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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용례 : 全面念待機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 - 全面念待機
앞으로 혹은 全체적으로(pari-) 對面(-mukhaṃ) 할 / 하고 있는 / 한
(대상/방법/결과에 등에 대한) 기억(念, satiṃ)을
확고하게 確立/近立/待機하고 나서(upaṭṭhapetvā).
240) 원어는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이다. 이것은 수행에 관계된 중요한 구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parimukha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이다. 먼저 접두어 pari는 '주위에, 철저히'라는 뜻이 기본이고 mukha는 '얼굴'이라는 뜻으로도 '입'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것을 알고 주석서를 살펴보자.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명상주제(kammaṭṭhāna)를 대면하여(abhimukhaṃ) 마음챙김을 확립한 뒤 혹은 입(얼굴)의 근처에(mukhasamīpe) [마음챙김을] 둔 뒤라는 뜻이다. 그래서 위방가에서는 '이 마음챙김은 확립되었다. 코끝이나 입(얼굴)의 표상에 잘 확립되었다. 그래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 뒤라고 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혹은 pari(주위에)라는 것은 파지(pariggaha, 파악, 거머쥠)의 뜻이다. 얼굴(입)이란 출구(niyyāna, 벗어남)라는 뜻이다. 마음챙김이란 확립(upaṭṭhāna)의 뜻이다. 그래서 parimukhaṃ satiṃ이라고 하였다.”라고 『무애해도』에서 설하신 방법으로 그 뜻을 알아야한다. 이제 요약하면 '파지하여 출구(벗어남)가 되는 마음챙김을 만든 뒤'라는 말이다.” (DA.i.210~211)
한편 복주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이것은 대상(ārammmaṇa)을 파지(pariggaha, 파악)하는 방법이다. pari(주위에)라는 것은 파지의 뜻이다. 얼굴(입)이란 출구의 뜻이며 반대가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남의 뜻이다. 그러므로 파지된(pariggahita) 출구라고 [불리는], 모든 곳에서 혼란스러움이 없고 혼란스러움이 제거된 마음챙김을 만든 뒤, 즉 최상의 마음챙김과 영민함(sati-nepakka)을 확립한 뒤라는 뜻이다.(DAȚ.i.335)
889)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는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 따르면 parimukhaṃ을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 번째는 abhimukhaṃ(향하다)의 뜻으로 '명상주제를 향하여(kammaṭṭhāna-abhimukhaṃ)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나서'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입(얼굴) 주위에(mukha-samīpe)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나서'라는 말이다.(MA.ii. 216)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위방가』(分別論)와 『무애해도』를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계속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위방가』는 말한다. “이 마음챙김은 확립되었다. 코끝이나 입(얼굴)의 표상에 잘 확립되었다. 그래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 뒤라고 하였다.”(Vbh.252)
다시 『무애해도』는 말한다. parimukhaṃ satiṃ에서 접두어 pari는 철저히 파악한다는 뜻(pariggah-aṭṭha)이고, mukhaṃ은 출구의 뜻(niyyānattha)이고, sati는 확립의 뜻(upaṭṭhān-attha)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요약(saṅkhep)하면, '철저히 파악하여 [반대편의 법인 잊어버림(muttha-sati)으로부터의] 출구인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나서(pari-ggahita-niyyāna-satiṃ katvā)'라는 뜻이다.”(MA.ii.216)
131)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는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를 옮긴 것이다. 『위방가』는 “이 마음챙김은 코끝이나 입의 표상에(nāsikagge vā mukhanimitte vā) 확립되고 잘 확립되었다(upaṭṭhitā hoti supaṭṭhitā)고 해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라고 한 것이다.”(Vbh.252)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위방가 주석서』는 “입의 표상(mukha-nimitta)이란 윗입술의 가운데 부분(uttar-oṭṭhassa vemajjha-ppadeso)이라고 봐야 하나니, 즉 코의 바람(nāsika-vāta)이 닿는(paṭihaññati) 곳을 말한다.”(VbhA.368)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전면(全面 혹은 前面)에(parimukhaṃ)'는 구체적으로 코끝에나, 숨이 닿는 윗입술의 중간부분에 혹은 인중(人中) 즉 코의 밑과 윗 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진 곳에라는 뜻이다.
(M32)
idha, sāriputta, bhikkhu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 na tāvāhaṃ imaṃ pallaṅkaṃ bhindissāmi yāva me nā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issatī ’ti.
그는 ' 취착 없이 내 마음이 번뇌에서 해탈할 때까지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라. '라고 결심한다.
<*sati의 내용이 ' ' 이다. '결심'이라고 번역될만한 단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M91)
so pāde pakkhālet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so neva attabyābādhāya ceteti, na parabyābādhāya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 ceteti;
attahitaparahitaubhayahitasabbalokahitameva
so bhavaṃ gotamo cintento nisinno hoti.
그분은 발을 씻고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앉습니다.
그분은 결코 자신을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다를 해 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님은 자신의 이로움과 남의 이로움과 둘 다의 이로움과
온 세상의 이로움을 생각하면서 앉아 있습니다.
(A6:28)
“na kho, āvuso, so samayo manobhāvanīyassa bhikkhuno dassanāya upasaṅkamituṃ.
yasmiṃ, āvuso, samaye manobhāvanīyo bhikkhu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pāde pakkhāletvā nisinno ho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가 탁발하여 공양을 마친 뒤 발을 씻고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다가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cārittakilamathopissa tasmiṃ samaye appaṭippassaddho hoti,
bhattakilamathopissa tasmiṃ samaye appaṭippassaddho hoti.
tasmā so asamayo manobhāvanīyassa bhikkhuno dassanāya upasaṅkamituṃ.
걸어서 나른한데다 아직 그 시간에는 완전히 고요해지지 않았고,
식곤증으로도 나른한데다 아직 그 시간에는 완전히 고요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다가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na kho, āvuso, so samayo manobhāvanīyassa bhikkhuno dassanāya upasaṅkamituṃ.
yasmiṃ, āvuso, samaye manobhāvanīyo bhikkhu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vihārapacchāyāyaṃ nisinno ho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가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승원의 그늘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 주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다가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yadevassa divā samādhinimittaṃ manasikataṃ hoti tadevassa tasmiṃ samaye samudācarati.
tasmā so asamayo manobhāvanīyassa bhikkhuno dassanāya upasaṅkamituṃ.
그 시간에는 그가 낮동안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던 삼매의 표상이 아직 그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다가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na kho, āvuso, so samayo manobhāvanīyassa bhikkhuno dassanāya upasaṅkamituṃ.
yasmiṃ, āvuso, samaye manobhāvanīyo bhikkhu rattiyā paccūsasamayaṃ paccuṭṭhāya nisinno ho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 그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다가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ojaṭṭhāyissa tasmiṃ samaye kāyo hoti phāsussa hoti buddhānaṃ sāsanaṃ manasi kātuṃ.
tasmā so asamayo manobhāvanīyassa bhikkhuno dassanāya upasaṅkamitun”ti.
그 시간에는 그의 몸이 기력이 충만하여
부처님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기에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다가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M62) <*세존은 5온에 대한 말씀 - 사리뿟따 존자는 호흡념>
“rūpameva nu kho, bhagavā, rūpameva nu kho, sugatā”ti?
“rūpampi, rāhula, vedanāpi, rāhula, saññāpi, rāhula, saṅkhārāpi, rāhula, viññāṇampi, rāhulā”ti.
“오직 물질만 그러합니까, 세존이시여? 오직 물질만 그러합니까, 선서시여?”
“라훌라여, 물질도 그러하고, 느낌도 그러하고, 인식도 그러하고,
심리현상들도 그러하고, 알음알이도 그러하다.”
atha kho āyasmā rāhulo
“ko najja bhagavatā sammukhā ovādena ovadito gāmaṃ piṇḍāya pavisissatī”ti tato paṭinivattitvā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īd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러자 라훌라 존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누가 세존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오늘 마을로 탁발을 가겠는가?”
그래서 그는 되돌아와서 어떤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았다.
addasā kho āyasmā sāriputto āyasmantaṃ rāhulaṃ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innaṃ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disvāna āyasmantaṃ rāhulaṃ āmantesi —
사리뿟따 존자는 라훌라 존자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를 보고 라훌라 존자에게 말했다.
“ānāpānassati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ānāpānassati, rāhula, 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ti.
라훌라여,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라훌라여,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실로 큰 결과와 큰 공덕이 있다.
(A3:63)
so yadeva tattha honti tiṇāni vā paṇṇāni vā tāni ekajjhaṃ saṅgharitvā nisīdām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나는 [앉기 위해] 풀이나 낙엽을 한곳에 모아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ām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m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나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2선(二禪)을 … 제3선(三禪)을 …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caṅkamāmi, dibbo me eso tasmiṃ samaye caṅkamo hoti.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tiṭṭhāmi, dibbaṃ me etaṃ tasmiṃ samaye ṭhānaṃ hoti.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nisīdāmi, dibbaṃ me etaṃ tasmiṃ samaye āsanaṃ hoti.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seyyaṃ kappemi,
dibbaṃ me etaṃ tasmiṃ samaye uccāsayanamahāsayanaṃ hoti.
idaṃ kho, brāhmaṇa, dibbaṃ uccāsayanamahāsayanaṃ,
yassāhaṃ etarahi nikāmalābhī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ti.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경행을 하면 그때 나의 경행은 천상의 경행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서있다면 그때 나의 서있음은 천상의 서있음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앉는다면 그때 나의 앉음은 천상의 앉음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눕는다면 그때 나의 누움은 천상의 누움이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천상의 넓고 높은 침상으로서 내가 지금 바로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다.
so yadeva tattha honti tiṇāni vā paṇṇāni vā tāni ekajjhaṃ saṅgharitvā nisīdām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나는 [앉기 위해] 풀이나 낙엽을 한곳에 모아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so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āmi,
tathā dutiyaṃ, tathā tatiyaṃ, tathā catutthaṃ,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hena pharitvā viharāmi.
karuṇāsahagatena cetasā ... pe ... muditāsahagatena cetasā ... pe ...
upekkh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āmi,
tathā dutiyaṃ, tathā tatiyaṃ, tathā catutthaṃ ,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upekkh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hena pharitvā viharāmi.
나는 자애[慈]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나는 연민[悲]이 함께한 마음으로 … 더불어 기뻐함[喜]이 함께한 마음으로 …
평온[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caṅkamāmi, brahmā me eso tasmiṃ samaye caṅkamo hoti.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tiṭṭhāmi ... pe ... nisīdāmi ... pe ...
seyyaṃ kappemi, brahmaṃ me etaṃ tasmiṃ samaye uccāsayanamahāsayanaṃ hoti.
idaṃ kho, brāhmaṇa, brahmaṃ uccāsayanamahāsayanaṃ,
yassāhaṃ etarahi nikāmalābhī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ti.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경행을 하면 그때 나의 경행은 범천의 경행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서있다면 그때 나의 서있음은 범천의 서있음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앉는다면 그때 나의 앉음은 범천의 앉음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눕는다면 그때 나의 누움은 범천의 누움이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범천의 넓고 높은 침상으로서 내가 지금 바로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다.
so yadeva tattha honti tiṇāni vā paṇṇāni vā tāni ekajjhaṃ saṅgharitvā nisīdām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나는 [앉기 위해] 풀이나 낙엽을 한곳에 모아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so evaṃ jānāmi —
‘rāgo me pahīno ucchinnamūlo tālāvatthukato anabhāvaṃkato āyatiṃ anuppādadhammo;
doso me pahīno ucchinnamūlo tālāvatthukato anabhāvaṅkato āyatiṃ anuppādadhammo;
moho me pahīno ucchinnamūlo tālāvatthukato anabhāvaṅkato āyatiṃ anuppādadhammo’.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caṅkamāmi, ariyo me eso tasmiṃ samaye caṅkamo hoti.
so ce ahaṃ, brāhmaṇa, evaṃbhūto tiṭṭhāmi ... pe ... nisīdāmi ... pe ...
seyyaṃ kappemi, ariyaṃ me etaṃ tasmiṃ samaye uccāsayanamahāsayanaṃ hoti.
idaṃ kho, brāhmaṇa, ariyaṃ uccāsayanamahāsayanaṃ,
yassāhaṃ etarahi nikāmalābhī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ti.
나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의 욕망은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다.
나의 성냄도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다.
나의 어리석음도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다.'라고.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경행을 하면 그때 나의 경행은 성자의 경행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서있다면 그때나의 서있음은 성자의 서있음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앉는다면 그때 나의 앉음은 성자의 앉음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상태로 만약 눕는다면 그때 나의 누움은 성자의 누움이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성자의 넓고 높은 침상으로서 내가 지금 바로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다.
(A4:36)
atha kho bhagavā maggā okkamma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īd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2. 그때 세존께서는 길에서 벗어나서 어떤 나무 아래에 [가셔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으셨다.
atha kho doṇo brāhmaṇo bhagavato padāni anugacchanto addasa
bhagavantaṃ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innaṃ
pāsādikaṃ pasādanīyaṃ
santindriyaṃ santamānasaṃ
uttamadamathasamathamanuppattaṃ
dantaṃ guttaṃ saṃyatindriyaṃ nāgaṃ.
그러자 도나 바라문은 세존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세존께서 어떤 나무 아래 앉으셔서
편안하고 믿음을 주고
감각기능[根]들이 고요하고 마음도 고요하고
최상의 제어를 통한 [최상의] 사마타에 드신 것을 보았다.
마치 제어되었고 보호되었고 감각기능들이 고요한 용과 같았다.
(M140)
atha kho bhagavā kumbhakārāvesanaṃ pavisitvā ekamantaṃ tiṇasanthārakaṃ paññāpetvā nisīd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atha kho bhagavā bahudeva rattiṃ nisajjāya vītināmesi.
āyasmāpi kho pukkusāti bahudeva rattiṃ nisajjāya vītināmesi.
4. 그러자 세존께서는 도기공의 작업장에 들어가셔서 한 곁에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고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으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밤을 거의 앉아서 보내셨다. 북꾸사띠 존자도 밤을 거의 앉아서 보내었다.502)
502) “이처럼 세존께서도 존경 받고 순수한 혈통의 가문(asambhinna-mahā sammata-vaṃsa)에서 태어났고, 뿍꾸사띠 선남자도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태어났다. 세존께서도 강한 의지를 가지셨고(abhinīhāra-sampanna), 선남자도 강한 의지를 가졌다. 세존께서도 왕국을 버리고 출가하셨고, 선남자도 그리하였다. 세존께서도 황금색의 피부(suvaṇṇa-vaṇṇa)를 가지셨고, 선남자도 그와 같았다. 세존께서도 증득을 얻으셨고(samāpatti-labhi), 선남자도 그와 같았다. 이처럼 두 분 모두 끄샤뜨리야 출신이고, 두 분 모두 강한 의지를 가졌고, 두 분 모두 왕국을 버리고 출가했고, 두 분 모두 황금색 피부를 가졌고, 두 분 모두 증득을 얻어 도기공의 집(kumbha-kāra-sāle)에 와서 앉아있었다.
이 두 사람에 의해 도공의 집은 아주 빛났다. 그중에서 세존께서는 '내가 45 요자나를 걸어서 왔으니 잠깐 자리에 누워 피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앉아서 과의 증득(phala-samāpatti)에 들어 머무셨고, 선남자도 '내가 192요자나를 걸어서 왔으니 잠시라도 누워서 피로를 물리치리라.'는 생각은 전혀 없이 앉아서 들숨날숨을 대상으로 제4선에 들어 머물렀다(ānāpāna-catuttha-jjhānaṃ samāpajji), 이것을 두고 '밤을 거의 앉아서 보냈다.'고 한 것이다.”(MA.v.47~48)
(S7:10)
tena kho pana samayena aññatarassa bhāradvājagottassa brāhmaṇassa
catuddasa balībaddā naṭṭhā honti.
atha kho bhāradvājagotto brāhmaṇo te balībadde gavesanto yena so vanasaṇḍ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addasa bhagavantaṃ tasmiṃ vanasaṇḍe nisinnaṃ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 무렵 어떤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이 열네 마리의 황소를 잃어버렸다.
그러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 그 황소들을 찾아서 밀림으로 들어갔다.
가서는 세존께서 그 밀림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na hi mayhaṃ brāhmaṇa, balībaddā catuddasa.
ajjasaṭṭhiṃ na dissanti, tenāhaṃ brāhmaṇā sukhī.
참으로 나에게는 열네 마리의 황소가 없도다.
오늘이 벌써 엿새째인데 보이지 않으니 그래서 나야말로 행복하도다.
(S7:17)
“ke nu kammantā karīyanti, bhikkhu sālavane tava.
yadekako araññasmiṃ, ratiṃ vindati gotamo”ti.
“비구여, 이 살라 숲에서 그대 어떤 일을 하십니까?
혼자 이 밀림에서 무슨 기쁨 얻습니까?”
“na me vanasmiṃ karaṇīyamatthi,
ucchinnamūlaṃ me vanaṃ visūkaṃ.
svāhaṃ vane nibbanatho visallo,
eko rame aratiṃ vippahāyā”ti.
숲에서 해야 할 일 나에게는 없나니
뿌리 잘린 나의 숲은 메말라버렸도다.
숲이 없어지고 쇠살이 없어지고
따분함을 제거한 그러한 나는
숲에서 홀로 기뻐하도다.
(S7:18)
“yā kāci kaṅkhā abhinandanā vā,
anekadhātūsu puthū sadāsitā.
aññāṇamūlappabhavā pajappitā,
sabbā mayā byantikatā samūlikā.
“어떤 소원 가졌든 어떤 기쁨 가졌든
여러 가지 요소들에 범부 항상 집착하네.
무지를 뿌리로 소망이 생기나니728)
그 모두를 끝장내고 나는 뿌리 뽑았도다. {700}
728) 주석서는 '소원(kaṅkhā)'과 '기쁨(abhinandanā)'과 '소망(pajappitā)'은 모두 갈애(taṇhā)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무지를 뿌리로 함(aññāṇa-mūla)'이란 무명(avijjā)을 뿌리로 함을 말한다.(SA.i.265)
[* [0320a21] 爾時。世尊說偈答言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
若欲種種求 諸界多種著
彼一切皆是 愚癡之根本
괴롭게 여러 가지 구하려 하면
모든 경계에 갖가지 집착이 생긴다.
저 일체의 모든 것들은
바로 어리석음의 근본이니라.
Netti
‘‘Āsā ca pihā abhinandanā ca,
anekadhātūsu sarā patiṭṭhitā;
Aññāṇamūlappabhavā pajappitā,
sabbā mayā byantikatā samūlikā’’ti.
기대와 열망 그리고 기쁨,
다수의 계(界)에 확립된 기억들,
앎의 없음을 뿌리로 하여 생겨난 갈망들,
나는 이 모든 것을 뿌리 째 끝내버렸다.]
“svāhaṃ akaṅkho asito anūpayo,
sabbesu dhammesu visuddhadassano.
pappuyya sambodhimanuttaraṃ sivaṃ,
jhāyāmahaṃ brahma raho visārado”ti.
그런 나는 소망 없고 집착 없고 속박 없어
제법(諸法)에 대한 나의 봄[見]은 청정하게 되었도다.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 저 상서로움을 얻어서
바라문이여, 담대하게 나는 홀로 참선하노라.
(A4:198) (M51) (A10:99) (D2) (D10)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vivittaṃ senāsanaṃ bhajat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ṃ.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so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so abhijjhaṃ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ṃ parisodheti.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ṃ parisodheti.
thinamiddhaṃ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ṃ parisodheti.
uddhaccakukkuccaṃ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ṃ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ṃ parisodheti.
vicikicchaṃ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ṃ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ṃ parisodheti.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A5:75) (A5:76) (A9:40) (D25) (M27) (M38) (M51) (M94) (M101) (M107) (M112)
(M118) (M119) (A10:60) (D22) (M10) 제54주제(S54) 들숨날숨 상윳따
idhānanda,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첫댓글
4부 니까야에 나타나는 parimukhaṃ 의 용례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고로, 아래는 제가 '전면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검색하다가 본 글인데, 참고로 올려봅니다.
https://blog.naver.com/k3a3n3g3/222390462718
위의 글에서 일부를 인용하면:
1. 니까야에 자주 등장하는 정형구인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고(parimukham satim upatthapetva)"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1) 어떤 명상주제이든지 그 명상주제(주요한 대상)에 대하여 마음챙김을 확고히 한다. : <청정도론>, 마하시 사야도, 아잔 빤냐와로
(2) 코끝 등(호흡이 들어가고 나가면서 닿는 부분)에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한다. : <위방가>, 파욱 사야도, 고엔카
(3) 아는 마음을 아는 마음챙김이 확립되었을 때, 대상이 있는 위치로 마음을 보내지 않아도 전면에서 아는 것처럼 대상들을 알게 된다. : 떼자니야 사야도, 활성 스님
(4) 다른 무엇보다 마음챙김을 우선에 놓는다(마음을 일깨우고 다잡는다). : 아잔 브람
[출처] 빠리무캉(parimukham)에 대한 다양한 해석|작성자 부유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에 대한 설명이 여러 가지이라는 것은
사띠에 대한 이해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먼저 이 정형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이후의 실참수행에 대한 방향도 잘 정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싶어
본문을 다시 올린 것입니다.
최소한 4부 니까야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용례를 올려 두었습니다.
앞뒤 문맥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경문을 제외하고
문맥상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를
'코' 혹은 '얼굴 주위'라고 해석하면 본문과 배치되는 경문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전면'에서 자신을 지켜본다는 의미는 아예 아니지 싶습니다.
그래서 '얼굴 주위에 대한(/주위로) 알아차림을 확립하고서'라고 이해하면 아마도 최악의 번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각자 본인이 알고 있거나 이해하고 있는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에 대한 번역을
위 본문의 경문에 일일이 대입해 보시고 문맥이 맞으면 다행이고 맞지 않으면..... 재 검토 해보시길 권합니다.
이미 <직접> 경험했거나 (수행 방법에 대해 <간접>) 배운 내용에 대한 기억이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혹은 일부 수행했거나 수행이 완성한 내용도 기억되어 있다면)
그러면 그 내용에 대한 기억을 확립하고서(가까이 대기시켜 놓고서) =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즉 지금 하고자 하는 그 무엇에 대한 -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 기억하고 있는대로 대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대면하고 있는 내용도 기억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당초 하고자 하는 그대로 대면하고 있지 않더라고 그 동안 있었던 사건을 기억하게 되면)
그 대면했던 내용을 그 이후에 스승님이나 주변 동료 수행자에게 인터뷰하게 되지 싶습니다.
간단하게 의견을 드리면
'뭘, 왜, 어떻게, 할지 잘 기억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