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수호천사 기념일) 섭리에 내어 맡기기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린 질문이다. 매우 세속적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건 그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대답 때문이다.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제자들은 높고 큰 존재를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역으로 가장 작은 이를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느님을 참 모른다. 흔히 보는 그림에서처럼 하느님을 하얗고 긴 수염을 지닌 풍채 좋은 할아버지 정도로 알고 있는지 모른다. 화가 나면 천둥과 폭풍 속에서 세상에 벌을 내리는 그런 분이다. 하느님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우리보다 엄청 똑똑한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최고 최대의 그 끝, 우리 사고와 상상의 연장선 맨 끝에 계신 그런 분이 아니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늘나라는 더 좋은 나라 또는 가장 이상적인 나라 정도였던 거 같다. 스승님이 그런 나라를 세우시면 거기서 한 자리씩 차지할 거라고 예상했었나 보다. 정권이 바뀌면 장관들이 다 바뀌는 거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서로 선배 후배 따지며 길거리에서 다퉜을 거다.(루카 9,46)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상상하는 것조차도 하지 않는 게 우리 신앙을 순수하게 유지하는데 더 좋을 듯하다. 하느님은 잘 모르지만, 그분이 우리 구원을 위해 주신 계명을, 있는 힘을 다해 지킬 뿐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그런 세속적인 질문에 예수님은 답으로 어린이를 내세우셨다. 여기서 어린이는 맑고 순수하고 도덕적으로 투명한 존재가 아니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종속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다. 어린이는 낮추려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잘 모르고 낮고 작다. 그래서 언제나 질문하고, 도움을 구하고, 부모나 스승 뒤에 숨는다. 세속적으로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취약한 존재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취약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하늘나라는 그런 이들이 사는 나라다. 유치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완전히 종속되고,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이들이다.
독립적이고, 강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게 성공이라고 배운 우리에게 예수님 말씀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음을 인류가 알게 된 거처럼, 하느님에 대한 우리 생각과 하느님과 관계를 180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어린이가 돼야 한다. 그런데 세상살이를 어린이처럼 하면 안 된다. 제일 먼저 자신이 그 피해를 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웃에게도 피해를 주고 짐이 될 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야’ 한다.(마태 10,16) 세상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은 어린이처럼 완전히 의존적이어야겠다. 이 두 끝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게 하느님 섭리에 삶을 내어 맡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하느님이 내게 붙여 주신 수호천사가 내가 가는 곳마다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 줄 거다.
예수님, 유혹을 피하고 악에서 구해주십시오.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그 즉시 세상사에 빠져 온갖 걱정과 불안 속에서 희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제 한 기도 오늘 또 하고, 아까 뵈었는데 또 뵙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