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국사봉으로
기다리던 비가 흡족히 내린 사월 끝자락 목요일은 행선지를 멀게 잡아 길을 나섰다. 새벽녘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가 창원대학에서 진해 용원으로 가는 757번 좌석버스를 탔다. 찻길 막히지 않는 시간대라 시내를 관통한 버스는 창원대로 남산터미널에서 안민터널을 빠르게 지나 진해로 갔다. 진해구청에서 대발령을 넘어 웅천 남문 아파트단지를 둘러 용원까지 한 시간 걸렸다.
용원사거리에서 부산경남 경제자유구역청으로 나가 부산 하단에서 거제 연초로 운행하는 2000번 버스를 탔다. 지난 이월까지 내 교직에서 마지막 근무지였던 거제를 사적 목적으로 방문하는 첫 사례였다. 가덕도에서 침매터널과 연육교를 거쳐 장목에서 외포 연안을 따라 옥포에서 연초로 갔다. 연초삼거리에서 김밥과 생수를 마련 국사봉 등정을 위해 들길을 거쳐 야부마을을 지났다.
와야봉 산기슭을 돌아 국사봉 산허리 임도를 걸을 셈이다. 내가 가려는 곳은 큰 국사봉에서 작은 국사봉으로 내려서는 잘록한 산마루다. 거기는 곰취가 자생하는데 지난 3년간 연사 와실에 머물면서 현지인들도 모르는 청정지역 곰취 군락지를 찾아내 잎을 채집해 곡차 안주와 찬거리로 삼았더랬다. 이번에는 거제를 떠나와도 그곳에 자라는 곰취를 마련하려고 일부러 가는 길이었다.
와야봉 등산로에서 국사봉 산허리 임도와 연결되는 쉼터에서 이르긴 했지만 김밥을 비웠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라 아침밥을 일찍 먹었으니 점심도 빠른 편이다. 퇴직 이후에는 더 그런 경향이다. 그와 함께 배낭의 내용물을 미리 비워두려는 의도도 있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임도를 따라 걸으니 국사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왔는데 산비탈로 오르지 않고 임도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임도 길섶에는 등골나물이 더러 보였다. 엷은 자주색을 띤 잎줄기는 보드라울 때 뜯으면 산나물이 되는데 거들떠보질 않았다. 국사봉 산마루로 올라 따려는 곰취에 비교하면 하품 산나물이라 굳이 배낭을 비좁게 할 일은 없었다. 수종 갱신 조림지를 벗어난 숲에는 붉은 병꽃이 피어 화사했다. 이맘때 피는 병꽃나무의 꽃은 꽃잎의 형상이 호리병처럼 생겼다고 병꽃나무라 불린다.
연초삼거리에서 들길을 지나 와와봉 기슭 쉼터까지 한 시간 걸렸고, 쉼터에서 다시 한 시간 걸려 수월에서 작은 국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이르렀다. 암반더미 국사봉에서 서북쪽으로 얼마간 내려서면 작은 국사봉이 나왔다. 우리나라 산 이름에서 국사봉은 어디나 흔한데 정상부 바위로 그렇게 불린다. 조정의 신하가 관복을 차려 입고 임금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처럼 보여서다.
지난날 내가 거제에 머물면서 찾아낸 곰취 군락지는 작은 국사봉 언저리였다. 등산로를 벗어나 개척 산행을 감행해 우거진 숲을 헤집고 오르니 자손이 관리하는 무덤이 나왔다. 낭떠러지는 없어도 바위더미를 타고 넘어가는 수고로움은 감수하면서 곰취 자생지를 찾으니 쉽게 드러나질 않았다. 무성한 다래덩굴이 엉켜 자라고 재선충으로 고사목이 된 소나무가 쓰러져 뒹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국사봉 산기슭에는 곰취가 서너 군데 군락을 이루어 자랐다. 숲을 누빈 보람은 있어 곰취 자생지를 까까스로 찾아냈다. 곰취 잎은 고라니가 시식한 흔적이 없고 현지인들에게 간택 당하지 않아 온전했다. 올봄 심한 가뭄에 곰취는 생육이 부진하다가 엊그제 내린 비로 잎사귀가 생기를 띠고 바삐 자라려는 즈음이었다. 보드라운 곰취 잎을 한 장 한 장 따 모았다.
산자락을 더 누벼도 가장 넓었던 곰취 군락지는 끝내 찾지 못하고 지쳐 숲을 빠져 나왔다. 주작골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 수양마을에 이르러 칼국수로 소진된 열량을 채워 연초로 향했다. 들판을 지난 먼 산기슭에 내가 교직을 마무리 지은 학교가 보였다. 이런저런 스친 인연들이 있었다만 아무에게도 연락을 취하지 않고 귀가를 서둘러 2000번 버스를 타고 거가대교를 건너왔다. 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