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閑談)
순절(殉節)-정의(正義-眞理)를 위해서는 구차(苟且)한 짓을 하지 말라.
신라 제 23대 법흥왕(法興王-514~540)이 527년에 불교를 국교로 하고자
했으나, 재래의 무교(巫敎)에 젖은 조신(朝臣)들의 반대로 봉불(奉佛)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차돈(異次頓-506~527)이 불자로서 자신의 목을 베어 분분한 조신
들의 의논을 결정토록 자청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나는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는데, 잘 못이 없는 자를 죽일 수는 없다."
라고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차돈은
"불교가 일어난다면, 신은 죽어도 애석함이 없습니다."
불심에 불타는 22세의 이차돈은 마침내 순교를 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불법을 위해 형을 받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영험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에는 반드시 이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마침내 이차돈의 목을 베자, 잘린 목에서 하얀 피가 솟구치며 사방이 캄캄해
지고, 땅이 진동하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등 이변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광경을 본 중신 귀족들은 더 이상 불사를 반대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차돈이 의연하게 죽음으로써 법흥왕은 찬란한 불교 문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생명도 소중하고, 정의도 소중하지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생명을 버리고, 정의를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맹자>에 있는 말입니다.
곧 정의(正義-眞理)를 위해서는 구차(苟且)한 짓을 하지 않고 생명을 초개
(草芥-지푸라기. 곧, 하찮은 것의 비유.)와 같이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댓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이 아닌, 작은 이익이라도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