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에서 어윳골로
오월 첫날은 일요일로 시작했다. 산업 현장에선 노동절로 쉬는 날일 텐데 일요일과 겹쳐 대체 공휴일제를 채택하는지는 내가 관심 가질 바 아니다. 자연학교 학생은 연중무휴 등교라 일요일에도 길을 나섰다. 자연학교에선 점심 급식을 제공하지 않아 아침 일찍 반송시장 노점으로 나가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105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향해 북면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내가 탄 버스는 창원역에서 북면 명촌으로 가는 소형차였다. 굴현고개를 넘어 화천리에서 감계 신도시 입구를 거쳐 중리와 현천을 지난 아산에서 내렸다. 시립요양원에서 가까운 고갯마루가 아산인데 행정구역은 함안 칠북이었다. 오래 전 현지 노인에게 듣기로 아산 지명 유래가 떠올랐는데 어금니 아(牙)을 쓴다고 했다. 칠원에서 어금니처럼 깊숙한 산골이라 아산이라 불린다고 했다.
아산에는 논이 전혀 없고 밭농사와 단감농원만 있는 산간지역이었다. 행정구역은 함안일지라도 창원의 시내버스가 하루 몇 차례 다녀 주민들은 마금산 온천이나 시내로 볼 일을 보러 나다니는 형편이었다. 나는 봄날에 산나물을 채집하려고 드물게 들리는 아산이었다. 마을에서 떨어진 북쪽 산비탈로 오르니 온통 단감 과수단지였다. 산비탈을 개간해 감나무를 가꾸는 과수농업이었다.
단감과수원이 끝난 곳에서 숲으로 드니 들머리부터 산나물이 보였다. 맛이나 식감이 참취보다 좋은 미역취가 보여 뜯었다. 그 곁에는 참취도 보여 뜯어 보탰다. 자손들이 벌초와 성묘를 다녀갔을 무덤이 나왔다. 무덤을 지나 산마루로 오르니 참취가 있어 더 뜯어 모았다. 어느 해 가을 그곳 산마루를 지나다 절로 자라 익어 떨어진 밤톨이 있어 배낭 가득 채워 하산했던 기억이 났다.
산마루에는 산행객이 드물게 지났을 희미한 등산로가 보였다. 소나무 숲에 섞여 자란 활엽수림 바닥에는 산나물일 성 싶은 식물이 자라 사진으로 찍어 유튜버에게 문의했더니 곧장 담배풀과 덩굴별꽃이라는 회신이 왔다. 둘 다 유독식물이 아닌 식용 가능한 산나물이 되는지라 허리를 굽혀 뜯었다. 둥굴레는 잎줄기에서 초롱같은 꽃망울을 달고 나왔는데 보드라운 순은 나물이 되었다.
내가 인적 없는 숲으로 드는 이유는 두 가지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음이온과 피톤치드가 나오는 숲속을 거닐면서 번잡한 세상사를 잊고 싶다. 둘째는 철이 좀 지나기는 해도 참취를 비롯한 산나물을 뜯어 일용할 찬거리로 삼고 지기들과 나눌 생각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아 혼자 숲을 누벼도 안전사고나 조난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몇 차례 내 발길이 닿았던 산기슭이었다.
산등선을 따라 나아갈 길이 한참 남았음에도 채집한 산나물은 일용할 찬거리가 될 만큼 금세 성과를 거두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을 헤집지 않고 수월하게 산나물을 확보했다. 이후에 더 채집할 산나물은 귀로에 지기한테 건넬 생각이다. 야트막한 무명고지에는 누군가 소원을 비는 돌탑을 쌓아 놓아 나는 발길을 멈추고 맨 위 꼭대기에 돌멩이를 하나 더 올려놓고 두 손을 모았다.
산등선이 끝난 곳에서 김밥을 비우고 나니 내봉촌과 상천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내봉촌은 함안 칠북이고 상천은 창원 북면이었다. 상천으로 내려가니 억새와 산딸기나무 덤불 속에 토실하게 솟은 고사리가 보여 몇 가닥 꺾었다. 보드라운 참취도 보여 놓치지 않았다. 예전엔 옥녀봉과 마금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었는데 묵혀지고 상천으로 곧장 내려가는 길만 희미하게 보였다.
숲이 끝난 곳의 인천 이 씨 선산에서 미역취가 무리 지어 자라 뜯어 보탰다. 미역취를 뜯고 나서 숲을 빠져나가니 네 개의 작은 마을은 고라, 소라, 어유, 닭실이 합쳐진 상천리였다. 그 가운데 어윳골은 예전에 낙동강이 범람하면 그곳까지 물고기가 들어와 놀았다고 물기고 어(魚)에 놀 유(遊) 자를 썼다. 어윳골에서 마금산 구름다리 밑을 지나 온천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