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 키위새 NZ
모래바람 속에 갇힌 평화: 호르뮤즈와 중동 사태를 바라보는 혜안•••••••••
■ 서론: 불타는 사막, 끝없는 악순환의 톱니바퀴
2026년 오늘날, 중동은 또다시 피와 모래바람이 뒤섞인 비극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지난 2025년 여름, 온 세계를 긴장시켰던 이른바 '12일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본토 공습(에픽 퓨리 작전)으로 촉발된 전쟁은 중동 전체를 걷잡을 수 없는 화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사망과 정권의 요동, 이에 맞선 이란의 호르뮤즈 해협 봉쇄 및 보복 공습, 그리고 최근 극적으로 도출된 60일간의 임시 휴정 합의(MOU)와 그 뒤를 잇는 팽팽한 신경전까지. 우리는 매일 아침 뉴스를 장식하는 참혹하고도 복잡한 소식들을 접하며 깊은 피로감과 원초적인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 지독한 갈등의 고리는 과연 끊어낼 수 없는 것인가? 인류의 지혜는 왜 이 좁은 모래 벌판에서 작동하지 않는가?"
질문자님께서 던져주신 날카로운 의문들은 이 거대한 비극의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호르뮤즈 해협을 둘러싼 '돈과 법의 전쟁', 우방국들의 차가운 외교적 계산기, 그리고 이란의 핵 개발과 이스라엘의 생존 본능이 얽힌 복잡한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보고자 합니다. 한 편의 수필을 쓰듯, 삶의 지혜를 담아 이 거대한 폭풍의 내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 본론
1장: 호르뮤즈의 바닷길과 통과세의 진실 — 원래 기름값에 있던 것 아닌가요?
중동발 위기가 터질 때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단 하나의 숨통이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외통수 길, '호르뮤즈 해협'입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아주 상식적이면서도 예리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우리가 비싸게 치르는 원유 가격 속에 그 좁은 바닷길을 통과하는 세금(통행세)이 이미 다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닌가? 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통과세를 새로 징수하겠다는 말이 나오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국제해양법이라는 다소 딱딱하지만 흥미로운 약속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평소 지불하는 석유 원가에는 이란이나 오만 같은 연안국에 지불하는 '통행세(Transit Toll)'가 단 일 원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1982년 제정된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에 따르면, 호르뮤즈 해협처럼 국제 무역에 사용되는 필수적인 해협은 주변 국가의 영해에 포함되더라도 모든 국가의 선박이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을 가집니다.
즉, 국제법상 이 해협은 특정 국가의 사유지가 아니며, 길목을 막고 지나가는 배들에게 일방적으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통과세' 논란이 뉴스에 도배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치르는 초과 비용은 연안국에 내는 세금이 아니라, 시장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 비용'**입니다. 바닷길이 불안해지면 선박 회사들은 어마어마한 **'전쟁 위험 할증료(War Risk Surcharge)'**와 높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또한, 혹시 모를 나포나 피격을 피해 다른 항로로 우회해야 하므로 막대한 물류비가 추가됩니다. 즉, 기름값이 오르는 것은 통행세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유령이 만들어낸 '불안의 세금'인 셈입니다.
그런 와중에 최근 이란이 임시 휴전 체제의 종료를 앞두고 오만과 협력해 새로운 '통과세' 프레임을 짜겠다고 발표하고, 이에 맞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역시 호르뮤즈를 통과하는 선박들에 20%의 통행료를 매기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을 던졌다가 황급히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정상적인 국제 교역의 룰을 깨고,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서로를 굴복시키기 위해 던지는 '정치적 삥뜯기'이자 사법적 도발에 가깝습니다. 원래 존재하지 않던 통행세를 억지로 만들어내 안보와 경제의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2장: 동맹의 계산기 — 자유 우방국들이 참전을 주저하는 이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습하고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감행하는 상황에서도, 왜 한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핵심 자유 우방국들은 방어적인 간접 지원(영국의 기지 제공 등)에 그칠 뿐, 선뜻 총대를 메고 참전하지 않을까요? 동맹의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거창한 구호에 비추어 보면 선뜩 이해하기 힘든 대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간의 외교와 전쟁은 '정의의 사도 게임'이 아니라, 철저히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따지는 '냉혹한 생존 방정식'입니다. 우방국들이 참전을 주저하는 데는 세 가지 치명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에너지 안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경제적 자살 행위 방지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세계 최대의 산유국 반열에 올라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낮아졌습니다. 반면 한국, 일본,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공급의 숨통을 여전히 중동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미국과 손잡고 이란과의 전면전에 동참한다면, 이란은 즉각 이들 국가로 향하는 유조선을 나포하거나 호르뮤즈 해협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릴 것입니다. 이는 해당 우방국들의 산업 전체를 마비시키고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경제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둘째, 선제 타격에 대한 '국제법적 명분과 정당성'의 결여
이번 2026년 이란 공습은 유엔 안보리의 합의나 공식 결의를 거치지 않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독자적인 '선제 격퇴' 판단에 의해 단행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국제법 전문가들은 이 공습이 명백한 유엔 헌장 위반이며, 침략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자유 진영의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법적 명분이 뚜렷하지 않고 국제적 비난 소지가 다분한 전쟁에 자국 군인의 목숨과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을 명분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셋째, '외교적 타협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이성적 판단
유럽의 우방국들(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전통적으로 이란 핵 합의(JCPOA)를 복원하기 위해 수년간 끈질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이란을 짓밟는 시도가 결국 역내의 극단주의 세력(헤즈볼라, 후티 등)을 자극해 걷잡을 수 없는 중동 전체의 대화재로 번질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의 전선에 동참하기보다는 외교적 중재자로서의 통로를 열어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에 부합한다는 계산입니다.
3장: 실존적 공포와 생존의 집착 — 이란의 핵과 이스라엘의 평행선
중동 사태가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가장 깊은 뿌리에는 이란의 '핵 개발 집착'과 이스라엘의 '실존적 공포'라는 두 개의 폭주하는 기관차가 마주 보고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이란의 핵 보유는 단순히 까다로운 이웃이 무기를 하나 더 갖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란 정권은 수십 년간 공식 석상에서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리겠다"고 천명해 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라는 민족 말살의 비극적 역사적 트라우마를 뼈에 새긴 이스라엘에게, 핵을 손에 넣은 이란은 내일 당장 자신들을 멸절시킬 수 있는 '실존적 종말의 도구'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우려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핵 발전소와 연구소를 선제적으로 폭격하는 극단적 카드를 주저 없이 꺼내 드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란에게 핵 개발은 '체제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방패'입니다. 이란 지도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을 포기하거나 갖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미국의 군사력 앞에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학습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재와 군사적 위협이 거세질수록, 이란은 "우리가 살길은 오직 확실한 핵 억지력을 갖추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다"라는 집착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서로의 방어 행위가 상대에게는 치명적인 도발로 인식되는 이 완벽하고 지독한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의 평행선 위에 서 있기에, 중동은 늘 해결 불가능한 절망의 땅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 결론: 실타래를 푸는 혜안 — 중동 사태를 해결할 세 가지 열쇠
우리는 종종 거대하고 얽힌 매듭을 보면 단칼에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중동이라는 매듭을 무력이라는 칼로 자르려 할 때마다 그 파편은 더 잔인한 테러와 무정부 상태라는 괴물이 되어 전 세계를 덮쳤습니다.
영원히 멎지 않을 것 같은 사막의 폭풍 속에서도, 우리는 절망을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를 도모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중동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할 세 가지 방향, 즉 '고견(高見)'을 제안합니다.
첫째, '다자간 상호 안전보장 체제'의 구축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제재와 이스라엘의 독자적 폭격은 이란의 저항 심리만 자극할 뿐입니다. 미국의 독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협력회의(GCC) 국가들과 이란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상호 불가침을 약속하는 **'지역 다자간 안보 협의체'**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서로의 체제 생존을 지역 공동체가 함께 보장해 줄 때, 비로소 이란도 핵이라는 극단적인 방패를 내려놓을 명분을 얻게 됩니다.
둘째,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통한 평화의 비용 극대화
"빵을 나누어 먹는 손은 총을 쥐기 어렵다"는 오랜 격언이 있습니다. 이란을 무조건 세계 경제에서 고립시키는 제재 방식은 이란 정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이란의 핵 개발 중단과 역내 대리전 조장을 멈추는 대가로, 이란의 자원을 세계 공급망에 정식 합의 하에 편입시켜야 합니다. 이란 스스로 '평화를 지키는 것이 전쟁을 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라는 체감을 하게 만들 때, 평화는 구호가 아닌 현실의 억지력을 갖추게 됩니다.
3째, 외부의 강제적인 정권 교체(Regime Change) 망상 폐기와 '내부의 진화' 지지
총칼과 폭탄으로 지도자를 제거하고 정권을 무너뜨린 자리에는 언제나 더 혹독한 카오스가 찾아왔습니다.
이란 정권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려 하기보다, 이란 내부의 젊은 세대가 갈망하는 민주화 열망과 경제적 개방 요구를 세련된 외교적 방식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 내부의 문화적, 세대적 변화를 통해 이란 스스로가 호전적인 신정 일치 국가에서 이성적인 정상 국가로 탈바꿈하도록 유도하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영구적인 해결책입니다.
사막의 거센 모래폭풍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기세를 잃고 대지 위로 고요히 내려앉기 마련입니다. 총구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승리는 또 다른 피의 보복을 낳을 뿐이지만, 서로의 생존을 존중하고 이익을 나누는 상생의 지혜는 가장 단단한 불신의 벽도 결국 무너뜨릴 것입니다.
부디 인류의 지혜가 이 오래된 슬픔의 땅 위에 따스한 봄바람으로 가닿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