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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김시습(1)
◈ 본관은 강릉이요, 자는 열경이다. 조금 자라자 말을 더듬어 가이 말은 잘하지 못하였으나, 붓과 먹을 주면 그 생각을 모두 글로 썼다. 세조 때에 세상을 달갑잖게 여겨 벼슬하지 않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여 중이 되어 승명을 설잠이라 불렀다. 스스로 그의 호를 동봉이라 하고, 또는 청한자 혹은 벽산청은이라고 하였다. 만년에 환속하여 죽었는데, 《매월당 역대년기》와 《금오신화》가 있어 세상에 전한다.
◈ 열경은 난 지 여덟 달 만에 능히 글을 읽을 줄 알았다.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민첩하여 입으로 읽지는 못하였어도 뜻은 모두 통하였다. -[본전]
◈ 동봉이 세 살에 어눌하여 아직 말은 잘못하였으나, 그의 외조부가 글귀를 뽑아 가르치기를,
꽃이 난간 앞에서 웃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니, 곧 병풍에 그린 꽃을 가리키며 빙그레 웃었다. 또 가르치기를,
새가 수풀에서 우나 눈물은 보기 어렵도다
하니, 또한 병풍에 그린 새를 가리키며 빙그레 웃었다. 이는 말로는 못하나 뜻은 능히 통하는 것이다.
◈ 세 살에 유모가 맷돌에 보리 가는 것을 보고 또렷이 읊기를,
비는 안 오는데 우레소리는 어디메서 울리는고
누런 구름이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
하니,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 세 살 때에 그 할아버지에게 묻기를,
“시는 어떻게 짓습니까?”
하니, 할아버지가,
“일곱 글자를 이어 놓은 것을 시라고 한다.”
고 대답하였더니, 그렇다면 일곱 자를 엮을 테니 첫 글자를 불러 보시라고 하였다. 할아버지가 봄 춘 자를 부르자, 곧 응하기를,
봄비가 세 휘장 밖으로 내리니 기운이 열리도다
하여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 다섯 살에 능히 시를 지었다. 세종이 그 말을 듣고 승정원으로 불러, 지신사 박이창에게 명하여 임금의 뜻을 전하고 사실인지 아닌지 묻는데, 안아 무릎 위에 놓고 임금이 이름을 불러 이르기를,
“네가 능히 시구를 지을 수 있느냐?”
하니, 곧 응하기를,
올 때 포대기에 쌓인 김시습
하였다. 또 벽 위의 산수도를 가리키면서,
“네가 또 짓겠느냐?”
하니 곧,
작은 정자와 배 안에는 누가 있는고
하였다. 그가 지은 시와 글이 적지 않다. 곧 대궐로 들어가 아뢰니 전교를 내리기를,
“성장하여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장차 크게 기용하리라.”
하며, 크게 칭찬하고 비단 30필을 주고 제가 가지고 가라고 하였더니, 드디어 그 끝을 이어 가지고 끌고 나가므로 사람들이 또한 기특하게 여겼다.
◈ 청한자가 손을 만나 소식을 물을 제, 마구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으면 반드시 기쁜 빛이 돌았고, 만약 거짓 미친 체하여 실상을 감추고 있는 바가 있다고 하면 눈썹을 찌푸리고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 어떤 때는 벼를 심어 잘 자라서 이삭이 볼 만하게 되면 술취하여 낫을 휘둘러 모조리 땅에 쓰러뜨리고서는 목놓아 울었다. -[상동]
◈ 시를 지을 때에는 종이가 떨어져야 그만두었고, 시가 다 되면 그것을 곧 불살라 버렸다. -[상동]
◈ 거짓 미친 체하여 스스로를 감추었다. 그에게 도를 물으려 하는 사람이 백천이나 되었지만 겉으로 미처 날 뛰는 꼴을 하여 혹은 나무나 돌로 때리려 하고 혹은 활을 당겨 쏘려 하여 그 사람의 뜻을 떠보았다. -[상동]
◈ 산에 들어가서 서 있는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시 쓰기를 좋아하였는데 써 놓고 한참 읊조리다가는 문득 울면서 깎아 버리곤 하였다. -[상동]
◈ 총명이 뛰어나 사서 육경은 어려서 스승에게 배웠고, 제자백가 같은 것은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모조리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 번 외우면 잊지 않았으므로 평소에 일찍이 글을 읽은 적이 없으며 또한 책궤를 지고 따라다니며 배우지 않았으나 고금의 문헌을 빠짐없이 통달하였다. -[상동]
◈ 다섯 살 때, 문경공 허조가 그의 이름을 듣고 그 집으로 찾아가 곧 불러 말하기를,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 자로 시구를 지으라.”
하였더니, 곧 대답하기를,
늙은 나무 꽃이 피니 속은 늙지 않았도다
하였다. 문경공이 무릎을 치고 감탄하면서,
“이것이 이른바 기동이다.”
하였다. -[본집]
◈ 난 지 여덟 달 만에 저절로 글을 알았고, 세 살 때에 능히 글을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여덟 달에 남의 말을 알아듣고
세 돌에 능히 글을 지었다
하였다. -[상동]
〈구일유수유(9월 9일에 산에 올라 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는 풍습〉 시에 이르기를,
다시 수유를 쥐고 자세히 보니
올해도 어이하면 지난해 같이 즐길꼬
가을바람 능히 사람의 터럭을 흩날리기는 하나
약간 묻은 서리를 지워 말리지 못하네
하였다. -[상동]
◈ 동봉이 육경과 사서를 싣고 관동의 산수를 두루 다니며, 기장 심을 땅을 얻어 농사짓고 살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추강(남효온)이 박주를 가지고 그의 손을 잡고 슬퍼하다가 시를 지어 천리에 서로 만날 기약 없는 이별을 하였다. -[상동]
◈ 매소(매요신과 소순흠(옛일을 본떠 오금언을 지었다. 포곡은 지금의 산비둘기이고. 탈폐고는 발고(집비둘기)와 같고, 기첩부이며, 아욕사이며, 불여귀며, 소연이며, 추앵(가을 꾀꼬리)을 말한 것이다.
◈ 대언ㆍ소언(한시에 있어서 율시를 말함) 두 편을 지었는데, 대언은 큰 것을 극언하고, 소언은 작은 것을 극언하여서 자기의 뜻을 나타냈다.
◈ 길가는 도중에서 난초가 풀 속에 시들어 있는 것을 보고 시를 지어 슬퍼하였다.
◈ 벼루를 씻은 뒤에 스스로를 비웃어 희롱하여 지은 시에,
어찌 도경 고개 위의 구름을 얻어
끌어다가 옥전의 금화를 삼고 [종이]
송섬의 천길 깎아지른 언덕을
단계(좋은 벼룻돌이 나는 곳)의 금경(거울)으로 삼고
두꺼비 뱃속에 동정호를 간직하고[먹물]
중산의 천 마리 붓을 다 달토록 [붓]
휘두르면 바람이 휩쓸고 구름이 모여드는 듯하고
당기면 북두가 줄고 은하가 도는 듯할꼬
하였다.
◈ 산중에 있을 때, 산나물을 노구솥에 끓이면서 시로 적었는데,
동정에는 눈이 아직 안 녹았는데
눈 속에서 산나물이 돋아났구나
캐어다가 노구솥에 끓이니
보글보글 지렁이 우는 소리 같네
족히 내 주림을 채우며
가히 여생을 보전할 만하도다
우습다 부귀한이여
명리에 구차스럽구나
어찌 노구솥 안 나물의
한결같이 화평한 맛과 같으리오
하였다.
◈ 약재의 이름을 이용하여 진퇴체(시를 짓는 데 운을 쓰는 한 가지 격식) 한 편을 지었는데,
사나이 먼 뜻[애기풀]이 있으니
해가 저물면 마땅히 돌아오리[승검초의 뿌리]
솔이 늙으니 복령[솔뿌리에 생기는 균류] 자라고
가을이 깊으니 마[산우]는 살찌도다
벼슬살이는 강계처럼 맵고
세상길은 홍연(수은과 단사의 화합물)과 다르도다
가난한 선비는 괴로움을 일찍 겪었으니
일찍 쉬어 시비를 잊어버리라
하였다.
◈ 산중에 네 가지 새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일깨워 사람을 감동시킬 만하므로 사금언을 지어 그것으로 세상을 경계하기를,
“누구를 위하여 잇속을 따르느냐.
역시 허공을 잡으려 말라.
돌아감만 같지 못하리.
슬프고 슬프다.”
하였다.
◈ 산중에 내 죽고자 하는 새가 있다 하여 시를 지었는데,
내 죽어 산허리에 묻히려 하니
4월의 청매가 귀걸이 같도다
깊은 숲 속에 먹을 만한 것이 없으니
마른 가지로 날아가 헛되이 애를 끊는구나
새여 새여 네 어이하리
백이ㆍ숙제가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것을 생각지 않느냐
하였다.
◈ 세상의 부유한 사람이 자봉하기를 오히려 아끼니, 하물며 남을 구제할 수 있으리오. 돈꿰미와 곡식을 썩히고, 후세 자손이 교만하고 사치하고 호협하게 하여 누가 친척에게까지 미침을 탄식하여서 간귀를 읊어 경계하였다.
◈ 집을 짓되 움과 같이하여 뒤쪽은 담이고 앞쪽은 벽인데, 책과 벼루를 곁에 늘어놓고 ‘지명환도라 이름하고 명을 지어 벽에 붙이니 벽이 창이 되어 빛을 가리어 사랑스러웠다. 겉은 비록 꾸밈없이 질박하나 안은 단정하고 탁 트이었다.
◈ 꽃동산 가꾸기 게을러의 시에,
돌을 쌓아 벽돌 삼아 꽃동산을 만들어
해마다 호미질하고 깨끗이 쓸었네
오늘까지 더할 나위 없이 부지런히 공들였더니
새 가지는 우거지고 묵은 가지는 마른다
이제는 다시 무성함을 다스리지 않게 되니
일을 좋아함이 일없음을 좋아함만 같지 못하도다
하였다.
◈ 일찍이 말하기를,
“처신하기가 몹시 힘드니, 인간 세상에는 살 수가 없다. 다섯 가지 불가가 있는데,
- 사람을 만나려면 옷차림에 정신을 써야 하는데, 빨래하고 옷 지을 사람이 없으니 첫째의 불가다.
- 아내나 첩을 얻으면 살림을 꾸려야 하는데 생계에 얽매어 빈부에 자재로울 수 없으니 둘째의 불가요,
-또 어찌 도연명의 적씨나 양홍의 맹광과 같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셋째의 불가이다.
- 옛 친구가 가엾이 여겨 벼슬자리에 천거하더라도 지위가 보잘것없고 녹이 박하여 체면을 유지할 수 없고, 성품 또한 어리석고 정직하기만 하여 소인의 무리들에게 용납될 수 없으니 이것은 넷째의 불가요,
- 깊은 골짜기에 살아 다만 산수 좋은 것만 좋아하고 밭 갈고 김매는 일 같은 것은 개의하는 바 아니고, 골짜기를 나와 살길을 구하면 남들은 곧 여전히 몹시 곤궁하다 할 것이다. 입신하기가 이러하니 이것이 다섯째 불가이다.”
하였다.
◈ 산중에 열 가지 경취가 있으니,
“하나는 향을 피우고 높이 누워 있음이요,
둘은 약을 먹고 도인함이요,
셋은 동산에 물주고 남새에 호미질함이요,
넷은 몸소 밭갈이하여 국록에 대신함이요,
다섯은 섶을 꺾고 땔나무를 줍는 일이요,
여섯은 바구니를 들고 나물 캐기요,
일곱은 맑은 못에 낚시 드리우기요,
여덟은 깊은 골짜기에서 약초 캐기요,
아홉은 평상을 옮기어 글 읽기요,
열은 언행에 구속받지 않고 세속에 얽매이지 않음이다.”
하였다.
◈ 산에 들어가 달 밝은 때를 만나면 매양 밤중에 홀로 앉아 〈이소경〉을 외우고는 통곡하고 돌아왔다.
◈ 〈밤이 얼마쯤 되었나〉 2편을 지었는데,
밤이 얼마쯤 되었는가 밤이 아직 반도 못 깊었는데
총총한 별은 찬란하게 빛을 뿜네 ……
하고, 그 끝 편에,
밤이 얼마나 되었는가 밤이 새려는데
뭇 별이 광망을 거두고 북극성만 남아 있네 ……
하였다.
◈ 세상살이에 서툴러 성 동쪽에 몇 이랑 밭을 빌려 콩과 조를 심어 거두었다. 그것을 읊은 시에,
내 성 동쪽에 밭을 빌려
힘써 일하여 봉록을 대신하려 했더니
절반은 참새와 쥐[탐관오리를 가리킨다]가 경작하였으나
깨끗한 신하의 얼굴을 열 만하도다
……
아첨하고 교만하지 않음에 만족하노니
길이 탄식할 것 없도다
하였다.
◈ 〈고기 낚는 늙은이를 비웃는 글〉 2편이 있으니,
“하나는 태공이 주나라 왕실을 도와 그 임금을 베었으니, 임금과 신하의 대의를 온전히 하지 못한 비웃음이요, 하나는 엄자릉이 하찮은 절개를 지키노라 한조의 중흥을 돕지 못한 비웃음이다.”
하였다.
◈ 동봉이 담장 밑에 남새밭을 만들어 7,8종의 풀을 심고, 여덟 수의 시를 지어서 적었는데, 목숙(거여목)ㆍ산약(마의 뿌리)ㆍ산계(삽주)ㆍ황정(죽대 뿌리)ㆍ당귀(승검초 뿌리)ㆍ자강ㆍ훤초(원추리)ㆍ홍료(여귀)가 곧 그것이다. 조총 홍유손이 〈청한자를 제사하는 글〉에,
환술을 나타내어 기적을 세우니
참으로 공이 불을 미워함이로다
하였다.
◈ 동봉이 금오산에 살 적에 눈 내리는 밤에 화로를 끼고 있노라면, 발자국 소리 하나 없이 적막하고 바람 불어 대 소리만 솨솨 하는데, 산동과 함께 재를 긁으면서 글자를 쓰고 옛사람의 글귀를 모아 산거 백 수를 이루었다.
◈ 하늘은 이마라, 높아서 위가 없고 맑기가 가히 없다. 기운이 있어 빙빙 돌아 운행이 쉬지 않는다. 해와 달, 별들이 광명하게 매달려 있고 바람과 비, 서리와 이슬은 그 기운이 화하여 떨어지는 것이다.
◈ 악장 두 편이 있는데, 하나는 〈꿩이 군자를 힘쓰다〉요, 또 하나는 〈갈대가 현인을 생각한다〉였다.
◈ 동봉이 충신을 열거하고 돌이켜 슬퍼하면서 찬을 지었는데, 용방ㆍ비간ㆍ기자ㆍ이제[백이숙제]ㆍ난성ㆍ영유ㆍ왕촉ㆍ신포서ㆍ굴원ㆍ장량ㆍ소무ㆍ공승ㆍ이업ㆍ무후ㆍ악비ㆍ문천상이다.
◈ 청한자가 말하기를,
“옛사람이 산림에 거처하매 봉우리를 마시고, 시냇물을 쪼으면서 반드시 법도를 정제하였으므로 나아가서 당대의 스승이 되었다.”
하니, 음봉탁간은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한다‘는 뜻이다.
◈ 전주 종이를 금강전이라고 부르는데, 매월당의 시에,
금강 봄 물 매끄러운 종이에
한가로이 새 시를 지어 두어 편 쓴다
큰 붓 한 번 휘두르니 천둥 치고 비 내리는 듯
흰구름 쌓인 속에 그린 용이 꿈틀거리는 듯
하였다.
◈ 관서에 졸 제, 평양 서쪽에 들어가 석벽에 꽂은 시가 있었는데,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평양성 서쪽 푸른 바닷가
포구의 석벽이 비녀처럼 깎아지른 것을
큰 물결 굉음을 울리며 파도에 휩쓸리니
흡사 패옥과 생황소리 같다네
또 보지 못하였는가. 바닷가 부들 우거진 마을에
봄 모종 잘 자라고 가을 벼 향기로운 것을
8월 9월 벼 익을 때에
옥을 일고 구름으로 밥 지어 수저로 떠서 맛보네
하였다.
◈ 산중에서 읊은 〈지초시〉가 있는데,
지초가 봉우리 높이에 났으니
매운 향기 몽정보다 더하네
달빛 흐르는 맑은 시냇물에 씻고
푸른 돌솥에 달여
단정히 절방에 앉았노라
내 코를 찔러 봄잠을 깨우네
하였다.
◈ 도연명에 화답한 시가 60여 편 있는데 〈화도〉라고 이름하였다.
◈ 〈하시〉에,
이른 봄 연한 줄기는 삶아 먹을 만하고
늦가을에 뿌리 살쪄 김치 담글 만하도다
하였는데, 지금 시골 남새밭에 많이 심으니, 맛이 향기로워서 먹을 만하다.
◈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모의 양육을 받았는데, 외로운 외손자라 하여 아들처럼 사랑하여 길렀다.
◈ 〈삼나무를 심다〉라는 시에,
동풍이 너의 겨울 가지를 길렀는데
비와 이슬을 한 자 되는 몸에 담뿍 받았구나
내 정원에 심어 북돋우니
뭇 꽃이 업신여긴다 탓하지 말라
하였다.
◈ 〈죽순을 보호함〉이라는 시에 이르기를,
봄바람이 어린 죽순을 불러 일으키니
비단 같은 이끼 뚫어 낱낱이 올망졸망하구나
가시를 꽂아 울타리 둘러 짐승을 막으니
내일 아침이면 파릇파릇 순을 보리라
하였다.
◈ 변산에서 개 한 마리가 바위 구멍으로 도망쳐 들어가 한 해가 지나도 나오지를 않았다. 동봉이 일찍이 호남에 놀면서 시를 지었는데,
으르렁거리는 산개 바위틈에 엎드렸는데
구름은 솔숲으로 돌아가고 해는 기울었도다
개도 생각 있어 세상 물정 잊었는데
세상 사람 어이하여 분요함을 피하지 않느뇨
하였다.
◈ 〈부앙〉시에,
굽어보고 우러러보니 아득히 가이 없는데
그 가운데 이 몸이 있구나
삼재(천ㆍ지ㆍ인)에 참여하여 함께 섰으니
한 가지 이치가 저절로 분명하구나
욕심에 끌리면 미물이 되고
몸을 닦으면 곧 큰 군자 되리라
하였다.
◈ 〈푸른 전나무〉라는 시가 있는데,
뜰 앞의 푸른 전나무 하늘까지 자랐는데
뼈마디 크고 굳세어 굽힐 줄 모르네
몸뚱이 송백 같아 세속을 따르지 않고
기품은 지출을 머금어 맑은 향기 풍기도다
하였다. 또 소나무와 전나무로 이엉하고 오두막을 지어, 그것을 글제로 삼아 시 한 편을 지었는데,
낙엽으로 방석을 삼고
마른 등걸로 두공을 삼네
구름과 아지랑이로 장막을 삼고
푸른 산으로 병풍을 삼는도다
하였다.
◈ 동봉이 도롱이를 사 입고 홍수를 구경하고 돌아와 시를 지었는데,
백 전으로 새로 도롱이를 사 입고
다리에서 큰 물을 구경하고 늦게 돌아오도다
가는 비에 바람은 그치지 않는데
어깨를 솟구치고 사립으로 들어오네
하였다.
◈ 친구의 방문을 기뻐하여 지은 시에,
나그네 살이에 찾아오는 사람 없어
사립문 종일토록 닫혀 있네
무심히 세상일을 보고
눈물 속에 구름 낀 산을 생각하네
옛 친구는 사이가 멀어지고
친한 벗은 전혀 오가지 않네
반갑다, 그대 반날을 머무르니
마주 보고 얼굴 한 번 펴네
하였다.
◈ 〈동풍악〉 한 편을 노래하였는데,
동풍이 나쁘도다, 동풍이 나쁘도다
쌀쌀한 봄바람 그칠 새 없구나
……
만약에 동풍을 인심에 비할 양이면
동풍이 질 낮음을 부끄러워하리라
하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