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부치지 못한 편지’의 추억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유치하다며 외면했던 뻔한 유행가 가사들이 와닿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리도 잘 내 심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하고 탄식하게 되면 이미 중증이다. 사랑하고 아파하고 이별하는 노래들이 온통 내 얘기다. 이런 걸 감정이입이라고 하나.
그리하여 시쳇말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가며 편지를 쓴다. 편지는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그대의 동공(瞳孔) 속에 깃든 나의 실존…” 운운하며 자신도 이해 못할 시를 괴발개발 그린다. 이런 편지는 가을에 쓰는 게 제격이다. 찬바람 이는 가을 어스름의 낙엽은 시심을 자극한다. 계절을 타는 사람들에게 가을은 실로 치명적이다. 그래서 최양숙은 노래했을 거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쓴 편지들이 제 갈 길을 찾아 가는 건 아니다. 연애와 실연과 짝사랑의 아픔을 밤 새 눈물로 찍어 쓴 편지는 아침에 찢겨지거나 서랍 속에 간직되기 일쑤였다. 가수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는 이를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 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부칠 수도 없어요, 눈물은 너무나 빨리 말라버리죠…”라고 노래했다. 돌이켜보면 유년과 청년기의 ‘부치지 못한 편지’의 추억은 아픔이되 아름다운 아픔이었다. 그래서 달콤하고 쌉싸래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 바보 노무현의 편지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 엊그제 펴낸 <내 마음속 대통령>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검찰에 소환되기 직전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 형식의 청원문을 썼다. 편지는 전직 대통령의 인간적 좌절과 비통함을 절절하게 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피의사실 누설과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결론을 말하는 것 등 검찰 수사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균형을 잃은 수사팀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실제로 보내지진 않았다. 아무 효과도 없을 것이라는 측근들의 만류를 노 전 대통령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편지 발송을 놓고 그는 또 얼마나 고뇌해야 했을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경향신문 <여적> <김철웅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