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윗글 보고 생각나서 급 조사 해서 올려봅니다.
위에 씨벌건 쪼끼 입으신 분처험 종교 중독자이신분도 많지만 정말 종교를 초월하여 정말 인간대 인간으로 사랑을 실천한 분들은 정말 많습니다. 위에 계신 스님도 그런 분이시네요.
안젤라 수녀님은 손이 이상해졌어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그렇다는군요. 달동네에서 살면서 찬물로 빨래하고 남 돕고 늙어서 까지 그렇게 사셨다고합니다. 그러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수녀회에서 모시고 계시다가 치매까지 생기시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지요. 안젤라 수녀님은 손이 이상해서인지 누가 손만지면 손 만진사람 팔을 꼬집꺼나 꺾어요=_= 환자분이시라도 부끄러움은 계신가봐요. 도리어 남을 위해 봉사한 세월에 흔적이며 훈장일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밑에 사진 외에 다른 사진들을 보니 아이들이 손을 만지셔도 가만히 계시네요.ㅎㅎ 역시 사랑의 마음이 남아있으셔서 그렇겠죠. 못 가보고 뵌지도 꽤 되었지만 오래전 1년만에 갔을 때 저를 기억해 주시길래 얼마나 고맙고 기쁘던지. 흑흑 갑자기 눈물이 눈앞을...
그냥 그래요 제가 해드리고 싶은 말은. 종교라는거. 그것도 다 사람을 위한 거라는거. 종교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배풀고 하는게 아니라 사람이니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하는겁니다. 종교는 그 베품과 희생의 도구이고 봉사자의 힘겨움을 버텨주는 기둥일 뿐 인 겁니다. 아프칸 가서 뻘짓한 놈년들... 위에 쪼끼입고 쑈를 한 늙은이... 그래도 사람인데 사람끼리 사랑해 줘야하겠어요. 아프칸에 잡혀있는 분들 무사히 귀환해서 정말 살아있는 사랑, 종교를 앞세운 강요가 아니라, 안젤라 수녀님처럼 그냥 보고만 있어도 감화되고 왠지 자기가 죄스러워지고 남들을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안재란 (Angela Mistura)
1930. 4. 18일생
1954. 6. 8 서약
1956년 한국진출 첫팀으로 파견되다(명동 여학생관 사감)
1961-62 이태리 페루치아 외국어 교수 자격 취득
1965 외대교수, 삼선동 AFI 수련소 수련책임(민 도로테아와 함께)
1975-76 제네바 비서처
1976 명동 여학생관, 심성개발 훈련 계속 함
1977-1983 퇴직
1977 그룹 다이나믹, 심성개발 훈련
1978 그룹 다이나믹 (1학기)
1979 슬라이드 감상
1980 심성개발 지도자 훈련
1981 심성개발 지도자 훈련
1982 기적을 이루는 사랑, ME 지도 부부팀과 함께, 심성개발훈련
1983. 12. 30 명동 여학생관 퇴임후 신림 10동으로 이사
1984 신림동 빈민촌 박영천과 함께 삼, 공부방, 어린이집 후원자,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성서반(2-3년)
1998-2000 이태리 성서반, 서강대 평생교육 주 2회 이태리어
1995? 7? 외국어대 이태리어과 교수직 만 68세 퇴임
1996 - 2000 이태리어 성서
1998. 3. - 2001 강사로 유임
2003 명동에 기거
2004. 2 - 현재 가은병원 입원 가료중(경기도 부천시)
Angela Mistura(한국명 : 안재란) 이태리인
생년월일 :1930년 4월 18일 밀라노, 이태리
서약년월일: 1954년 6월 8일 영세:1930년 4월 20일
1956년 3월 서울 대교구장 노 기남 대주교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에 파견된 독일인 Gabi Vilsmeir (하 가비)와 함께 명동 가톨릭 여학생관을 창립하였다. (1957, 9,28) 교구장의 요청에 따라 여성 교육의 일환으로 지방에서 올라온 여대생들을 위한 기숙사와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위한 제반 교육과 활동을 전개토록 기초 작업을 해온셈이다.
서울교구로부터 기증받은 2층 목조 건물 (300 제곱미터) 을 보완 확장하면서 외국인으로서 새로운 문화, 언어를 익히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처음부터 기숙사 사감으로서 학생들이 도시(서울) 생활과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고 특히 신자로서 의식이 깨어있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투신을 할 수 있도록 삶과 신앙의 조화로운 성장을 위해 교육과 봉사활동을 강조해 왔다.
1961, 2- 1962, 3 에는 여학생관 신축공사로 모든 활동이 중단 되어 본국에 돌아가 이태리 페루지아에서 외국어 교수자격을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명동에 머물면서 그 당시 국제 본부 (Brussels)에서 AFI 수련을 끝내고 서약한 한국인 3명과 수련을 준비하는 지원자들 (2명)이 있고 입회를 기다리는 5-6명의 후보자들이 있어 그들을 도우며 그동안 가톨릭 여학생관은 AFI 수련의 전초지로 잘 활용되었다.
1963, 2 브뤼셀에서AFI 수련을 담당하던 민 영의 (도로테아)가 귀국하여 Angela와 함께 AFI 수련을 본격화시킨다.
1964, 7, 5 김 대건 축일에 한국인 4명이 한국에서 첫 서약을 하게 되었고
1964, 11 드디어 삼선교에 AFI 수련소가 설립되었다. 이로서 Angela는 수련자들과 함께 수련소에서 생활하고 수련을 담당하게 된다.
1965, 3 한편 서울 외국어대 이태리어과에서 교수로 취임하여 정년 퇴직시,1995년 까지 많은 유능한 제자들을 키워내어 특별히 본교 이태리어과 교수, 외교관, 문화사절로 많이 배출시켰다.
1975-1976 단체의 요구에 따라 국제 비서처, Geneva 에서 2년간 국제 비서로서 단체일을 맡아했다. 그후 다시 명동 여학생관으로 돌아와
1977-1983 전진상 staff로서 팀으로 일해왔다. 외국어대 이태리어과에는 변함없이 강의를 맡고 있었지만 본 회관에서의 Program중 Group Dynamic, 시청각 교육, 80년대 이후에는 심성개발 훈련, "기적을 이루는 사랑" "선택" 등을 ME 지도 부부팀과 함께 진행해왔다.
1983, 12, 30 전진상 교육관 (가톨릭 여학생관) 을 떠나 신림동 빈민촌 (신림 10동)으로 자원하여 들어간다. 박 영천 (젬마, AFI) 과 함께 열악한 지역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여 판자촌에서 생활하였다. 그곳에서도 외대 교수생활은 계속 되었고그곳 주민들과 동고동락해 왔다. 판자촌이 철거되어
1984년 1월 ~
신림10동은 골롬반신부들이 사목활동을 시작한 곳이다.83년12월30일에 이지역으로 이사와 가난한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안젤라는 당시 외국어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틈나는 대로 지역사람들을 만나 격려하고 삶의 용기를 주었다.B지구의 아가방은 후원자들의 기금으로 운영되었는데 기금모집에 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아가방교사들을 격려하고, 매주 아이들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아가방 자모회, 지역미사, 지역반모임을 통해서 지역민들을 만나며,이지역 사람들과 교류를 넓혀 나갔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달리,이지역에 적응하기위해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그러면서 선택, ME모임등은 꾸준히 해왔으며, 이런 모임들은 후원기금 모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97-2000 신림 10동 주공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여 지역 공부방, 어린이 집을 위해 후원자가 되어 도왔고 그곳 주민들과 성서반을 만들어 신앙과 삶안에서 진한 결속을다져갔다.
1996-2000년 까지도 지역안에서 살면서 전진상 교육관에 이태리 성서반을 개설, 5년간 이태리어 성서를 가르치고 나누며 이태리어를 아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익하고 풍요로운 만남이 되었다. 1995년으로 한국 외국어대 교수직에서 퇴임하고도 계속 2001년까지 강사로 일해 오셨다. 동시에 서강대 평생 교육원에서도 이태리어를 담당하셨다 (1998, 3-2001,12)
2003년에는 건강의 이유로 명동 여학생관으로 모셔와 생활하시다가 갑자기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2004, 2, 22) 가은 병원 (경기도 부천시 전문요양 병원) 에서 현재까지 입원 가료중이다.
동아일보 기사 (2005,9,16) 에서 기자의 질문에 한국 외국어대 제자인 한 성철 교수는 "선생님은 어려운 시절에 한국에 와서 자신이 가진것을 모두 털어 어려운사람을 돕고 이제는 병든 몸 밖에 남지 않았다" 고 아쉬움을 털어놓았고 대구 가톨릭대 김 효신 교수도 "학생 시절 선생님과 함께 신림10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봉사의 참뜻을 배웠다" "안젤라 선생님은 삶의 지표와 같은 분" 이라고 말했다 "50년 빈민 보살펴온 이태리 출신 안젤라 할머니, 빨리 나으세요, 달동네 천사 할머니".
-출처 : 가은병원싸이타운
첫댓글 소록도인가(???) 나병환자들을 위하셨다는 오스트리아 수녀님 2분이 생각나네요..... 꼭 정신나간 저런사람만 있는건 아니죠
수녀님들은 천주교입니다 개신교 쪽엔 수녀님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녀님들은 전세계적으로 좋은이 많이 하시져 ^^ 참 그리고 기독교는 주로 천주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개신교가 정확한 호칭입니다 ^^ 개신교도 포괄하긴합니다만,,,쩝
'기독교'의 일부의 일부 종파일 뿐인 '개신교'가 전체인 '기독교'라고 표현하는것 부터가 한국 개신교들의 교만의 시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인중에서 미국과 유럽인 소수, 캐나다, 호주의 일부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통용되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몇%나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