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유시민 지음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는 질문을 제때 수정하지 못한 데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본성을 무슨 수로 밝히겠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 하여 인문과 과학의 통섭으로 우기는 극복될 수 있다 하면, 과학자가 인문을 공부하고,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면 될 터. 그러나 그 전에 시민이 인문과 과학을 접해야 한다. 그 것이 당장 돈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의미를 던져 주기에 그렇다. 의미는 새로운 것으로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은 우울에서 우리를 건져낼 줄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 태도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 태도이기도 하다. 과학적 태도. 책상에 앉아야 공부는 시작된다. 상태보다 태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받아들이려 하는 마음을 갖는 것. 여기부터 시작이다.
전향에 대한 관용
뇌에 깃든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쉼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비틀리는 가운데 스스로를 교정하고 보강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견딘다. 자유의지는 그런 자아가 지닌 것이다. 자아가 불안정한데 자유의지가 어찌 강고하겠는가.(...)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인문학보다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 전향이라는 행위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하여 전향한 자를 궁휼히 여기소서. 질병, 교통사고, 산업재해, 폭행, 고문, 노화등으로 뇌의 하드웨어에 물리적 손상이 오면서 성격, 신념, 사고방식이 크게 변할 수 있다. 이 문장도 초(抄)다. 상대가 일관성이 없다고 이젠 분노하고 비난하지 말자. 힘들어도 그러지 말자.
인류는 같은 종인데.
생명은 단순한 것에서 무한히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 두 생물 개체의 유전자를 섞어 각각의 천성을 가진 자손을 만들 수 있으면 같은 종에 속한다.(...) 예컨대 암말은 당나귀 수컷과 교미해 노새를 낳지만 노새는 자식을 낳지 못한다. 말과 당나귀는 다른 종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피부색과 외모가 어떠하든 80억 호모 사피엔스는 모두 같은 종에 속한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다. 그러나 지구의 200여 부족 집단은 다른 종이다. 섞이지 않는다. 지구는 망해가도 IS는 테러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탓한다. 아이티는 갱단이 무정부 성태를 만들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인종학살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를 더 좌절시키는 것은 그들도 인류가 같은 종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신념체계
종교는 무엇인가? 종교는 믿는 자에게 진리이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망상이며 권력자에게는 유용한 통치 도구다. 문과는 보통 이런 식으로 묻고 답한다. : 이어진 문장을 붙인다면 사회생물학은 이 것이 인류의 생존에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종교뿐이겠는가? 종교를 포함한 신념체계가 인류를 더 넓은 단위로 묶어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 줬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물리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지만 결국 결단과 실천은 인간 집단의 신념을 어떻게 만들고 갖춰야 하는 가이다. 200여 국민국가 집단을 지구적으로 묶는 신념체계는 무엇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끊임 없는 공부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것은 지성의 가장 위대한 과업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지식의 파편화와 철학의 혼란은 실제 세계의 반영이 아니라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 통섭은 통일의 열쇠다.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기반을 둔 이론을 연결해 지식을 통합해야 한다.:시작은 나부터. 공부하자. 그러나 알아두자.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다. 통찰을 얻는 것이다. 이미 우린 각 자 전문가이다. 학자라고 고등기술을 가졌다고 그들만 전문가가 아니다. 통으로 공부하고 감으로 진리를 가슴에 품으면 된다.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 틀릴리 없다. 우린 끊임없이 수정해 나갈 터이니. 공부할 터이니.
자등명 법등명,
석가모니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법(진리)을 등불로 삼는 것은 관습과 미신이 아니라 이성의 힘으로 산다는 뜻이다. 세상에 끌려다니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라 했으니 석가모니는 분명 깨달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무신론자이고 유물론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의 힘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우리는 안다. 그 것은 마치 고대시절 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낼 때 악령을 쫓기 위해 죽은 동물이나 사람의 머리를 들고 앞장 서며 걷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거인의 무등을 타고 가는 거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간이 된 것은 한 발작, 한 발작 스스로의 힘으로 앞으로 걸어간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감사한다.
신을 믿는다는 것
지구는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인류는 사라질 것이다. 우주는 서서히 침몰해 마침내는 관심을 끌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신이 우주 기계의 태엽을 다시 감을 거라는 주장은 털끝만큼의 가능성도 없다. 과학의 증거로 말한다면, 우주는 비참한 몰락을 향해 가는 중이다. 이것이 존재의 목적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내가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이 있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신을 믿고 선을 행하고 이웃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다면, 나는 그가 믿는 신을 인정할 것이다.
오로지 내 힘으로
그 이름이 무엇이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게 의존하지 않고 마지막 시간까지 내 인생을 내 생각대로 밀어 갈 작정이다.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고 도덕과 규범을 세우는 작업을, 누구에게도 아웃 소싱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확인한다.: 한번 해 보자. 그래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창피할 것도 없다. 남에게 위악스럽다는 말만 듣지 말자. 위선이라는 말만 듣지 말자.
의미는 어떻게 생기는가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는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 의미는 관계에서 나온다. 남을 선하게 만들고 도움이 될 때 의미는 살아난다.
신계의 수학자들
신계의 수학자라고 해서 인간계의 보통 사람보다 행복하고 훌륭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나는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 나도 그들처럼 내가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수학을 못 해도 내 인생을 나름의 의미로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부정하진 않겠다. 수학을 잘하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것을!: 방법이 있다. 그들의 결론을 듣고 인생담, 후일담을 재미지게 들으면 된다. 그러나 수학이라는 우주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친절하게 말해줄 수 있는 수학자가 있을려나. 있다면 좋겠고,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나는 행운아일 것이다.
붙이는 말: 독후감에는 형식이 없다. 밑줄 그은 문장을 옮겨 보는 것도 독후감이다. 저자의 언어로 내 뜻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사서삼경 교과서를 읽고 초를 하고, 주석을 달고, 해석을 하여 문집을 내었다. 이 또한 독후감이다. 내가 속한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읽었다. 한 분이 초(抄)를 하여 내 생각을 붙여 한번 써 보았다. 읽는 이가 있다면 어여삐 봐 주면 좋겠다.
책 익는 마을 김선애. 원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