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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자까임
출처 :
https://rollingstone.co.kr/modules/catalogue/cg_view.html?cc=1010&no=1973
칼럼 by 음악평론가 김영대
블랙핑크와 같은 그룹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은 걸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매우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지만, 아이돌 팬들에게는 ‘머글’이라 일컬어지는 일반 대중에게도 역시 비슷한 정도로 ‘유명한’ 아이돌로 각인된다. 그들의 음악은 그 어떤 다른 걸그룹과도 유사하지 않은 시그니처 사운드를 갖고 있지만(저 유명한 “Black Pink in your area!”로 시작되는) 그것들이 늘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더없이 대중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되어 있어 설득적이다. 블랙핑크의 음악은 동시대의 현대인으로서 가지는 정서 외에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치 않으며, 그 미학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한 그 어떤 독특한 취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케이팝이 그렇게 오랜 시간 추구해온 코즈모폴리턴한 미학의 궁극적 요체를 입하는 작업이기에.
그러고보니 벌써 3년이 흘렀다. 2019년 4월에 있었던, 코첼라 페스티벌에서의 한 시간 남짓한 퍼포먼스를 기억한다. 블랙핑크의 인기와 그 실체가 가장 화려하게 증명된, 그야말로 그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목격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 무대에서 나는 블랙핑크의 매력과 그들이 만드는 글로벌한 소구력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무대를 가득 메우는 이들의 장악력과 존재감은 소위 ‘아시안’ 걸그룹이라는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부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케이팝의 걸그룹이 예쁘고 매력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도attitude’가 결여되었다든지, 무대의 장악력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서구의 팝스타들과 비견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식의 편견은 적어도 블랙핑크의 무대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비주얼은 물론이요, 케이팝 뿐 아니라 미국의 수많은 현지 대중음악 팬들이 함께 모인 코첼라 페스티벌의 특수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결코 주눅들지 않는 대범함, 그리고 예의 거침없고 당당한 블핑만의 ‘스왜거’를 과시했다. 케이팝은 마침내 세계 시장 어디에 내놓아도 그 현대성이 빛나는 최첨단의 걸그룹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블랙핑크의 가장 큰 매력인, 소위 ‘걸 크러시’ 혹은 ‘배드애스badass’라 불리는 태도와 이미지가 어느 날 우연히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 걸그룹 TLC에서부터 비롯된, 힙합과 R&B에 기반을 둔 어반 스타일의 걸그룹은 YG의 수장 양현석의 오랜 숙원이었고, 그는 스위티SWi.T라는 프로토타입과 2NE1이라는 전설적인 걸그룹의 성공을 토대로 블랙핑크라는 하나의 완성판을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블랙핑크는 선배그룹인 2NE1과 음악적인 DNA를 공유하고 있으나 동시에 YG의 검증된 노하우를 통해 현재에 걸맞은 그룹으로 업데이트되었다. 프로듀서 테디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힙합 사운드와 로킹한 댄스 트랙이라는 공식은 유사하게 유지되었으나, 이는 훨씬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업데이트되었다. EDM보다는 힙합이나 라틴 계열의 편곡에 치중한 것도 트렌드의 교체에 따른 중요한 차이일 것이다.
이미지의 측면에서도 블랙핑크가 구사할 수 있는 변신과 표현의 폭은 조금 더 확대되었다. 장난스럽고 반항아적인 악동의 이미지가 아닌, 시작부터 모든 걸 다 갖춘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걸그룹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힙합의 전유물과 같았던 스왜거와 플렉스가 팝음악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 현재, 주류 팝 시장은 온갖 다양한 매력을 카멜레온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전방위 여성 아티스트를 요구하고 있다. 블랙핑크의 이미지, 외모, 음악, 그리고 태도는 케이팝 시장의 현재를 고스란히 드러냄과 동시에 미국 및 라틴 팝 시장이 선호하는 케이팝의 모델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들이 케이팝 최고의 ‘글로벌’ 스타가 된 것은 단순히 케이팝 시장이 확대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블랙핑크의 커리어에서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이들이 비교적 적은 수의 곡을 발매하면서 철저한 싱글 위주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블랙핑크는 데뷔 후 현재까지 라이브 앨범을 제외하면 단 한 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을 내놓았고, 이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라이벌 걸그룹들에 비해서 훨씬 적은 아웃풋이다. 이는 그들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Light Up The Sky>에서 프로듀서 테디가 밝힌 바처럼 다분히 의도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음악적으로 블랙핑크가 추구하는 방향은 언제나 명확하고 예측가능한 편이다. 새로운 싱글들은 저마다 지향하는 장르나 사운드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느정도 일정한 음악적 패턴을 보인다. 대중적인 아티스트로서 이같은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긴 하지만 아티스트로서 블랙핑크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는 양날의 검과 같은 리스크를 내재하고 있기도 한다. 물론 꾸준한 결과물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실패에 대한 확률을 최소화시키는 블랙핑크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이들은 불완전하지만 성장하는 신인의 서사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팝 스타의 이미지를 갖고 데뷔했고, 적은수의 히트 싱글만으로도 효과적인 커리어를 구축하며 스타로서 이미지의 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 그룹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노래를 불러야 마땅하다.
‘컬렉터스 에디션’ 명품을 바라보는것과 같은 기분을 자아내는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은 종종 아티스트로서 블랙핑크의 재능을 종종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YG의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기획 능력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중요한 것은 멤버들이 그 같은 기획 그리고 데뷔와 동시에 만들어진 명성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재능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단언하건대 블랙핑크는 YG가 내세우고자하는 음악과 무대를 가장 이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재능들로 이뤄져 있다.
그중에서도 그룹이 가진 파워풀한 이미지와 거침없는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제니의 위상은 여러번 강조해 지나침이 없다. 제니는 케이팝의 성공과 그 글래머러스함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데뷔와 동시에 그녀에게 실패란 존재하지 않았고,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으며, 솔로작인 <SOLO>를 통해 가장 먼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 성공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매혹적인 외모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중저음의 탄력적인 보이스를 통해 그녀는 주 소임인 랩은 물론 보컬리스트로서도 그룹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블랙핑크라는 팀이 가진 대표적인 정체성이 도시적이며 서늘한 사운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라면 그 핵심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멤버가 제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어떤 부정적인 기운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리사의 경쾌한 에너지는 블랙핑크가 가진 가장 중요한 개성 중 하나다. 압도적인 신체적 매력과 이국적인 외모에서 풍기는 독특한 존재감은 래퍼로서 그의 능력과 함께 솔로 아티스트로서 그의 정체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뚜두뚜두>나 <How You Like That>에서 들리는 그녀의 랩은 그 플로우가 극히 세련되었을 뿐 아니라 발음에 있어서도 외국 멤버로서의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할 만큼 자연스럽다. 퍼포머로서 리사의 능력은 늘 각별하다. 블랙핑크의 명곡들과 솔로곡 <LALISA>에서 공히 확인되듯, 그는 거리street와 무대stage 어느 쪽에도 능히 대응 가능한 다채로운 테크닉을 갖고 있는데, 넘쳐나는 여성 아이돌 댄서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수준이다. 그녀는 그룹을 떠나서도 그 매력과 존재감을 무대에 그대로 옮길 수 있는 흔치 않은 멤버다.
보컬 그룹으로서 블랙핑크는 종종 과소평가되곤 한다. 물론 이들이 케이팝 신의 가장 테크니컬한 보컬리스트들은 아니며, 그것이 그들 음악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케이팝의 전형성에 머무르지 않고 그룹을 서구의 팝 음악 사이에서도 위화감이 들지 않게 만드는 현대적인 보컬 능력을 갖고 있는 그룹이다.
로제는 ‘목소리’로서의 블랙핑크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이루는 멤버로 케이팝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목소리 중 한 명이다. 비성에 기반을 둔 독특한 발성과 음색, 팝의 다양한 장르에 대응할 수 있는 현대적인 창법, 유창한 영어발음 등은 그녀를 케이팝에서 가장 트렌디한 보컬리스트로 만들어준다. 그룹에서 그녀의 능력은 특정한 스타일의 음악들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지만 솔로 곡인 <On the Ground>와 <Gone>에서 그런 아쉬움은 일부 해소되었다. 그녀는 단지 블랙핑크의 메인보컬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솔로가수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블랙핑크라는 ‘장르’를 떠나서도 충분한 매력을 갖춘.
또 하나의 목소리, 블랙핑크의 리드보컬인 지수는 흔히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비주얼’ 멤버로도 불린다. 화려함 그 자체인 이 그룹에서 그런 평가는 단순한 외모에 대한 평가 그 이상의 의미일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멤버다. 결코 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컬리스트로서, 댄서로서 그녀는 그룹에서 가장 빼어난 멤버는 아니지만 그만큼 눈에띄게 성장해 왔다. 그녀의 독특한 저역대의 음색은 장르와 상관없이 어느 곡에서든 중요한 스토리의 전개를 맡으며, 점점 그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가 없는 블핑의 음악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각기 다른 ‘센’ 캐릭터들의 경연장과 같은 이 그룹에서 지수는 그 화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룹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부여한다. 지수의 존재로 인해 블랙핑크는 전혀 다른 이미지와 성격을 가진 그룹이 된다.
케이팝은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그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블랙핑크 역시 그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그룹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교감에 의한 교감과 소통이라는 음악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한 그 결과 역시 언제나 늘 원하는 방식대로 조합되어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 는 각자의 영역에서 케이팝 산업의 정점을 대표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단순히 재능이나 기획사의 노하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에서 비롯된다. 케이팝의 새로운 세대가 열린 지금, 수많은 재능있는 그룹들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블랙핑크와 같은 걸그룹을 당분간 또 만나기는 그다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매력은 쉽게 복제될 수 없는 것이기에.
첫댓글 진짜 레전드긴한듯 블핑.. 제니 로제 리사 지수가 한 그룹이라는게 이제 대박인듯… 저 넷이 한 무대에 선다는게 신기해 너무 한명한먕 탑스타라
최근에 우연히 처음으로 유튜브에서 봤는데 흡입력 장난 아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