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첫 토요일 성모 신심)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혜가 사람이 되신 분이다. 걸어 다니는 지혜,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 말씀이다. 보고 들어야 앎이 시작되는 우리 사람에게 예수님은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하느님을 보여주시고, 그분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어떤 이는 예수님을 하느님 말씀의 번역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아버지로 부르셨고, 우리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본래 계시던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내셨다. 그분은 우리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요한 14,6)
우리 신앙에는 이 세상에서 의미 있고 참되게 살게 하는 윤리 도덕적 차원도 있지만, 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차원은 그것에 우선한다. 어쩌면 참되고 의미 있는 삶은 우리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얻는 부수적인 선물일는지 모른다. 선행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눈 감고도 하는 일상 같은 것이라서 내세울 것이 못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뿌듯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고,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 신성한 사실에 비하면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배꼽이 있었다. 그게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자랐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명오(明悟)가 트였다. 루카 복음은 그게 열두 살 때라고 전하는데, 유다인 남자는 그때부터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녔다고 한다. 그 안에는 성전을 정기적으로 순례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을 따라 처음 간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린 예수님은 그곳이 아버지 집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아셨던 거 같다. 예수님의 그 깨달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아니, 꼭 가져야 한다. 인생이 영원하신 하느님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누구 말대로 이 세상은 거대한 죽음 대기소에 불과하다. 백 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죽고 만다.
성모님 계신 곳에는 늘 예수님 계신다. 오늘 복음은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으러 가는 성모님과 요셉 성인 모습이 두드러진다. 하느님을 찾는 마음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마음처럼 당연하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유일한 바람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러 가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간절하게 바라야 한다.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은 인생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단 한 가지 의미이고 소망이다. 세상살이는 중재와 도움이 참 필요하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 참되고 유일한 중재자는 예수님 한 분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성모님을 좋아하게 된 건 인간을 완전히 아시는 예수님의 배려다. 성모님은 우리가 당신이 아니라 예수님과 친해지는 걸 바라고 기뻐하신다.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서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인 예수님과 친밀해진다. 그 덕에 예수님을 큰오빠 큰형이라고 부르고 어떨 때는 친한 친구처럼 여기기도 한다. 성모님 덕분에 우리는 아버지 집으로 간다.
예수님, 저희가 주님을 선택한 게 아니라 주님이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제가 가는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이시니, 어머니 마음속에 늘 계셨던 아드님께로 저를 인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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