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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일로 詩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골드
밀라노 시내를 벗어나자 마자 거대한 평원이 끝이 없이 펼처져 있었다. 들녘은 마냥 푸르렀고 저 멀리 알프스 산맥의 정상엔 신령스러운 잔설을 머금은 연봉들이 가도 가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 외갓집에 가는 신작로위의 햇빛이 눈부셨듯이, 또 외갓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콩당거렸듯이 나는 마냥 동심의 나래로 빠져들었다. 햇빛은 눈이 부서질 정도로 눈부셨다.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상 이곳은 습도도 없어 쾌적하기만 하다.
농작물은 대부분 밀과 벼와 옥수수였다. 그 논과 들 사이에 붉은 기와 지붕의 농가가 간혹 가다 눈에 띄었다. 우리 농촌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이곳 이태리 농가의 모습도 푸근하고 정겹다.
하늘 아래의 산과, 산 아래의 들녘과 농가가 이태리의 눈부신 햇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그냥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풍요롭고 평안해졌다.
그리고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우리 농촌의 농가를 여기에 옮겨놓으면 바로 우리 땅이라고 말해도 그리 큰 억지는 아닐듯 하다.
벼농사의 규모도 매우 넓었다. 지난 5월 서해안 도보여행시의 우리 농촌과 다른 점은 이들의 농법이 직파법이란 점이었다. 우리처럼 모판을 따로 준비하여 이양기로 줄을 세워 파종하는 우리의 농법과는 달랐다. 간혹 가다 논들 사이사이로 밀밭들이 곡향을 내뿜고 있었다.
이 황금빛 밀밭과 저 푸른 논이야말로 대자연이 바로 우리 인간들에게 하사한 본향(本鄕)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옛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주님이 고마움의 표시로 내려주신 선물이려니 하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묘사되어 있는 그 강렬한 햇볕과 색채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들이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리고 덕수궁 미술전시회에서 감상하였던 그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이 하나 하나 나의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처갔다.
이름모를 홀쭉한 삼각형 모양의 나무들과, 황금빛 밀이삭이 바람에 출렁거리고 하늘은 푸르렀던, 그 인상파 화가들이 그토록 자신들의 고향을 강렬한 색채로 페인팅한 그 배경을 나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는 망외의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우린 두시간 삼십여분의 버스 여행을 마치고 토리노 시내에 도착하였다. 이태리에서 가장 긴 강이라는 포강을 건넜다.
토리노는 포강(江) 연변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며 기원전에 켈트인이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로마의 식민도시로서 번영하였으며 11세기 이후에는 사보리 왕가에 귀속되었다. 사보리 왕가가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추진할 때는 그 중심지가 되었고, 1861∼64년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99년 피아트 자동차공장이 건설된 이래 피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공업도시 로서 북부 이태리 공업지대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토리노의 자동차 생산은 이탈리아 전체의 85%를 차지하며, 그 밖에 금속·화학 공업, 항공기 등의 기계공업도 활발하다. 시가지는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6각 모양의 도로망을 갖추고 있으며, 왕궁이나 15세기에 창설된 대학 등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이상 인터넷 검색 인용)
토리노 시민들의 쉼터인 카를로 필레체 광장을 둘러 보았다. 이태리의 모든 시민 광장에는 통일 조국의 아버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동상이 빠짐없이 서 있었다.
카를로 펠리체 광장앞의 조그마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두 성당에 들렀다. 이 두 성당에 들어서자 비로소 교회다운 안온한 분위기가 들었다.. 밀라노 듀오모에서는 그 거대한 신전에 위압당해 초라한 탕아가 된것 같았던 내 영혼이 겨우 고향집을 찾아온 듯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성의(聖衣)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린 이 동호인 고적대의 환영을 받았다. 6월 21일 일요일에 왠 동양인 부대들이 그들의 도시를 방문해 준 성의표시였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사실은 우리가 그 동호인 고젹대 앞으로 몰려가 구경하기에 바뻤다. 그 군중 틈새에서 난 아주 깜직하고 예쁜 이태리 소녀들과 그의 가족을 보고 "챠오 챠오"를 연발했다. "챠오 챠오"는 안녕이란 이태리 인사말이다. 부모들이 웃고, 그 소녀들도 배시시 웃으면서 몹시 부끄러워한다.
어디를 가든 이렇게 어린이들은 귀엽고 발랄하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이다. 한국 같으면 귀엽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그리 하면 큰 실례란다.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얻은 다음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리노 왕궁( Palazzo Reale)을 지나갔다. 이 궁은 사보리 왕가의 궁전이다. 17세기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리가 시집을 오게 되자 왕비를 위해 지은 궁전이다. 피에드몬트 지방을 대표하는 곳인 토리노는 사보리 왕가의 수도로 12~19세기 동안 왕국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귀족적인 양식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왕가는 1645년 이후 머물게 되었다. 많은 방은 벽걸이 융단으로 되어있으며 주변에는 중국과 일본식 꽃병이 많이 있다.
가구가 궁전의 아름다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양초와 거울마저도 은으로 된 틀과 함께 그 풍미를 더하고 있다. (이상 인터넷 검색 글 인용)
시간이 없어 궁전의 내부를 볼수는 없었다. 이건 여행이 아니다. 숲을 지나면서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소냐?
내가 처음 이 수의를 친견했 때에는 이게 정말 인류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걸머지신 예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는 수의라는 점이 몹시 신비로웠다. 대단한 물건이다 라고 영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서 그 의아함과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토리노에 있는 산조반니바티스타 성당의 왕실 예배당에 보존되어왔던 수세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로 알려졌던 아마포라고 한다.
이 수의는 2개의 희미한 갈색 형상, 즉 수척하고 눈이 움푹 꺼진 1m 70㎝의 남자의 뒷면과 앞면이 마치 수의를 길게 펴 그 절반으로 몸의 한쪽을 덮고 나머지 절반을 머리 위로 넘겨 머리에서 발까지 그 반대쪽을 싼 것 같은 형상이 나타난다.
이 형상들은 머리 위의 가시 자국, 마치 채찍에 맞아 생긴 것 같은 등의 찢긴 상처, 어깨 위의 타박상, 피로 추측되는 여러 반점들을 비롯하여 예수의 성흔과 일치한다고 주장되는 흔적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때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이 수의의 신빙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수세기 동안 진위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 이 수의의 천 자체가 1260-1390년의 어느 시점에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에 따른 결과이다.
로마교황청은 마침내 이 토리노의 수의는 진짜가 아니라고 선언했지만,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교도들에게 계속해서 그 수의를 영감에 찬 그리스도의 생생한 형상으로 숭배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이상 인터넷에서 참조)
위의 사진들은 촬영이 허용되었으나, 진짜 예수님의 수의가 보관된 본당은 사진 촬영이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 늙은 여자 경비원이 눈을 부라리고 "노" 라고 금속성 소리를 질러대어 난 소스라치게 기겁을 하였다. 예수의 수의이든 12-13세기 어느 성직자의 수의이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聖衣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을....
예수님의 성의 구경을 마치고 나왔는데도 동호인 고적대의 축제는 끝날 줄을 몰랐다. 잠시 그들의 연주를 구경하며 나그네의 여심을 달래보았다.
토리노의 여행도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 사보리 왕궁의 정문이 아름답다. 이태리는 도시 전체가 이처럼 박물관인 동시에 유네스코가 정한 문화유산지구이다.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안방에 앉아서 그냥 수백억 달러를 버는 셈이다. 조상을 잘 만난 음덕도 있지만,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잘 받들고 보존해온 이태리인들의 노력도 큰 몫을 차지하리라. 하여튼 이태리의 관광수입은 아마도 태국을 훨씬 능가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끝>
2009.7.7 작성 골드리버 |
첫댓글 이태리 기독교 문명의 진면목을 보고왔군요. 남들은 그져 보는것으로 그치지만 여행기까지 남겨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여행이 되었네요
이 여행기를 쓰면서, 처음 접하는 이태리와 기독교 문명을 비교도인 내가 이야기하자니 참 여려웠습니다.
챠오, 챠오...부모님 허락 받고 아이 머리 쓰다듬어 주려면, 김빠진 맥주지...그게.
현지 관습에 따라야 하지 않을런지
여행기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토리노 왕궁 왕비를 위해 그 웅장한 궁전을 지었다니 그 막강한 왕권을 쥐고 있었으나 왕비앞에서는 그저 한 남자이었나 봅니다
언제 한 번 동준이 집에서 내가 집에서 담근 향원곡주로 정원에서 놉시다.
8월초,,3,4,6,7일, 그러니까 월화목금중에서 하루 택일해서 갑시다 아니면 다음주 중 월화목금중에서 택일해도 좋고 함께할 사람은 카페를 통해 모집하고
그럼 그대가 한 번 모집해 보시오 난 언제든 시간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