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의 쇼트커트는 충격입니다. 헤어스타일에 한 한 보수 단발머리를 고수하던 아이가 26세 7월에 쇼트커트를 해서 아비가 깜짝 놀랐어요. Are you Okay? 그래도 쇼트커트가 야물어 보이긴 합니다. "아부지 저 아시아프 당선돼서 8월에 전시합니다. 문화 서울역 284라구, 옛날 서울역 건물이에요. 지금 서울역 옆에 있는(예주)" "추카추카 아비가 한턱 쏠게. 날짜 잡고 연락하시라(나)" "크히히 감사합니다. 조아(예주)" 땅덩어리도 크고 사람도 많고 말도 많은 미국 텍사스주에서 다이아반지를 물에 빠트렸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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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는 물놀이하다 잘 잃어버리니까 올여름 바캉스에 주의하시라. 한 여성이 아들의 야구팀과 함께 호수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가 쑥 하고 미끄러져 빠지더니 호수로 굴러 들어가 버렸다는 것 아닙니까? 어어! 하다가 보니 눈 빤히 뜨고 100년 산 다이아 반지가 물에 가라앉아버린 것입니다. 십수 년 전에 여수 어느 바닷가에서 '외도'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이 여성처럼 똑같이 내 금반지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도 한나절 내내 찾다가 못 찾고 돌아왔어요. 아! 골드 3돈 이면 돈이 얼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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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저마다 상승하려는 <힘에의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세상은 그 의지들의 충돌이 빚어낸 현재의 장면(상황)인 것입니다. 물론 이 현재는, 내일 또 다른 의지에 의해 전복될 것이지만. 결국 모든 존재는 자기 보존(생존)을 넘어서 ‘자기 초월과 팽창’을 향해 작동한다는 전제입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당분간 나의 세계관이 될 것입니다. 쾅! 쾅! 에예공! 팔로 미! 빅뱅 역시 하나의 거대한 힘의 분출, 곧 ‘의지의 발현’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는데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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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니체는 “존재 = 힘의 의지”라고 보았다. 세상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고, '힘의 장(場)'이라고 본 것이다. 니체는 힘 자체를 목적 없는 목적성으로 이해한 것 같아. 빅뱅은 어떤 신적 명령도, 도덕적 목표도 없이 그저 힘이 자기 자신을 분출한 사건일 뿐이야. 질 들뢰즈(Deleuze)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기반으로 물리학·생물학·사회 이론까지 통합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을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니체의<힘에의 의지> vs 헤겔의 <운동에의 의지>는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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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의 의지>는 우주론적이고 객관적인 에너지로서, 존재 그 자체가 상승하려는 생명의 본능을 드러낸다면, <운동에의 의지>는 주체 내부의 자기부정과 모순 인식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는 이성의 창조적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버맨쉬(L'homme révolté, 반항하는 인간)'는 니체보다는 오히려 헤겔적 '주체'에 더 가까운 초상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인식론에 한 한 헤겔이 칸트와 니체를 능가한다고 보고 헤겔을 리스펙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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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니체의 <힘에의 의지>란 방향성과 목적 없이도 솟구치는 자생적 에너지이고, 모든 생명·존재는 자기 초과를 향한 비이성적 충동(반항)이며, 생명 충동의 폭발이기에 기존 질서의 부정 자체가 목적입니다. 반면<헤겔의 운동에의 의지>란 자아는 자기 안의 모순을 인식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며 더 높은 통일로 나아가는 이성의 서사입니다. 반항은 정(질서) → 반(거부) → 합(새 질서)의 내재적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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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니체의 힘에의 의지 = 생명 본능의 우주적 충동, 헤겔의 운동에의 의지 = 이성적 자기부정의 창조적 과정→ 종합하면 <초인=리버맨쉬>이란 니체의 디오 니스적 광기보다, 헤겔적 주체의 책임 있는 반항에 가깝지 않을까. “생명 있는 모든 존재” → 니체는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 제도, 사상, 심지어 무생물적 형상에도 의지적 구조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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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하려는 의지” → 단순히 ‘살아남으려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이, 더 강하게, 더 창조적으로 나아가려는 운동성입니다.
“현재는 힘의 의지의 결과” → 현재 상태란 고정된 질서가 아니라 의지들의 각축 끝에 임시로 형성된 균형입니다. “내일 또 전복된다” → 니체적 의미에서 ‘가치’는 결코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재구성됩니다.
2025.7.1.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