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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받은 노신(老臣) 순욱(筍彧) -
조조(曹操)를 위왕(魏王)에 봉(封)한다는 헌제(獻帝)의 결정(決定)이 있자 조회(朝會)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리하여 대소 신하들이 조회가 파(罷)하자 조조의 앞으로 모여들어 축하의 말을 쏱아내었다.
"축하(祝賀) 드리옵니다!"
"경하(敬賀) 드리옵니다!"
"진작에 있었어야 할 일이온데..."
"응!" 조조(曹操)는 만장(滿場)한 축하(祝賀)의 인사를 받으며 당연(當然)한 일이었다는 듯이 대꾸하였다.
한편, 조회(朝會)에 참석(參席)했던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 조식(曺植)이 장락궁(長樂宮) 밖으로 나오자 수행비서(隨行祕書)인 이주(伊周)가 수레 앞에서 그를 맞는다.
"공자(公子)?"
"응, 일이 잘 되었네. 크나 큰 경사(慶事)야. 아버지께서 위왕(魏王)으로 책봉(冊封) 되셨다네."
"하! 경하(慶賀)드립니다!"
"시간(時間)이 많이 지체(遲滯) 되었으니 어서 시회(詩會)로 가세! 기다리던 벗들에게도 이 낭보(朗報)를 전해줘야겠네!"
조조(曹操)에게는 본래 다섯 명의 아들이 있다. 첫째 조앙(曺昻)은 조조를 따라 남양(南陽)의 장수(張繡) 정벌에(征伐) 참전(參戰)했다가 죽은 바 있으며(삼국지 93 ~ 94회 참조) 둘째 조비(曺丕), 셋째 조식(曺植), 넷째 조창(曺彰), 다섯 째 조웅(曺熊)이 그들이었다.
조조는 그중에서도 머리가 총명(聰明)하고 시문(詩文)의 재(才)가 밝은 세째 아들 조식(聰明)을 가장 사랑했다.
그런 조식(聰明)이 조회(朝會)가 끝난 뒤에, 궁(宮)밖의 시회(詩會)에 참석(參席)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주(伊周)의 대답은,
"어느 문(門)으로 나가야 할 지 알려주십시오."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이에 조식(曺植)이 고개를 기울이며,
"무슨 차이(差異)가 있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이주(伊周)가 대답(對答) 한다.
"동문(東門)으로 나가면 반시진(半時辰)이 걸릴 것이나 백마문(白馬門)으로 가면 바로 나갈 수가 있지요."
"그럼, 백마문(白馬門)으로 나가세!" 조식(曺植)은 이렇게 말을 한 뒤에 수레에 오르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주(伊周)는,
"잠깐만요, 공자(公子)!" 하고, 조식(曺植)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왜 그러지?" 조식(曺植)이 돌아서며 묻자,
이주(伊周)는,
"허지만, 천자(天子)의 수레가 아니면 백마문(白馬門)으로 출입(出入)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조식(曺植)이 그 말을 듣고 미소(微笑)를 지으며,
"그건, 다른 대신(大臣)들의 문제이지, 우린 백마문(白馬門)으로 나가세 !" 하고 자신만만(自信滿滿)하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조식(曺植)이 탄 수레는 그들의 앞에 있는 백마문(白馬門)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문장(守門將)에게 이주(伊周)가 소리쳤다.
"문을 여시오!"
수문장(守門將)이 대답(對答)한다.
"천자(天子)의 수레가 아니면 백마문(白馬門)으로 출입(出入)할 수 없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수레안의 조식(曺植)이 호통(號筒)을 내지른다.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어서 문을 열지 못할까?" 조식(曺植)의 호통과 동시에 이주(伊周)가 칼을 뽑아 수문장(守門將)을 겨냥하였다.
그러면서,
"당장(當場) 공자(公子)의 명(命)을 따르거라!" 하고, 호통을 질렀다.
그러자 수문장(守門將)은 막강(莫强)한 힘을 가진 조조(曹操)의 아들 명을 거역(拒逆)할 수는 없는 데다가 당장(當場) 눈 앞의 칼도 위협(威脅)하므로 수문지기에게 명한다.
"열어라!" 그리하여 백마문(白馬門) 앞으로 수레가 춭발(出發)을 하려는데 누군가가 수레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조식(曺植)이 탄 수레를 가로막은 사람은 늙은 몸을 이끌고 사가(私家)로 돌아가는 노신(老臣) 순욱(筍彧)이었다.
"안에 탄 사람이 누구인데, 감히 백마문(白馬門)으로 나가려고 하는가?" 순욱(筍彧)은 가당(可當)치도 않다는 듯한 어조로 꾸지람을 하였다.
그러자 순욱(筍彧)을 알아 본 조식(曺植)이 수레에서 내리며,
"아! 순대인(筍大人), 급(急)한 일이 있어 나가야 하니 좀 비켜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흥! 아무리 급하다 해도 황실(皇室)의 법도(法度)를 어겨서는 아니되지요." 순욱(筍彧)의 대답은 쌀쌀맞기 그지 없었다.
그러자 조식(曺植)은,
"위왕(魏王)의 명을 받아 급히 나가야 하니, 어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조식(曺植)은 당당히 말하였다.
그러자 순욱(筍彧)은 코웃음을 치며,
"후후훗, 위왕(魏王)의 명(命)이라?... 왕실(王室)의 법도(法度)는 천자(天子)께서 정하신 겁니다. 하니, 난 비킬 수 없소." 순욱(筍彧)의 고집(固執)은 완강(頑剛)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지나가고 싶다면 날 밟고 가시오." 하고 말하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식(曺植)이 핏대를 올리며.
"순대인(筍大人)?.. 정말 이럴꺼요?" 하고, 반말 투로 말하면서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순욱(筍彧)이 조식(曺植)을 무시(無視)하는 태도(態度)로,
"흥! 아비가 황실(皇室) 법도(法度)를 어기며 막무가내니... 자식(子息)도 그리하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추태(醜態)인가?" 하고 눈길을 흘기며 말하는 것이었다.
"순대인(筍大人)!" 조식(曺植)이 쌍심지를 켜고 눈알을 부라리며 노신(老臣)을 꾸짖었다.
그러면서,
"그러면 어쩌라는 말이오?" 하고 따지고 들자,
순욱(筍彧)은 대번에 다른 쪽 문을 향하여 손짓하며,
"당장(當場), 다른 문(門)으로 나가시오!"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안색(顔色)이 굳은 조식(曺植)이 순욱(筍彧)에게 돌아서며 소리친다.
"이봐, 이주(伊周)! 뚫고 가!"
"예!" 이 순간(瞬間), 수레 쪽으로 돌아선 조식(曺植)의 앞에 조조(曹操)가 나타났다.
"어 엇? 아버님!" 조식(曺植)을 비롯한 그의 수행원 모두가 급작스럽게 나타난 조조에게 예(禮)를 표해 보였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의 상황(狀況)을 지켜보던 조조(曹操)는 아들 조식(曺植)에게 다가서더니 다짜고짜 뺨을 후려 갈겼다.
아버지에게 한대 얻어 맞은 조식(曺植)이 허리를 깊숙히 굽히며 말이 없었고,
이를 지켜 보던 순욱(筍彧)조차 말 없이 조조(曹操)의 거동(擧動)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조조(曹操)가 주위를 돌아보며 묻는다.
"백마문(白馬門) 당직(當直)이 누구냐?"
"아뢰옵니다. 소장입니다!" 수문장(守門將)이 예(禮)를 표表)하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曹操)는 즉각(卽刻) 호위대장(扈衛大將)을 부른다.
"허저(許褚)?"
"예!"
"저놈을 데려다 참(斬)하라." 조조(曹操)의 명(命)은 냉철(冷徹)하였다.
조조(曹操)의 호위(護衛) 군사가 달려들어 수문장(守門將)을 끌어내자,
"위왕(魏王)! 억울(抑鬱)합니다. 억울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수문장은 비명(悲鳴)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군사(軍士)들에게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본 순욱(筍彧)이 조조(曹操)를 향하여,
"승상(丞相)!" 하고 부르자,
조조(曹操)는,
"난 위왕(魏王)일쎄!" 하고 호칭(呼稱)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표현(表現)을 해보였다.
그러나 순욱(筍彧)은 역시,
"승상(丞相), 규율(規律)은 공자(公子)가 어겼는데 어찌하여 수문장(守門將)을 죽이십니까?" 하고 말하니,
조조(曹操)가 순욱(筍彧)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문(問)을 열지 않았다면 식(植)이가 왜 규율(規律)을 어겼겠나? 이건 내 규율이네. "
"문(門)을 연 것은 죽어 마땅하지요. 하면 조정(朝廷)에서 승상(丞相)께 왕(王)으로 봉(封)하도록 문(文)을 연 백관(百官)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지 않나요? 예? ..."
순욱(筍彧)의 대꾸는 조조(曹操)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조가 잠시 <멍>한 표정(表情)으로 순욱(筍彧)을 뚫어져라 쳐다 본다.
그리고 순욱(筍彧)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으 헤헤헤!... 이보시오 순욱! 우리가 삼십 년(三十 年)을 함께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날 거스르는거요?"
조조(曹操)는 이렇게 말하며 허저를 부른다.
"허저(許褚)?"
"예!"
"저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순욱(筍彧)은 잠시(暫時) 전(前)에 수문장(守門將)이 끌려 가는 것을 보았기에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조조(曹操)는,
"으 헤헤헤!... 이보시오, 순욱(筍彧)! 그런 염려(念慮)는 마시오. 나는 공신(功臣)을 죽인 적이 없소." 하고 말하면서,
다시 허저에게 못다한 명을 내린다.
"허저(許褚)? 당장 백마문(白馬門)을 철거(撤去) 해라."
"알겠습니다!" 허저(許褚)가 두손을 모아 올리며 명(命)을 수령한다.
"이보시오, 순욱(筍彧)? 잘 지켜 보시오. 이제 저 백마문(白馬門)이 없어지고 백주(白晝) 대낮에도 누구든지 드나들 수가 있다면 당신(當身)이 말한 규율(規律)이 어디있겠소? 응?... 헤헤헤헤!..." 조조(曹操)는 이같은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홀연(忽然)히 떠나 백마문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순욱(筍彧)은 조조(曹操)가 떠나자 조조의 명으로 천자(天子) 만이 드나들던 곧 부숴질 운명(運命)에 처한 백마문(白馬門) 현판(懸板)을 바라보며 기침을 해 대더니 노구(老軀)를 지탱(支撐) 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그를 부축해 주지 않는 가운데...
"순대인, 순대인!..." 그러나 한참이 지난 뒤에 그를 알아보고 부추켜 일으켜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시중소위(侍中小尉)로 있는 경기(耿紀)라는 사람이었다.
이후(以後)로 조조(曹操)는 십이류(十二旒) 면류관(冕旒冠)을 쓰고, 금(金)과 은(銀)으로 장식한 여섯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무시(無時)로 황궁(皇宮)을 제 집 드나들 듯이 다녔다. 말이 왕(王)일 뿐이지 사실상 천자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업군(鄴郡)에다 천자(天子)의 황실(皇室)을 능가(凌駕)하는 위왕궁(魏王宮)을 짓게 하였으니, 조조의 위세(威勢)는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백마문(白馬門) 사건(事件)이 있은 며칠후,
조조는 순욱(筍彧)의 동태(動態)를 묻기 위해 정욱(程昱)을 불러들였다.
"전하(殿下)전하! 부르셨나이까?" 정욱(程昱)이 위왕(魏王) 조조(曹操)에게 알현(謁見)을 고(告)하였다.
"백마문(白馬門)은 철거(撤去) 했는가?"
"철거 했습니다."
"순욱(筍彧)이 훼방(毁謗) 놓지는 않던가?"
"그 사건(事件)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는 바로 몸져 누워 며칠 째 굶고 있다 합니다."
"에잉! 먹질 않아서야 되나? 거기 과일이 좀 있으니, 당신이 내 대신 가져 가서 들여다 봐."
"알겠습니다."
정욱(程昱)은 조조(曹操)의 탁자(卓子) 위에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삼단 찬합(饌盒)을 들고 순욱(筍彧)의 사가(私家)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려, 상심(傷心)과 울화병(鬱火病)으로 누워 있는 순욱의 앞으로 향한다.
순욱(筍彧)은 머리에 수건을 감고 누워 있으며 정욱(程昱)이 들어오자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문약(文若 : 순욱의 字), 문약?... 좀 어떠시오?" 정욱(程昱)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욱(筍彧)을 거푸 부르면서 정신(精神) 차리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희미하게 눈을 떠 보인 순욱(筍彧)이,
"자네 왔는가? 승상(丞相)께서 가보라고 하시던가?" 하고, 조조(曹操)를 왕(王)으로 칭(稱)하지 아니하며 물었다.
그러자 정욱 이렇게 대답한다.
"위왕(魏王)께서 줄곧 염려(念慮) 하시다가 살펴보라고 하셨소. 그러시면서 과일 좀 들라고 보내셨소."
정욱(程昱)은 이렇게 말하면서 조금 전 들고 들어온 삼단 찬합(饌盒)에 눈길을 주었다.
순욱(筍彧)도 정욱(程昱)이 말한 찬합을 한번 쳐다 보더니 몸을 반쯤 일으키면서,
"이제, 가 보게나." 하고, 말한다.
정욱(程昱)은 이런 순욱(筍彧)의 태도(態度)로 보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며 순욱(筍彧)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그럼, 몸조리 잘 하시오."
정욱(程昱)이 물러나가자 비로서 순욱(筍彧)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조(曹操)가 보냈다는 과일 찬합(饌盒)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찬합(饌盒) 속은 비어있었다. 일단(一簞)도, 이단(二簞)도, 삼단(三簞)도 ...
이것을 심각(深刻)한 의미(意味)로 받아들인 순욱(筍彧)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낙심천만(落心千萬)한 얼굴이 되었다. 과연 조조(曹操)가 보냈다는 과일을 담은 찬합통(饌盒桶)이 모두 비어 있는 것은 무슨 의미(意味)일까?
순욱(筍彧)은 조조(曹操)가 빈 찬합통(饌盒桶)을 보낸 의미(意味)를 곧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허탈(虛脫)한 웃음을 웃어 젖혔다.
"허, 허, 허, 헛!...." 빈 찬합통을 내려 놓은 순욱(筍彧)이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하여 허탈한 웃음을 웃어 젖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회한(悔恨)이 어린 눈으로 하늘을 향했다
순욱(筍彧)은 청려장(靑藜杖 : 한해살이 풀명아주대로 만든 지팡이)을 놓고, 좌대(座臺)에 호신용(護身用) 칼을 빼어들었다.
다음 날, 조조(曹操)는 아들 조비(曺丕)를 데리고 순욱(筍彧)의 상가(喪家)에 문상(問喪)을 왔다.
순욱(筍彧)의 상가(喪家)에는 이를 지키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조비(曺丕)의 손에는 이단 찬합이 들려 있었다. 조비(曺丕)는 순욱의 위패(位牌)가 놓인 젯상 위에 가져온 과일을 찬합(饌盒) 째 올려 놓았다. 그런 뒤 향(香)을 빼들어 아버지에게 올린다.
향(香)에 불을 붙인 조조(曹操)가 순욱(筍彧)의 위패(位牌) 앞에서 독백(獨白)하듯이 중얼거린다,
"이보시오. 문약(文若) : 순욱의 자(字)... 이제 편히 쉬시오. 그거 아시오? 지나간 그때가 그립소. 순욱(筍彧), 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날 나도 없었겠지... 그 옛날 당신은 서주(徐州)의 태수(太守) 도겸(陶謙) 정벌(征伐) 때, 연주(兗州)를 지키며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군량(軍糧)을 공급(供給)해 줬지... 진류태수(陳留太守) 장막(張邈)의 반란(叛亂) 때는 각 군현(郡縣)에서 들고 일어난 도당(徒黨)을 당신이 우리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주어, 우리를 살려주었지, 건안(建安) 5년, 관도전투(官渡戰鬪 : 원소(袁紹)와 조조(曹操)의 일대 결전) 당시에는 군량(軍糧) 부족(不足)으로 군심(軍心)이 혼란(混亂) 하자, 장수(將帥)들 모두가 후퇴(後退)하자고 했지만 당신만은 끝까지 버티라고 권하며, 군량(軍糧)과 무기(武器)를 계속 보급해 주어, 요행(僥倖)히 원소군(袁紹軍)을 물리치고 대승(大勝)을 거두게 해주었지... 문약(文若)! 당신은 나의 장량(張良), 장자방(張子房)이었고, 나의 오른 팔이자 왼팔 이었고, 또 나의 형제(兄弟)와 다름없었소. 애석(哀惜)하오!... 애석(哀惜)해! 같은 길을 못가서..." 조조(曹操)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비(丕)야!" 하고 아들을 부른 뒤에,
"가슴이 아프구나!..." 하고 말하였다.
"예! 이해합니다. 아버님께선 보내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없이 보내신거지요. 더구나 순대인(筍大人)은 아버님의 지기(知己)였습니다."
"들으셨소? 문약(文若), 조비(曺丕) 말이 맞소. 당신은 내 허물없는 지기(知己) 였지, 허나 당신(當身)은 천하인들 처럼 나 조조(曹操)를 잘못 봤소. 기다리시오. 시간이 증명(證明)할 것이오. 당신이 날 떠난 건 실수(失手) 라는 걸... 크나 큰 실수!" 이렇게 말한 조조(曹操)는 향을 향로(香爐)에 꽂고 그대로 돌아섰다.
*인물평
순욱(筍彧 : 자 문약(文若) 163 ~ 212년.
조조(曹操)의 모사(謀士), 본시 원소(袁紹)의 수하(手下)로 있었으나, 원소가 큰 인물(人物)이 아님을 알게 되자 기회(機會)를 찾던 중 조조(曹操)가 청주(靑州)에서 황건적(黃巾賊)을 칠 때 그의 막하(幕下)에 조카 순유(荀攸)와 함께 참여(參與)하였다. 이후 조조(曹操)는 군대와 국가의 큰 일을 모두 순욱(筍彧)과 더불어 계획(計劃)하였고, 순욱(筍彧)도 조조를 위하여 평생(平生)을 바쳤으나, 그가 위왕(魏王)이 되어 천자(天子) 위에 군림(君臨)하려 하자, 이를 반대(反對)한 이유로 조조의 노여움을 산 뒤, 위문 물품으로 빈 과일 찬합 통을 받음으로서, 순욱(筍彧)은 그토록 믿었던 조조(曹操)와의 사이가 서로 마음은 없는 사이였음을 깨닫고 스스로 자결(自決)하기에 이른다.
삼국지 - 277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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