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충돌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든지 빛과 그늘은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염일방일이라고 했다. 하나를 쥐면 다른 하나는 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 평범한 진리도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모르쇠다. 모든 걸 움켜쥐려는 욕심 때문이다.
무슨 일이건 그 결과에는 이해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익을 보는 쪽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쪽도 있다.
알고 보면 제로섬 게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를 반야심경에서는 부증불감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나의 손해 앞에서 남의 이익을 찬탄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려운 성인급이 되어야 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기 동네에 납골당이나 화장장이 들어오면 대부분 머리띠를 두르고 두 주먹을 움켜쥔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루 살았다는 말은 하루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영원히 살아 있을 것처럼 죽은 사람을 무시한다.
내 속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 산 자와 죽은 자도 공존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지역은 안 된다는 목소리만 들린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늘 이해관계라는 결단의 연속이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도 늘 자기를 저울질해야 한다. 내 속에서도 늘 이해관계의 충돌이 날마다 순간마다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해집단 간의 갈등은 늘 사회의 불안 요인이다.
모두 자기 이익만을 앞세워 불특정 대중을 담보로 한 채 정당성을 주장하는 집단 행위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행정학에서 이해충돌이란 공직자로서 직무수행의 의무와 개인적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경우를 뜻한다.
이럴 때 누구든지 해당 공직자가 개인의 이익과 무관한 정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대권유력주자가 자기가 소유한 부동산이 있는 강남 어느 지역에 고도제한 완화 결정을 내린 전력이 문제 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도 이것이라 하 겠다.
이해충돌의 해결은 결국 무아의 길뿐이다.
모든 존재는 관계성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연기 도리의 이해를 통해 전체를 보는 눈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이 실천을 통해 외면화되어야 한다. 특히 공직에 있을수록,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부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게 선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위치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이다.
출처 ; 원철 스님 /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 원철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