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바닷가에서 놀다가 돌아온 날 밤
귀에서 파도소리가 끊이지 않아 잠을 못 잤다
"거짓말"
"그래 나는 그렇게
거짓말 같은 데서 살고 있다"
사진 〈Bing Image〉
수평선으로 시작하는 아침 - 마라도 2
이 생 진
문을 열면
저 구름
저 수평선
저것이 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집을 나서면
저 구름
저 수평선
저것이 옷을 주는 것도 아닌데
사진 〈Bing Image〉
바람 같은 얼굴 - 마라도 5
이 생 진
오늘 수평선은
네 눈썹처럼 진하다
너도 네 눈썹을 갈매기처럼 그리지 말고
수평선처럼 그려라
그러면 네 얼굴도 바다가 되리라
성산포 / 사진 〈Bing Image〉
초면 - 마라도 6
이 생 진
잔디밭에 앉아 수평선을 보는 사람보고
"고기 많이 잡으셨어요?"
삼십 대 단발머리 길쭉한 몸매
"낚시도 없는데"
"그럼 섬엔 왜 오셨어요?"
"글쓰죠"
"시요 소설?"
"시"
"야 멋있겠다 나는 무용인데"
"그럼 고전 현대?"
"현대죠 포스트를 좋아해요"
"멋있겠네"
"그런데 결혼했더니 죽을 것 같아요"
"결혼은 예술의 무덤일수도 있지
그 무덤을 깨고 나오려면 화산처럼 폭발해야 하는데"
"제 이름은 김자 화자 순자 선생님 시집은?"
"성산포, 그리운 바다 성산포"
"아 바로 그분이시구나! 저 그 시 좋아하는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
파도처럼 밀려오는 가슴
"무용도 시죠 몸으로 읊는 시"
갯쑥부쟁이 / 사진 〈Bing Image〉
갯쑥부쟁이꽃 - 마라도 9
이 생 진
식물도감을 보면
긴털갯쑥부쟁이는
11월에서 다음해 2월까지
제주도나 그밖에 남부 지방 해변에서
피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마라도 풀밭에는
9월 화창한 가을 문턱에 피어 있다
이놈이 날 반기느라
도감을 이탈한 것인가
그 이탈은 참 예쁘다
파도 소리가 들리지?
혼자서 파도 소리 듣는
네 귀가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