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 10일 간의의 '몽블랑과 유럽의 중세마을' 여행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렌다. 당연한 일이다.수십년 만에 집 사람과 초등학교
3학년 손자 녀석을 데리고 떠나는 8박 10일의 '몽블랑과 유럽의 중세마을 여행'을
상상해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첫 도착지 프랑크푸르트는 백야 현상으로 밤 10
시인데도 밝았다.서울에서 동행한 인솔자 미스 강은 유치원 선생님이 꼬맹이들 인
솔 하듯 이것 저것 일러주고 챙겨준다.모습이 소피아 로렌을 닮은 것 같기도 한 그
녀는 철학자 괴테까지 동원하여 학습을 시킨다.여행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
니고 찾아가는 과정들을 즐기는 것 이라고 정의하였다면서 괴테가 말한 대로 과정
과정을 즐겁게 여행하자고 타 이른다.
둘째 날,첫 관광지 런던은 날씨가 너무 좋아 템즈 강변을 걸으며 영국의 숨결을 느
끼면서 대영 박물관으로 갔다.첫 관람실 입구에 로제타스톤이 나타난다. 꼭 보고
싶던 그 돌 조각이 너무 반가웠다. 모나리자 보다 더 보고싶은 돌이라 축소된 돌판
을 거금 35 파운드를 주고 샀다.오는 날 까지 가방이 무거웠지만 무게는 참을 수 있
었다. 런던의 쾌청은 행운이었고,그 날 생신을 맞은 여왕님이 버킹검궁전 베란다
에서 손이라도 흔들었으면 세계의 특종감인데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셋째 날, 프랑스 파리도 날씨 덕택에 에펠탑 꼭대기에서 시가지를 전망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노틀담의 곱추 사원도 개선문도 콩코드 광장도 모두 감탄사가 나왔
다. 좀 아쉽기는 마로니에 광장까지 여유있게 산책하고 싶어도 일정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세느강의 유람선에서 모두를 큰 소리로 합창을 하고 싶었지만 코리안들 너
무 시끄럽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조용히 뱃놀이했다.
넷째 날, 파리-제네바 고속 철도 떼제베는 너무나 아름다운 프랑스의 농촌 풍경을
선물했다.제네바 시내와 오비브공원 산책 관광을 하고 레만호의 유람선을 타고 중세
마을 이브아르로 갔다. 호수 물이 너무 맑아 유람선 타기가 미안스러웠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기가 앞쪽과 뒷편에서 펄럭이는 선상에서 가슴을 펴는 기분은 괴테의 관광
이론으로 치면 과정의 즐거움이 이런 것 아닌가 억지로 해석해 보았다. 옥에도 티가
있다 하였던가? 문제가 생겼다. 이브아르에서 만나기로 한 버스가 시간이 되어도 오
지 않는다. 운전기사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몇 사람은 본성을 들어
낸다. 문제를 해결 한 연후에 따져도 될 일들을 별 소리를 다 한다.가이드 미스강은
스위스, 이태리 지사로, 이사님, 사장님을 부르며 연상 연락을 취해도 이태리 운전
기사와 연결이 되지 않으니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오랜 경력의 소산인지
차분함을 잃지 않음을 보니 당차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았다.엎친 데 덮
친 꼴인지 날씨마저 소나기가 쏟아진다. 할 수없이 택시 편으로 에비앙으로 출발을
했는데 조금 가다가 버스를 만나 2시간 정도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한숨을 돌린 미스
강은 가게에서 체리를 사와 우리들을 위로해준다.그리고는 마이크를 잡고 애창곡(?)
케세라 세라를 불러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한다. 케세라 세라가 패배주의의 될
대로 되라 가 아니고 긍정적으로 어떤 운명이라도 오라! 나는 조금도 두려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 해프닝을 통하여 어떤 여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인지 찾아보지는 않고 불평만 하는 모습을 보니 동행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속내를 엿
보는 것 같았다.숙박지 샤모니의 한국 식당에서 곰탕국물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준다.
일곱 째 날, 미스강의 말을 빌리면 폐허마저 아름다운 영원한 도시 로마에서 오드
리 헵번 처럼 “로마의 휴일”을 보냈다.바티칸 박물관, 성베드로성당과 유적들을 주마
간산(走馬看山)을 하는데 온 종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눈도 입도 영혼도 놀래버
린 하루였다.소리없이 감탄사만 남발하다가 끝 무렵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내부를 관
광하고 나오면서 결국은 야아핫!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콜로세움 출구쪽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계집아이 세 명이 내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 아이가 내 턱 밑으로 신문을
펴 보인다. 신문지 밑으로 계집애 손이 내 가방으로 들어옴을 직감으로 느꼈다. 이 때
무의식적으로 태권도 기합소리로 얏! 하였더니 그 집시 소녀들은 혼비백산이 되여 도
망치고 말았다. 잃은 것은 없고 추억거리만 얻은 셈이 되였다. 그러니 가이드 미스강
이 신문 파는 아이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가 유비무환이 된 셈이었다.
여덟 째 날, 차범근, 차두리가 있어 코리안에게 행복한 도시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이
곳은 괴테가 약방의 감초다. 그러나 오늘의 프랑크푸르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파우스트의 번뇌도 하루 만에는 찾을 길이 없었다. 요즘 동북아 중심 운운하시는 양반
들에게 이곳으로 출장을 보내 허브가 무슨 뜻인지를 알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샤 롯데에 반해 버린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야기도 여행의 양념거리인 것
같다.숙소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와! 소리가났다.역전 대로변에 공창가(公娼街)의 선전
네온사인과 쇼윈도를 본것이다.
아홉째 날, 하이델베르그에서 여행의 참 멋을 느낄 기회가왔다. 전날들 처럼 웅장함도
감동스러움도 덜하지만 마음의 고향을 찾아온 것 같다. 하이델베르그의 땅 값을 묻는
여행자가 있었다. 아마 여기 와서 살고싶은 모양이다. 가이드는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땅값은 헐한데 파는 사람이 없어 살수없습니다. 성채안은 모든 것이 역사고 문화유산
이다. 용량이 22만 리터짜리인 포도주통을 보고 옛 군주들의 객기를 짐작해 본다.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이기도 한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그는 아담한 대학 본부만
보이고 단과대학들은 흩어져 있어 가 볼 시간이 없었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이곳을
선택하였음은 여행사의 깊은 배려가 있었던 것 같다. 동행한 10살짜리 손자녀석 말대
로 내일은 별이 10개 붙은 호텔, 서울 집을 향하여 출발한다. 귀국 전날 방문한 괴테하
우스 진열장에는 푸른 은행잎이 깔려있었다.괴테는 은행잎을 좋아하며 이렇게 말 했다
고 하는데 독일이 분열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것을 예언을 한것인지? 부부의 모습을
그린것인지? 귀국후 우리의 현실도 연상되는바 있어 괴테의 독백으로 잡문을 마무리
코저한다. ”하나가 둘로 나누어진것인가? 둘이 모여 하나가 된것인가? “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