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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버터프레첼맛 쿠키
출처 : 여성시대 버터프레첼맛 쿠키
여기 칼리프 브라우더라는 한 흑인 학생이 있어
그리고 일주일 전 흑인 2명에게 책가방을 빼앗겼다는
멕시코 노동자의 911 신고가 들어왔었어
당시 16살이던 칼리프는 친구와 함께
파티에 놀러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책가방 절도범으로 지목 돼 구치소로 끌려가게 됐어
7시 47분에 시작해 7시 50분에 끝난 취조
칼리프는 자기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 3분으로 인해 칼리프의 인생은 망가져 버렸어
미국 뉴욕에서는 16살 부턴 죄를 저지렀을 경우
성인과 똑같은 형량을 받게 되거든
그래서 고작 책가방 절도혐의로
2급 강도혐의 중범죄 형에 처한거야
보석금 3000달러(한화 약 350만원)을 내면
불구속 수사가 진행 될 수 있었지만
미국에서도 가장 빈곤한 동네로 꼽히는
브롱크스에서 평생을 살던 칼리프의 가족은
그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어
칼리프의 어머니는 보석보증금인 900달러(100만원)를 마련하기 위해 온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웃들에게 돈을 빌렸고 그게 꼬박 2주가 걸렸어
그 사이 칼리프의 보석은 보류 되었고
칼리프는 교도소에 구속된 상태로 수사를 받아야 했어
그래서 칼리프는
악명 높은 라이커스 교도소에 수감됐어
(이 섬 전체가 교도소야)
168cm의 작은 체구인 16살 소년을
교도소로 내몰았을 때의 결과는?
뻔하지
칼리프는 교도소 내의 갱들의 표적이 됐어
의자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단 폭행을 당했고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했어
교도소내 전화로 가족들에게 전화라도 할라치면
칼리프의 얼굴에 침을 뱉었어
그렇게 칼리프는 집단 폭행으로 인해
끊임없이 교도소 이감을 했어
하부에서 상부로 상부에서 중심으로
계속해서 동을 바꿔가며 이감했고
이감이 될때마다 새로운 동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
교도관들은 도대체 뭘 했냐고?
그들도 똑같이 칼리프를 폭행했어
그리고 칼리프가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방관했어
그게 "교정 제도" 라면서 말야
하지만 칼리프는 계속해서 자신의 인권탄압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했고 끊임 없이 무죄를 주장했었어
그렇게 칼리프는
명령 불복종의 이유로 독방에 수감 됐어
UN에서 독방 수감 15일 이상은 고문이라고 명시했음에도
16살이던 칼리프가 처음 독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저 독방에서 연속 300일 수감이란 벌을 받았어
이쯤 되면 재판은 왜 안해? 라고 생각하는 여시들이 있을거야
놀랍게도 칼리프는 정식재판 판결 조차 없이
교도소에 3년 간 수감 됐었어
칼리프가 독방에서 벗어나 재판을 받으러 갈때마다
검사측의
증거가 준비 되지 않았다
검사가 휴가를 갔다
증인이 오지 않았다
증거를 보강하겠다 등등등의 이유로
무려 31 차례나 재판이 연기 되었고
한 두명도 아닌 9명의 판사를 만났으나
칼리프는 재판조차 받을 수 없었어
그냥 재판이 연기 되었으니 3개월 뒤 다시 오시오
라는 판사의 말만 되풀이 해서 들었을 뿐이야
(이 사진은 칼리프 사건은 6개월 간 맡았던 판사)
그리고 당시 검사가 칼리프에게
의도적으로 숨긴 것이 있어
바로 책가방을 도난 당했다고 신고한
멕시코 노동자의 거처였어
그는 강도를 겪은 후 두려움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어했고
강도 사건 몇달 후 멕시코로 다시 돌아갔어
결국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유일한 증인은
미국에 있지도 않았는데
칼리프는 계속 교도소에 수감된거야
그렇게 칼리프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교도소를 떠날 때 마다
심장이 부서진 채 다시 독방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몸과 정신이 망가진 칼리프에게
검사는 계속해서 유죄협상을 들이밀었어
그 협상의 내용은
"너 2급 강도 중범죄라 10년형인데
지금 니 죄를 인정하면 5년형으로 줄여줄게" 였어
사실 많은 빈민가 흑인들은 여기서 없던 죄를 인정하고
이 협상을 받아들이게 돼
재판이 언제 열리지도 모르거니와
재판이 열릴 때까지 구속되어 있는 기간은
형 집행으로 쳐 주지 않거든
예를 들어 보석금을 낼 돈이 없어서
2년 동안 구속되어 있다가
어찌저찌 정식 재판을 받고 3개월형이 나왔어
그럼 그 사람은 3개월을 교도소에서
형을 받아야 하는 거야
이게 뉴욕의 사법 시스템이야
그들의 죄목은 다름 아닌 가난 이거든.
하지만 칼리프는 이 협상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 라고 말을 해
그리고 이 사진이 바로 그 이유야
칼리프는 어린시절
자신의 형인 아킴이 갑자기 경찰들에 의해 내던져 진 후 강간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가게 된 걸 직접 목격을 했어
당시 15살이던 아킴은 칼리프와 똑같이 재판을 기다리다
16살이 되었고 성인과 똑같은 벌을 받게 된 거지
아킴을 아는 사람들 심지어
같은 학교를 다니는 백인 여학생들 까지도
아킴을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걔는 여성을 그렇게 생각하며 다루지 않는다고
뉴스 인터뷰까지 했으나
아킴은 [브롱크스의 강간범]이 되었어
그렇게 아킴은 자신이 한 적도 없는 죄를 인정하고
유죄협상을 했고 그렇게 형 집행 후 석방 됐어
칼리프는 자신의 형을 봤었기에
절대 유죄협상을 할 수 없었던 거야
결국 칼리프는 1110일 동안 교도소에 수감 되었고
그 중 800일이 넘는 시간을 홀로 독방에서 보냈어
그 과정에서 칼리프는 총 6차례의 자살시도를 했어
칼리프가 자신이 무얼 하는건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던 첫번째 자살시도에 대해 얘기해볼게
지속된 독방 수감으로 환청에 시달리던 칼리프는
계속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고
교도관에게 내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상담사와 만나봐야 한다고 했으나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칼리프는 어느순간 이 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침대 시트를 찢어 목을 매달려 했어
그리고 그 과정을 하츠라는 교도관이 지켜 보고 있었고
칼리프가 목을 매달기 전 망설이고 있자
"얼른 해! 뭘 망설이는 건데? 얼른 뛰어!"
라며 자살을 부추겼어
칼리프가 그 말을 듣고 목을 매달자
동료 교도관에게
"그냥 둬 조금이라도 더 고통을 느끼게" 라며
칼리프가 질식해 가는 과정을 지켜봤어
그리고 그들은 칼리프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칼리프를 끌어내 침대에 집어 던지고
폭행을 하기 시작했어
독방의 문은 열려 있었고
복도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칼리프는
본인이 구타 당하는 모습을 남기기 위해
복도로 뛰쳐나가 교도관들에게 계속 폭행을 당했어
그런 칼리프에게 돌아온건 뭐였을까?
정신과상담? 약물 치료?
아니
탈옥이라는 죄가 추가되면서
독방 수감 400여 일이 추가됐어
그럼 상부에 칼리프의 자살시도는 어떻게 보고 됐을까?
[독방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의적인 꾀병]
으로 보고가 됐어.
교도관들은 인권 운운하며
말이 많은 칼리프를 싫어했고
칼리프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교도소 내의 폭행을 묵인하기도 하고
직접 폭행을 가하기도 하고
밥도 주지 않고 몇주 간 샤워도 하지 못하게 하며
칼리프의 정신을 완전히 망가트렸어
칼리프는 이 박스로 불리는 독방에서
굶주림과 추위 더위에 시달렸고
그 과정에서 몸무게는 10키로 이상이 빠지게 됐어
가족들이 면회를 갈때마다 작고 말라갔다고 해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기소가 기각 됐으니
석방 이라고 칼리프를 풀어줬어
칼리프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부당함을 알리고
사법체계를 바로잡기위해 변호사들을 찾았고
뉴욕시와 사법기관, 교정기관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시작했어
하지만 칼리프는 교도소를 나와서도
정식 재판도 받아보지 못한 채
모욕적인 시간을 보내야 했어
사전 청취를 한다며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칼리프의 유치원 시절 이야기를 언급하고,
칼리프가 입양 된 것을 캐묻는가 하며
그것도 모자라 극단적으로 피폐해져가는
칼리프의 약점을 노리고 공격했어
https://youtu.be/xYgP2s_TZzg
그러던 중 라이커스 교도소 내부
감시카메라 영상이 공개 되면서
칼리프의 학대가 증명 되었고
칼리프의 증언에 더욱 더 힘이 실리게 됐어
(집단폭행 장면 있으니 시청주의)
세상은 칼리프의 얘기로 떠들썩 했고
여러 매체에 출연해 본인이 겪을 일들을 알렸어
하지만 칼리프는 인터뷰 도중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기억들에 괴로워 하기도 했어
전문가들은 16살은 뇌가 다 자란 상태가 아니며,
800여일의 독방 수감은 칼리프의 전두엽을
손상 시키고 세포체계 자체를 뒤바꾸는 일 이였을 것 이라고 말을 했어
실제로 칼리프는 집으로 돌아온 뒤
수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으며 거듭 자살시도를 했었어
그렇지만 칼리프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고졸 학력 인증서를 받고 커뮤니티 대학에 입학했어
2014년 11월에는 유죄협상을 하지 않고 라이커스 라는 지옥을 견뎌낸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인터뷰도 했었어
말 그대로 칼리프는 다시 정상적인 삶을 되찾기 위해
정말 부단히 노력을 했고
이 과정에서는 유명 래퍼 제이지가 많은 도움을 주었어
하지만 석방 2년 후인 2015년 6월
지속적인 피해망상과 환시 환청에 시달리던 칼리프는
티비가(경찰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말을 하며
갑자기 티비를 부수었는데
그 날 밤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달아 삶을 마감하게 돼
그리고 칼리프의 삶을 망가트린 담당검사는
이름 조차 밝혀지지 않았으며
담당 경찰 검찰 판사 교도관 그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어
슬프게도 칼리프의 죽음을 계기로
소년범 독방 수감, 재판 지연과 신속 재판법
라이커스 교도소의 처우 개선 등에 관한 논쟁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어
그리고 칼리프의 어머니 베니다는 인권 운동가가 되어
칼리프 법안을 통과시켰고
뉴욕시 형사사법제도 개혁을 이끌어냈어
베니다는 이 날
“나처럼 고통 속에 종신형을 살아야 하는 엄마가 나오기를 원치 않는다." 는 말을 남겼고
칼리프의 죽음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돼
이 사건은 미국의 사법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이야
또한 구조적인 인종차별을 여과없이 보여준 사건이기도 해
멋진 야경과 자유의 여신상 뒤에 가려진 라이커스 섬은
리처드 라이커가 소유한 섬이였어
섬 이름 자체도 라이커에서 따온 이름이지
리처드 라이커는
뉴욕시의 사법체계를 책임지는 치안판사였고
동시에 흑인노예 납치 클럽 회원이였어
노예 사냥꾼들은 탈출한 흑인 노예들을 잡아들여
리차드 앞으로 데려왔고
자유 흑인 아이들 마저도 납치해 노예로 삼았어
라이커 섬은 그렇게 이용되다가
뉴욕시에 매각 됐어
그리고 뉴욕시는 리차드 라이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932년 라이커스 교도소를 설립했어
뉴욕시 내 흑인 인구는 24%에 그치지만
죄수의 비율은 95%에 달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야
이건 100년 200년 전의 먼 이야기가 아니야
아직도 흑인 아이들은 납치되어 라이커 섬에 끌려가고 있어
라이커스 교도소 내의 재소자 중 85%는
칼리프 처럼 보석금을 낼 돈이 없어
구속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제이지가 이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6부작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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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버터프레첼맛 쿠키
첫댓글 아..... 너무 끔찍하다 글 읽는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죄목이 가난이라...ㅠㅠ 에휴....
흑인노예 시절 드라마나 인종차별 사건 영화 몇편 봤는데
저런 사람들한테는 흑인이 인간이 아니라 그냥 가축1이더라
인권 안챙겨주는거? 당연한거임
인간이 아닌데 인권이 어딨어
재미로 총 들고 다니면서 사냥하듯 재미로 흑인 패는거임
그러니까 인종차별이 사라지질 않지
아 인종차별 씨발..
솔직히 저런거 보면 흑인들이 동양인 인종차별은 인종차별도 아니라고 하는 거 이해감
우리나라처럼 교화목적 처벌하는 나라에서 편파수사 편파판결도 이렇게 빡치는데 미국이면 ㄹㅇ 인권의 밑바닥도 없을듯
ㅁㅊ 저런 인간 이름을 딴 섬을 아직도 그대로 둬?
...미국에서 흑인들 인권은 아직도 말이 아니라는 걸 어딘가에서 들었어...진짜....평등과는 너무도 먼 세상이야...
진짜 썩은나라 미친인간들 그렇게 자유를 강조하면서 흑인,동양인의 자유를 억압해서 백인의 자유만을 보장하네
너무화난다....
세상에..
오늘 저녁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