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이가 돌아옵니다. 이번 여름방학들어
무려 우리 꼬마에게는 3번째 캠프입니다.
동네 YMCA에서 하는 해양캠프, 1박2일 자연캠프
그리고 ‘청학동 캠프’-제 친구가 말하길
‘진짜 불쌍한 캠프차일드구나’했습니다.
할말 없죠-아이가 방학은 했고 저는 바쁘니
아이의 남아도는 넘치는 시간을 해결하느냐
말 그대로 ‘이 캠프, 저 캠프’고 돌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청학동 캠프’는 작심하고 작정하고 보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제가 아주 녀석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산만하고 버릇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책가방챙기기도 제일 늦어
딴 아이들이 기다리기 일쑤구요,
또 아빠는 무서워하는데 저는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알아요.
그렇다고 저는 절대로 아이한테 손을 안대는 주의니까
아이를 도무지 말로만 타이르고 설득하는 것도 힘들고-
게다가 제가 요즘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니까
아이한테 미안해서 야단도 못치고---식당에 가면
아무리 주의를 줘도 뛰어다니고-정말 미치겠어요‘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거의 만리장성쌓듯
‘기막힌 사연’을 저의 보좌관인 빠삐용님께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자 언제나 저의 해결사인 빠비용님이 말했습니다.
‘걱정마세요. 애는 다 그렇죠.
저의 애도 말을 하도 안들어 고민이었는데
청학동 캠프에 갔다온뒤 아이가 양반이 되었어요.
그리로 보내세요‘
들어보니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 있었더군요.
엄청 개구장인데 그 캠프를 갔다와서는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하며
큰 절을 넙죽 하더랍니다. 다들 까무러쳤다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그날 마침 집안모임이 있어
노래를 해보라고 한 친척아주머니가 하니
‘판소리 한가락’을 ‘으어러러-’하면 쫙 뽑더랍니다.
세상에--이럴 수가!
그 즉시 인터넷으로 수소문해서
신청을 했습니다.
보아하니 상당히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반찬투정은 물론 절도에 예의에 어긋나면
회초리도 때린다는 글도 쓰여져 있습니다.
"엄마-나 이젠 캠프 그만 가구 싶어-내 친구들은
캐리비안 베이간다던데-"하는 녀석에게
"음-요즘 캐리비안 베이가 성수기라 너무 비싸
우리 누나랑 너랑 엄마랑 세식구가면 얼만데? 엄마는 도저히 너 못데리고 간다."
"엄만 구두쇠, 짠돌이, 수전노!"(나쁜 녀석--두고 보자)
"으흠, 흠-누나 친구가 할인카드갖고 있다니까 알아보고나서 결정할께
근데, 너 이번에 가는 캠프 말이야, 정말 재밌고 유익하고
너 좋아하는 자연탐험, 얼마든지 할수 있대-정말 좋겠다, 그치"
(으흐흐흐**저의 속으로 웃는 웃음소리였습니다.)
순진한 녀석은 부푼 가슴이 되었고
비정한 엄마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홈피에 보니 개구쟁이를 둔 엄마들의 소감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예를 들면 ‘꼭 보내세요. 갔다온 뒤 효자됐어요’는 기본이고요.
"약발이 거의 영구적입니다. 옆집애가 작년에 갔다왔는데
말 안들으면 너 청학동 캠프 또 갈래하면 아니라고
당장 잘하겟다고 한대요. 한자도 가르쳐주고--그래서 저의 애도
올해 보냅니다"
"킥킥--그래 바로 이거야" 싶었죠.
남편은 출장을 갔고 아이는 캠프에 갔고--
내심 ‘원없이 방해꾼 없이 일해보리라’했죠.
옆에 와서 ‘배고프다, 밥달라’며 귀찮게도 않할 것이고
(녀석은 24시간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일하는 제게 놀아달라,. 책읽어달라며 조르지도 않을 것이고-
‘드디어 내 세상이다!’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루가 지나니
집안이 텅빈 듯 하고 일에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어떻게 잘 지내냐-야단은 맞지 않았나-
밥은 제대로 먹나-나약한 의지박약의 대책없는 엄마로
돌아갔습니다.
안타깝게도 전화통화도 안된다고 홈피에 써있었죠.
그런데 나흘째가 되면 홈피에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가 뜬다고 합니다.
마침내 어제 그 편지를 보았습니다.
저의 아이는 왼손잡이이고 유난히 글씨를 못써
제가 큰 고민이죠.
그래도 이 여전히 맞춤법이 맞지 않는 편지를 본 순간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요-
물론 내용역시 한마디로 ‘포복절도’할 만 했습니다.
(밑으로 내려가면 있어요)
저의 가족은 킬킬 웃으면서 ‘그녀석 잘됐다’했지만
속으로 녀석에 대한 그리움이 제 코끝을 찡하게 하더군요.
그리고 그 아이가 제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가를-
‘세상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나의 심장’이란 사실을 깨달았죠.
그리고 제가 녀석의 장난과 고집과 온갖
개구쟁이 짓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던가를
다시 한번 알았습니다.
오늘 오후면 녀석이 드디어 집에 돌아옵니다.
오자마자 큰 절을 할지
판소리를 한자락 근사하게 뽑을지
아니면 제 품에 ‘엄마-’하고 파고들지
정말 기다려지네요.
2004년 8월 22일
전여옥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2045
첫댓글 열우당에겐 무서운 철의 대제 같은분이...이런 여린 마음도..ㅎㅎㅎ.. 부모 마음 다 똑같죠...
이런 글이 자주 올라오면 카페가 한결 부드러워 재미있어서 방문자가 많은것 같습니다. 참 재미있는 글이고 동시에 자녀둔 부모님들도 관심을 가지겠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