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돈 돌고 돌듯 대전 주변 장은 돌고 돈다. 신탄진 장이 끝나면 그 다음 날 바로 유성장이고 그 다음은 옥천 장, 그리고 금산 장이다. 장을 돌다 보면 뱅뱅 도는 장돌뱅이를 보고 또 본다. 왁자지껄 시골장터는 흡사 흥정의 전쟁터다. 흥정은 자리 잡는 데부터서 시작된다. 옥신각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른 아침부터서 부산한 데는 다 까닭이 있다.
장돌뱅이가 장터 한가운데 목 좋은 곳에 진지를 구축한 포병이라 할 것이면 길바닥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할머니는 영락없는 보병이다. 터랄 것도 아닌 도로변에 거죽하나 깔고 포병을 에워싸고 소총을 닦듯 살붙이를 꺼내들고 계신 할머니부대. 굽은 등에 성치 않은 무릎 관절 탓인지 각개전투 하듯 보초 서듯 애 뉘이듯 겨우 하는 용신이다. 흥정은 제대로 하려나 의심이 들때가 많다.
그래도 한사코 그 자세 그 자리이다. 오가던 길 마음이 주저앉고 나는 탄복하고 만다. 널려진 풍경이 그만그만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계절 따라 동네 따라 다른 풍경이 늘 담겨있다. 봄볕이 제법인 날, 그래도 장터는 수지가 맞는다. 신탄진장에선 연기의 씨감자가 도톰하고 유성에선 계룡산 산자락 눈비 맞은 더덕이나 씀바귀가 상큼하다.
물이 맑다는 옥천에서는 올갱이가 지천이고 잉어와 미꾸라지가 제법인 그쯤이다. 새 봄 장만이 알고 보면 다 곱은 손 등 굽은 할머니 덕분이 아닌가. 한푼 두푼 소쿠리가 어느 새 동이 났는지, 중천 쯤 일찌감치 작파한 할머니도 여럿 계시다. 조금 전 만해도 쑥 냉이 도라지 흥정이셨는데 몸빼 바지 하나 신발 한 켤레 종자 씨 봉투 담긴 검은 봉지 주렁주렁 매달고 허겁지겁 이시다.
“ 떼어 놓고 갈 뻔 했네. 아저씨! 금산 댁 저기와유. 잠시 기다려유.” 시골버스는 그쯤 보병부대 막사와 진배없다. 부릉부릉 떠나는 찻소리 시늉에 겁도 나는 터다. 선글라스를 낀 기사 아저씨가 진두지휘 소대장인 양 뒤를 흘끔흘끔 연실 보는 게다. 그러다가 마침내 시동 소릴 높이고는 한 마디 한다. “ 갑니다. 가요.”
하지만 그렇게 다들 신이 나는 것은 아니다. 정긴 것이나 제법 용쓰는 놈들만 골라냈다는 살붙이들도 이제는 지쳐서 시들한 오후 장. 눈이 퀭하니 쑥 들어가고 애가 타 마전서 나왔다는 할머니는 밥도 걸렀다. 북적거리는 장터도 이내 시들시들 밤거리 가로등이 등 떠밀 듯 환하게 켜진다. 장돌뱅이도 휑하니 떠나버렸다. 이제는 도심의 여유공간 밤거리다.
어깨 죽지 늘어지듯 축 늘어선 흥정꺼리를 주섬주섬 봉지에 담고 등 굽은 허리를 겨우 전봇대에 기대선다면 그 누구인들 하루가 복받치지 않을까. 뉘엿뉘엿 지는 시간 때 자신 닮은 파장이 노파는 또 그래서 서러울 테다. 여러 번 보았지만 시골 장터 파장은 시작 때와는 판이하게 후련하거나 한갓지지 않다. 술 취한 욕지거리 싸움은 늘 그 무렵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때마다 내일 모레 팔십이든 누구든 봐줄 수도 없는 세상은 참 모질고 억센 것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아쉬움만큼 늘 뒤끝이 있고 너저분하여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나는 그쯤을 노려 장터에 나서곤 한다. 흥정에 있어 당연 유리하단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약을 대로 약은 도심에 사는 나다.
"에이 다 시들었네. 이것 얼마에요."
“ 그냥 3천원 만 줘.”
“에이 비싸다. 좀 깎아주면 안돼요. ”
“그럼 마저 다해서 5천원에 가져가. 나 들어가야 혀.”
그러면서 나는 모두들 대형마트로 몰려가는 판국에 그나마 내 덕에 떨이는 한 것이라 말하고 나 또한 파장 덕에 싸게 샀다고 늘 흡족해 한다. 그렇게 자위를 하기는 하지만은 어쩌다 엄마 생각이 난다든지 세상이 우중충하다 싶고 그로 외롭다 할 때는 괜한 인정이라도 생긴 양 흥정이 온당하였는가에 대한 켕기는 마음을 또 갖는다.
그럴 때는 단 돈 천원인데 하는 아쉬움이 밀물밀려오듯 밀려와 속을 철석 때린다. 어제도 그러하였다. 비록 돈 흥정은 잘 했는지 모르지만 세상흥정은 잘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드는 노릇이다. 그런 나는 내일 또 장터에 마실을 나갈까 한다. 연이은 대전 동네 장날, 혹여 그 마전 할머니를 볼 수 있으려나. 내일은 큰 맘 먹고 모처럼 변변하고 싶어서다.
(조성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