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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존 멕코맥 John McCormack 은 1884년 6월 14일 아일랜드의 중심부에 있는 시골 마 을인 Athlone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스코틀랜드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지역 의 모직공장에 다녔다. 멕코맥은 일찍이 노래에 대한 큰 흥미를 보였으나, 그의 흥미가 전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902년에 그가 더블린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멕코맥 은 더블린의 Pro-Cathedral에 있는 팔레스티나 합창단에 들어갔고, 거기서 그 합창단의 지휘자이자 유명한 성악교사였던 Vincent O'Brien에게 노래를 배웠다. 1904년에 그는 아일랜드 최고의 음악과정인 Feis Ceoil 테너 클래스에 들어갔는데, 거기 에서 그는 동료들은 쉽게 앞지를 수 있었고 Denza 메달을 따냈으며 런던에서 첫 레코딩 을 했다.멕코맥은 이태리로 가서 빈센초 사바티니에게 가서 성악을 배웠고, 1906년 1월 15일에 <친구 프리쯔>로 사보나에서 데뷔했다.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계약을 얻는데 어 떤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1907년 10월 15일 영국 코벤트 가든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 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 역으로 데뷔했다. 그때가 23살이었으며 코벤트 가든의 역사상 가장 어린 주역 테너였다. 그 해 11월 6일에 는 그의 유명한 레퍼토리인 <돈 조반니>의 돈 오타비오 역을 불렀다. 코벤트 가든에서 의 그의 경력은 세계 제 1차 대전으로 그 극장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되 었다. 그의 오페라 레퍼토리는 15개였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돈 조반니>, <파우 스트>, <라크메>, <람메르모르의 루치아>, <리골레토>, <라 보엠>, <몽유병의 여인>, < 세빌리아의 이발사>, <토스카>, <메피스토필레>, <로미오와 줄리엣>, <나비 부인>, <연 대의 딸> 등 14개의 주역 레퍼토리와 유일한 제 2배역이었던 <오텔로>(카시오 역을 맡 음)를 포함해서 15개였다. 그의 파트너로 노래를 불렀던 소프라노에는 테트라찌니, 멜바, 무찌오 등이 있다.1909 년 11월 10일, 멕코맥은 테트라찌니, 사마르코와 함께 <라 트라비아타>로 멘하 탄 오페라 하우스의 가을 시즌의 막을 열었다. 그리로 뒤 이어 <라 보엠>, <리골레토>, <라크메>, <연대의 딸> 등을 그 오페라 하우스에서 불렀다. 1910-11년에 그는 멜바의 오스트리아 오페라 순회연주에 주역 테너로 참여했다. 그는 1910년 11월 29일에 멜바와 함께 주연한 <라 트라비아타>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에 데뷔했고 1911년에 미국 오페라 1917-18년 시즌에 다시 돌아와 <토스카>와 <라 보엠>, <나비 부인>을 불렀다. 그는 자기의 연주 경력 중 세계 제1차 대전 때문에 1914년의 짤츠부르크 페스티발이 취 소된 것을 가장 아쉬워했다. 그는 <돈 조반니>에 릴리 레만, 제랄딘 파라 등과 함께 캐 스팅 되었는데 안타깝께도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공연은 1923년 몬테 카를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으며 거기에서 그는 <마르타>, <토스카>, <세빌리아 의 이발사>, <나비 부인>을 불렀다. 멕코맥의 우아한 목소리는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그는 연기에 미숙했 고, 그 스스로 "나는 세계에서 가장 변변찮은 배우입니다" 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오페라 아리아 레코딩들은 벨칸토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오늘날까지 자리잡고 있다. 특히 돈 오타비오가 부르는 아리아'내 연인을 위하여'는 가장 모범적인 연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맥코맥 본인도 "내가 녹음한 레코드 중 앞으로 가수로서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노래라면 아마 '내 연인을 위하여'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오페라 무대를 떠난 후, 15년 정도 민요와 콘서트 가수로 활약했고, 리트, 오라토 리오, 오페라 아리아, 발라드 등을 녹음 하기도 했다. 그가 노래하면 엄청난 관중이 모여들었고 그의 레코드는 수백만장씩 팔려 나갔다고 한 다. 어떻게 보면 그는 서투른 연기의 오페라 보다는 아일랜드 민요로 인기를 더 끌었고 오늘까지 그가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은 아일랜드 민요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매우 서정적이며 독특한 목소리로 아일랜드 민요를 불렀고 체구에 비해 성량은 작 았어도 아름다운 가성으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그는 팬들이 있는 곳이라면 역이나 근로자들이 있는 곳 등 가리지 않고 가서 노 래를 불렀다고 한다. 멕코맥의 고별 공연은 1938년 11월에 로얄 알버트 홀에서 열였는 데 표는 매진되었고 매우 감명깊은 연주를 들여 주었다.그 후 멕코맥은 1945년 9월 16일 에 더블린의 부터스타운에서 죽었다. |
첫댓글 귀한 자료 넘 좋아 담아 왔습니다 . .. 우리 님들과 같이 듣구 싶어서~~^^*
rose♣ 님... 귀하게 같이 잘 듣습니다. 이제... 저도... 로오~ ♣영자 님의 우리 님들중에 하나가 된 것 같은... 저만의 착각에... 빠져봅니다... 귀한 날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잘 들을게요~! 넘 넘 감사드립니다.~!
젊은날의 추억들...한갖 헛된 꿈이라.....멕코맥의 음성으로 다른 색깔을 맛보았습니다..감사드려요..
코끝은 물론 가슴도 찡하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아!! 흘러간 젊은날이여..... 날씨가 흐린 우울한 아침에 가슴이 뭉클하도록 그리운 친구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쩔수 없는 초노의 모습으로 살아가겠지요. 잘 듣고 갑니다.
아마 여울목님이 편집한 자료로 보이네요.이 분은 자기가 편집한 게시물이 밖으로 돌아다니는거 많이 싫어 하는 분인데...
내용이 눈물나게 감동이네요...잘 들었습니다 로즈님 ^*.
정말 좋은 음악이군요.. 테너 존 멕코멕이라는 사람은 음악에 눈을 뜬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