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황톳길을 걸어
사월이 가는 마지막 날은 토요일이었다. 자연학교 학생에게는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어 토요일도 길을 나섰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 사는 꽃대감 친구가 가꾸는 꽃밭으로 가봤다. 친구는 꽃밭에서 유튜브로 내보낼 방송 소재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간밤 친구가 올린 매발톱꽃은 새벽에 시청했더랬다. 오늘은 일본에서 원예용 화초로 개발된 오공국화를 소재로 삼으려 했다.
며칠 전 우리 집에서 기르는 돈나무 화분을 친구네 꽃밭에 옮겨 놓았다. 나는 돈나무에게 여러 해 동안 분갈이를 해주지 않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연전 공직에서 은퇴 후 화초에 관심을 가져 웬만한 꽃집 주인이나 조경 전문가만큼 꽃의 생태나 재배 방법을 잘 알았다. 수천을 헤아리는 꽃대감TV 시청자들은 다음 방송은 무엇으로 내보낼 것인지 은근히 기다려지는 듯했다.
친구와 꽃밭에서 환담을 나누고 나는 나대로 일정이 있어 반송시장으로 나가 김밥을 마련했다. 원이대로의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가 불모산동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용호동에서 시청 광장을 돌아가니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모형 석탑에 장식된 오색 연등이 눈길을 끌었다. 버스가 남산터미널 환승장에 이르자 손님은 모두 내리고 나 혼자 물모산동 종점까지 타고 갔다.
불모산동 저수지 안쪽으로 들자 밤을 새운 태공은 낚싯대를 여러 개 펼쳐 놓고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낚시를 거들떠보질 않지만 민물에서나 바다에서나 태공의 인내심은 가히 인정해 줄만 했다. 갯버들이 자라는 저수지 가장자리는 참개구리들이 울어댔다. 예전에는 무논에서 우는 개구리소리를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 생태계 변화로 개구리 서식지가 줄어들었다.
용제봉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저수지로 모여드는 개울을 건너니 산지를 개간해 유실수를 심어둔 밭이 나왔다. 매실과 복숭아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섞인 과수원이었다. 농로가 끝난 곳에서 숲속으로 드니 불모산터널이 가까워 자동차들이 드나드는 소리가 붕붕거렸다. 얼마간 숲길을 오르니 T자로 걸쳐진 숲속 나들이 길이 나왔다. 대암산 약수터에서 용제봉 기슭을 거쳐 온 숲속 길이었다.
신록이 싱그러운 숲길이었다. 성주사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니 맞은편에서 오는 산행객들이 더러 보였다. 나를 뒤따라오는 이들도 있어 앞서 가도록 길을 비켜주기도 했다. 주말을 맞아 동창생이나 중년 부부가 함께 산행을 나선 경우도 있었다. 나처럼 단독 산행을 나선 이도 더러 보였다. 두 군데 계곡물은 엊그제 내린 비로 수량이 불어나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소리 내어 흘렀다.
불모산동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정상으로 향해 가는 갈림길을 앞둔 쉼터에 앉자 김밥을 비우며 잠시 쉬었다. 그때 한 무리 단체 산행객이 지나갔는데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짐작되었다. 코로나로 나들이에 제약을 받다가 이제 서서히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성주사 바깥 주차장을 지나 산문으로 드니 근래 일주문을 세우는 공사를 했다.
산문 들머리에는 봉축 연등이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음력 삼월 그믐이고 여드레 뒤가 사월 초파일이다. 절간 경내로 드니 코끼리와 곰의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코끼리는 부처님의 나라인 남방 인도를 상징하는 듯했고, 곰은 성주사 중건 설화와 연관이 있었다. 무염국사가 창건한 성주사가 한때 폐사가 되어 중건할 때 하룻밤 사이 곰이 목재를 날라주어 곰절로 불린다.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은 뒤 성주사 수원지 계곡으로 갔다. 숲속 나들이 길에는 근래 황토 곰 숲길이 지선으로 개설되어 있었다. 내보다 앞서 가던 두 여성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갔다. 나는 그들을 뒤따라 쉬엄쉬엄 황톳길을 걸어 산허리로 올라 안민고개로 가는 숲속 길과 합류했다. 약수터까지 가질 않고 중간에서 상수원 수원지로 내려가니 제 2안민터널 공사 현장이 나왔다. 22.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