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9~11 / 정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요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9절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그들이 전에는 말씀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누구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양심에 돌을 던져서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이 무디어진 그들의 양심을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사람의 양심은 문화에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에는 자위행위만 해도 엄청난 가책을 느꼈습니다. 남녀 간에 성관계를 맺은 자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성 개방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혼전 순결을 범하는 자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2009년에는 혼인 빙자 간음죄가 위헌이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2010년은 간통죄가 폐지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혼전 관계를 갖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합니다. 순결을 지켜야 하는 대표적인 말씀이 요셉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을 때 창세기 39장 9절에 내가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라고 한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는 간음죄는 몸 안에 짓는 죄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죄를 발견하자 어른에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들수록 더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씩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면 다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죄를 깨달을 때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10절 예수님은 사람들의 정죄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죄의식을 느끼는 데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죄는 사람 앞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를 지옥 불에 집어넣습니다. 다윗은 내가 하나님께만 죄를 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해야 깊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11절 결국은 모든 사람이 떠나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 없는 분이시므로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간음죄를 지은 자를 돌로 치라고 구약에서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은 여자에게 내가 너에게 사형을 선고하노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죄를 무서워하여 다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벌해야 악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자격이 없어서 정죄를 못 하지만 주님은 자격이 있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이 이렇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여인을 대신하여 정죄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받으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끄럽게 옷을 발가벗기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사랑하여서 여인 대신 죽으셨습니다.
아무 죄 없는 하나님이 왜 그 수치와 모욕을 당해야 합니까?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이 왜 그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여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내면 깊은 죄의식에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회개하고 믿음으로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간음죄, 살인죄,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런 죄 사함을 받고 행복하여 시편을 기록하였습니다. 시편 32편 1절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요즘에 어려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은 사람들 있습니다. 깊은 수치를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 여자가 잡혀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은혜입니다. 죄를 드러내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 앞에 드러내고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죄에 대해서 사회적인 책임도 없어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지만,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면 네 배, 다섯 배로 배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어서 피해를 주었다면 그 피해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윗도 죄를 짓고 나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자녀들 사이에 강간과 살인이 일어나고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것은 다윗을 사랑하여 그 내면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의 열매를 맺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훈련하십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을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새 삶을 살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용서는 은혜이지만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짓는 습관이 있습니다. 연약한 육신이 있습니다. 죄를 유혹하는 환경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세력에서 자유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죄를 다시 짓지 않을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는 나를 위해서 희생하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죄를 지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연약하여 다시 죄를 지을 수는 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시 사랑으로 감당하여 줍니다.
그러나 고의로 죄를 범하면 다시 용서하여 주지 않으십니다.
둘째, 거룩하게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다시 짓지 않으려면 매일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다 보면 자꾸 한계에 빠집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힘으로 탐심을 없애지 못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나의 힘으로 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정욕의 죄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분명한 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크신 은혜를 받은 우리가 다시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가운데 우리가 다시는 죄를 범치 않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