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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이성복
오, 이것은 존재치 않는 짐승.
사람들은 알지 못했으면서도 그것을 사랑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 이것은 존재치 않는 짐승」
시의 첫 구절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무심코 지나가는 말이거나 심심풀이로 해본 말, 우리가 말하기 전에 말은 제 빛깔과 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시의 둘째 구절은 無染受胎, 교미도 없이 첫 구절에서 나왔지만 빛깔과 소리는 전혀 다른 것. 시의 셋째 구절은 근친상간, 첫 구절과 둘째 구절 사이에 태어났으니, 아들이면서 손자, 딸이면서 손녀, 눈 먼 외디푸스를 끌고 가는 효녀 안티고네. 말들의 혼례가 끝나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도, 우리는 정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성복 시인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은 시집인 동시에 산문이다. 외국 번역시 구절 일부를 인용하고 시구에 의탁하여 산문을 썼다. 시인은 "결과적으로 내 관심사는 인용된 시를 빌미로 하여, 대체 나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시인의 말」)고 책의 서두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시집의 판본을 하고 있는 이 책은 시이면서 산문인 독특한 형식을 갖게 되었다.
릴케의 시는 첫 글에 인용되어 있다. 두 행의 글귀 만으로도 파괴적이다. '존재치 않는 짐승'은 인간의 일상적인 의식 너머에서 꿈틀대는 무의식이나 충동일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의 장막에 가려진 실재일 수도 있으며, 합리적 이성으로는 도저히 분석되지 않는 전체성 혹은 무한일 수도 있다.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까닭은 다음 행에 등장하는 글귀 때문이다. '알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것. 있는 것을 느끼되 인식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다. 랭보가 시인을 '견자'로 규정했을 때, 시인이 보고자 하는 대상도 역시 알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존재치 않는 짐승'이다.
이성복 시인은 '알지 못함'에 방점을 찍고 말의 자율성을 풀이한다. 시의 첫 글귀는 우연히 발생한다. '무심코 지나는 말이거나 심심풀이로 해본 말'. 그런데, 그것은 과연 진짜 심심풀이일까? 무의식이 전의식의 감시망을 피해서 의식으로 뚫고 나온 진심 아니었을까? 둘째 구절은 '無染受胎(무염수태)', 다시 말해 무성생식이다. 그것은 첫 구절과 상관을 맺으면서도 상관이 없다. 시인이 말하는 셋째 구절은 '근친상간'이다.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의 마주침이 금기를 위반하는 지점에서 셋째 구절이 솟아나온다는 것. '오이디푸스를 끌고 가는 효녀 안티고네'이다. 시는 말들의 혼례이고 마주침과 어긋남이며, 체계성과 이로정연함을 배반하는 말들의 성찬이다.
첫째 구절도 내가 모르는 데서 발생한 언어이지만, 셋째 구절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장악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오히려 언어가 인간의 입을 빌려서 자기를 실현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창작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신내림, 영감이나 뮤즈의 속삭임이 이 영역에 해당할 것이다. 정녕 '에고'를 지우고 현상에 접근하는 좁은 길에 '중성', '바깥'이 있으리라. 머리와 정신이 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뱉는 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는 상태로 자신을 내버려두면서도 말하려는 의지가 충전되어 있는 이들이 시인이고 예술가이다.
3
누이여, 그날 우리가 탄 배는
내 사랑, 내 누이야
꿈 꾸어 보렴, 거기 가서
단둘이서 사는 달콤한 행복을!
-샤를르 보들레르, [여행에의 초대]
그해 늦은 봄, 저수지 옆 방갈로에서 일박. 모닥불 위로 날리던 기십만 개의 별들 밤새 뻐꾸기 울음은 내 팔뚝에 흔들리는 빠(목선)의 그림자 같은 문신을 새기고, 누이여, 아침엔 그 많은 원추리 꽃들 어디서 네 눈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노란 꽃잎 선풍기 날개처럼 단 눈들, 윙윙대는 소리 굴렁쇠 바퀴처럼 굴리던 눈들. 지금도 뻐꾸기 울면 정신 나간 내 팔은 노 젓는 시늉을 하고, 누이여, 그날 우리가 탄 배는 윙윙대는 원추리 별들 사이 조심조심 나아간다 밤새 잃어버린 네 눈을 찾아서
15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파블로 네루다 <유성>
불 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 밤 하늘 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 수 없는 달은 수심 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 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유난히 달 밝은 밤이면 내 딸은 나보고 달 보기라 한다. 내 이름이 성복이니까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애 보고 메뚜기라 한다. 기름한 얼굴에 뿔테안 경을 걸치면,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 든 눈큰 메뚜기다.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벼랑의 붉은 꽃 꺾어 달라던 수로부인보다 내 아내 못할 것 없지만, 내게는 고삐 놓아줄 암소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오를 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절해고도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
46
이 들녁에서 누가 우는가
내가 말했잖아
이 들녁에서 엎드려 울게
날 좀 제발 내버려둬.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이 들녁에서 밤은 그을음처럼 오고, 마른 쑥부쟁이 너의 목은 쉽게 꺾어진다. 이 들녁에서 네가 운다고 하지 마라. 오래 전부터 들녘은 제 울음을 울고 있었다. 오래 전에 다친 무릎처럼, 오래 전에 집 나간 개들 처럼 들녘은 운다. 이 들녁에서 들녘이 운다고 하지 마라. 오래 전부터 한 울음이 울고 있었다. 울음은 엄나무 뿌리와 은모래를 적시고, 남은 울음은 그물에 걸린 새의 부리 속으로 들어갔다. 다만 귀를 막고 목 꺾인 새의 울음소리 들어보아라
-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2003)
그러므로 '있는' 것은 허기이고, 욕망일 뿐이다. <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알록달록한' 허기들, 삶의 풍경들을 만들어나가는 허기의 정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시집이다. 그리고 그 제일 앞에 오는 것이 시인 자신의, 시인으로서의 허기, 시에 대한 허기인 셈이다
⁃심재중 해설 '깊은 오후의 열망' 중에서
문학적 글쓰기는/'글쓰기의 불륜'이라 할 수 있어요.//홍상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김상경이 원래 부산 가기로 했는데,/추상미한테 반해서 경주에서 내려버리잖아요.//위반하는 글쓰기라는 것도 그런 거예요. /쿤데라 식으로 말하면/작중인물이
작가를 배반하는 것이지요.//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해요./글쓰기에서 하지 않으면 어디서 하겠어요
⁃이성복 시론 <불화하는 말들_>(문학과지성사
20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