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의전으로 우고 차베스의 관 위에 칼 두 자루가 놓였다. 장례 참석자들은 칼 위에 손을 모은 채 차베스 만세를 외쳤다. 장례 주인인 차베스가 이루고자 한 세상 또한 두 자루였다.
그가 주도해 제정한 바 있는 볼리바리안 헌법에도 이는 잘 나타나 있다.
차베스는 남미해방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못 다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大남미 곧 Grand Colombia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남미국가연합 결성이나 남미은행은 그 과정의 산물이었다. 국내 주요 개혁임무를 차베스 정부는 Mission이라 명명했다. 의료, 교육, 주택, 소비재 공급 등 25개 분야에서 사업은 폭 넓게 전개되어 왔다.
Mission Barrio Adentro(‘마을 속으로’, 의료기반이 부족한 베네수엘라에 5만 명 이상 쿠바 의사들이 활동하는 대가로 기름 공급)에서 보듯 미시온들은 10여 년 동안 그랑컬럼비아 구상에 따른 조치들과 연계하여 작동했다.
언어와 종족, 식민지 해방과정을 공유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를 자원교류, 자주성을 기초로 한 지역통합과 연대의 방향으로 끌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민중과 석유는 차베스 권력과 볼리바리안 혁명의 ‘원유’였다. 차베스가 석유를 손에 쥔 건 ‘자본가 파업’ 덕분이었다.
출신 성분이 변변치 않은데다 하층 지지를 받는 그가 대통령에 뽑히자 자본가들이 공장을 세웠고 그 가운데는 국영석유회사 PDVSA도 들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이는 친미 사기업으로 전락해 있었다.
자본가의 지시를 뿌리치고 공장을 장악한 노동자들과 함께 그는 복귀를 거부한 10만 명 이상을 내쫓고 새 인력을 투입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 석유가 처음으로 국민에게 이익을 돌릴 수 있게 된 건 이 때부터였다.
이 석유는 차베스의 근육이자 동시에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에 필요한 비용, 라틴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여기에 의존해 온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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