸다. 인솔 대장이 한 말이지만, 이 시간에 집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산악회의 코스 계획과는 달리 '용흥사 주차장 → 상산 → 문필봉 → 용지샘 → 갑장산 → 시루봉 → 용흥사 → 주차장'의 원점회귀 8.6km(트랭글) 구간을 3시간 47분 동안 즐겼다. 이동 3시간 32분, 휴식 15분!
코스는 짧으나, 한 번 정도 오를 만한 산이다. 체력이 되면, 신기수갑! 힘들면 이번과 같은 용흥사를 기준으로 갑장산만 환 종주!
남북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을 조망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미세먼지로 뿌옇게 보여, 산세 구분이 힘들었다.
이번 산행이 생각보다 좋아, 신기수갑 산행에 다시 참여할 예정이다. 그때는 갑장사에서 용흥사로 하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