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지현이 좋다.
전지현을 좋아하는 수많은 팬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중의 하나가 아닌 특별한 존재이고 싶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다만 그속에 있는 작은팬일 뿐이다.
그나마 많은 팬들 사이에 묻혀버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가 나를 알까?
아니.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그런데도......
전지현이 좋은가?
나는 전지현이 좋다.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그건......
전지현. 그녀는 최근 인기의 절정이다. 감히 여자배우들중 피라미드의 정상이라고 말할수 있을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이다. 이 인기의 원동력은 '엽기적인 그녀'. 그녀는 이 영화로 인해 인기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영화속에서의 그녀는 지금까지의 멜로영화에서는 볼수 없었던 충격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하철에서 할아버지 머리위에다가 오바이트를 하고 쓰러지지를 않는가 하면,초면에 반말을 툭툭 던지질 않나, 무섭게 생긴 사람만 골라서 시비 걸지를 않나, 남자친구를 사정없이 때리질 않나......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전지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아니,이게 진짜 모습일지도,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상당히 놀라웠다.
TV속에서 비춰진 전지현은?
추석특집으로 모방송국에서 한중일의 세스타를 놓고 누가 최고인가를 가리는 거리투표를 한적이 있었다. 그중 한국의 대표는 전지현이었다. 어차피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민성이 투철하기 때문에 투표를 하면 항상 우리나라사람을 찍는게 대부분이다.(여기서 전지현은 1위를 하였다. 물론 전지현이 둘보다 나아서 1위를 한것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투표할땐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을 잘찍는다.)나는 이런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세 스타를 인터뷰 하였고 전지현의 인터뷰 차례가 왔는데 나는 이것을 본방송보다 더 기다렸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말,적절한가?) 영화를 끝내고 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녀의 최근모습을 볼수있었다. 집인가? 전지현의 집으로 추정되는 정원의 테이블에서 인터뷰는 시작된다.
그녀의 인터뷰 모습은 '엽기적인그녀'와 완전히 달랐다. '엽기녀'에 걸맞지 않게 내심 소극적이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그녀는 말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다른사람과의 인터뷰가 익숙치 않은듯 아직까지도 수줍은 모습이다.
데뷔초에도 저랬는데......
난 데뷔초에......
그러니까 그녀를 알게된것은 드라마 '해피투게더'와 영화 '화이트발렌타인'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신인인가? 처음보는 얼굴인걸? 하지만 이 작품들이 그녀의 데뷔작은 아니었다는걸 늦게서야 알게되었다. 전지현은 '왕지현'이라는 이름으로 한참 CF활동과 잡지모델을 했었고 드라마 '내마음을 뺏어봐' , 그리고 신인으로는 파격적으로 SBS 인기가요 MC를 보는등 훨씬 전에 데뷔를 하고 활동을 하고 있었던 이른바 중견(?)연예인이었던 것이다. 늦게서야 이렇게 알게되었고 그때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났지만.
이렇게 나에게 전지현의 데뷔작으로 잘못 저장(?)이 된 '해피투게더'와 '화이트발렌타인'을 보면서 나는 '마지막승부'의 다슬이(심은하)를 다시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저렇게 청순하고도 가련하며 착할수가...... 청순한 캐릭터에 목말라있던 나에게 전지현은 완벽해보였다.
물론 저 모습이 연기된 모습일지라도......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녀는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린 중요한 cf한편을 찍게 된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S모회사의 프린터CF. 여기서 전지현은 나에게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cf에서 전지현은 현란하게,그야말로 화려함과 관련된 수식어는 다 갖다붙여도 될 정도로 화려하게 춤을 췄다. 물론 상당한 연습을 통한 모습이었으나 마치 즉흥적인 모습을 보는듯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놀림,몸짓,눈빛에 빠져들었다. 놀라웠다. 그리고,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한사람이 저렇게도 다른 두 이미지를 동시에 소화해낼수가 있다니...겨우 몇초에 불과했지만 내 머리속에서는 몇시간,몇일이고 맴돌았다.
이 여자......청순가련형 아니었던가?
확실히 이것은 전지현에게 있어서 플러스였지만...마이너스이기도 했다.
당시 내 주위에 친구들중 전지현의 연기를 못본 친구들은 전지현을 이cf를 통해 데뷔한 신인모델정도로 알고 있었다.(이런 사람들, 의외로 많았을것이다.)
양날의 검이라고나 할까,자칫하면 cf에서의 강렬한 이미지때문에 앞으로의 연기활동에 지장을 줄수도 있는것이었다.
약간 심각하게 과장해서 말하긴 했지만,그렇다고해서 cf활동자체가 나쁘다는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로인해 전지현은 다른 수많은 cf들을 찍게 되었고, 전지현의 다양한 이미지를 볼수 있게 되었으니, 좋으면 좋았지 나쁘다고까지 말할수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cf하나의 여파가 너무 강했다는것에 있다.약간의 화제 정도가 아니라 폭발적인 호응. 모뎀유저였던 내가 그 cf를 다운받아 두고두고 보려고 20분을 기다렸을 정도이니...(참고로 최근에 전용선으로 받아보니 1분도 채 안걸리더라는...)
이렇듯 전지현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길어봤자 20~30초정도인 cf에서의 춤 하나만으로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많은 사람들은 전지현을 cf에서의 춤 하나만으로 기억했다.
그뒤로 사람들은 전지현을 'CF스타,모델 전지현'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것이 전지현 자체로 평가되어서는 곤란했다.
이것은 그저 사람들과 그녀를 연결시켜준 매개일 뿐이다.
전지현은 연기자다. 전지현은 cf활동에 만족하고 멈추어버리는 cf모델이 아니다. 전지현 자신이 연기자의 길을 택했고,연기자가 되고싶다는 연기자가 바로 그녀이다. 곧 전지현은 보여줄것이다.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1년뒤, 그녀의 영화'시월애'가 왔다. 전지현은 여기서 다시금 청순가련으로 돌아가려 한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전지현은 비련의 여인 은주로 나온다. 확실히 그녀는 어른을 연기했던 고등학생때보다 연기력이 향상되었다. 사랑이 뭔지 아직 깨닫지 못한 고등학생이 성인을 연기해야 했으니 완성된 연기를 바라는건 다소 무리한 부탁이었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그녀, 전지현의 연기는 성숙함이 묻어나왔다. 보는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드는 조용함 가운데 소리없이 크게,크게 가슴을 울리는 그녀의 눈물...... cf에서의 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듯 전지현의 연기는 열연 그 자체였지만 영화는 그리 흥행하진 못하였다. 물론 흥행이 영화의 모든것을 평가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확실히 영화는 아름다웠고,훌륭했다. 이것은,뭐랄까...그녀의 과도기라고 생각되었다.
반짝스타라는 말이 있다. 갑자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단숨에 인기를 얻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너무 극단적이고 앞선다는 생각이 들어 꺼내기가 조심스럽지만,전지현이 그렇게 될지 안될지는 아무도 모르는일이다. 그 누구도 보장해주는것이 아니고 오직 그녀만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전지현은 CF스타 전지현에서 연기자 전지현으로의 과도기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전지현은 신중하게 선택하는듯 보였다. 그녀는 아직 개봉이 안된 '화산고'라는 영화를 준비하다가 '엽기적인 그녀'로 갑작스런 변경을 하게 된다. 나는 '화산고'를 찍는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화가 바뀌어서 당황했고, 물론 바뀐걸 안것은 영화변경이 된지 수일이 지난 후였다. 화산고를 위해 항상 검을 손에 끼고 다니며 몇달을 연습했다는데......
물론 그간의 노력을 포기하고 선택한 만큼 신중한 결정이었을것이다.
그냥 지켜볼 수밖에.
영화는 마침내 제작을 마치고 개봉되었다.그러나 때를 잘못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기적인그녀'와 상영이 맞물리는 영화들은 전부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인기 헐리우드 영화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에 나는 '엽기적인그녀'의 고전이라고 '당연히'생각했다. 안타까웠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오히려 헐리우드영화들이 주춤하고 전지현의 '엽기적인 그녀'가 흥행돌풍을 일으킨 것이었다.
과연 이 영화가 얼마나 재밌었길래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너도나도 극장에 가서 보는것일까.
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다. 잘 보지 않는것도 아니라 아예 안본다.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애호가들에겐 무식한 소리로 들릴진 모르겠지만 '비디오 나오면 보지,뭘 또 돈아깝게 극장가서 보나.'하는 식이었다. (물론 '화이트발렌타인'과 '시월애' 역시 비디오로 봤다.)
그러나 이번만은 꼭 극장에 가서 보고 싶었다. 전지현이 얼마나 성장했는지,얼마나 완성되었는지 스크린을 통해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영화속에서 전지현은 '엽기적인그녀'의 엽기녀로 나온다. 종래의 영화에는 없었던 전무후무한 캐릭터기에 과연 전지현이 해낼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녀 역시 처음 보는 생소한 캐릭터였으리라. 전지현은 영화에 캐스팅되자마자 원작자인 김호식씨를 직접 만나자고 제의했을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소설속의 그녀를 좀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베일에 싸인 엽기녀의 실제 주인공도 만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도 쉽게 곧 그것을 포기해 버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실제 엽기녀를 만나보면 관찰자인 김호식씨의 증언을 듣는것보다 엽기녀를 좀더 정확,사실적으로 연기할수 있었을텐데. 그러나...내 생각이 짧았다. 전지현은 '엽기녀를 만나면 왠지 그녀를 그대로 따라하게 될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연기력만으로 엽기녀를 표현, 전지현만의 것으로 재창조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 한마디. 그렇기에 그녀는 그것을 주저없이 포기했던 것이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고, 그녀의 연기는 아직 보여지지 않았지만, 그 열의,그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수도권에 있는 극장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용한 분위기,영화에 집중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영화에 집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가 아닌, 전지현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 나에게 스토리는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었다. 전지현의 대사,목소리,표정,행동을 지켜봤다.
솔직히 말해서 놀랐다.
전지현은 사람들에게 그녀가 아니면 누가 이 역을 맡았을까 할 정도로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전지현=엽기녀 , 엽기녀=전지현이라는 식이 성립할수 있을정도로 전지현은 완벽했다.
그리고...
엽기녀의 황당함에 모두가 웃었고, 한 여자의 눈물에 모두가 울었다.
관객들의 몰입.
스크린속의 그녀는 전지현이 아니었다. 바로 영화속의 그녀,'엽기녀' 그 자체였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 전지현은 없었다.
'저것이 전지현이 연기하는 엽기녀구나...'가 아닌 '저것이 바로 엽기녀구나!'였다.
그리고, 앞에서 스토리는 신경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건만 영화 내내 전지현을 주시하는 동안 스토리 역시 저절로 흡수되었다. 스크린속에 그녀가 스며들어 있었고, 내가 그녀를 따라갔으니 스토리를 따라간 것이었다.
아무나 할수있는것이 아니었다.
전지현과 엽기녀가 하나가 되었고 그녀 역시 몰입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원작소설을 읽어본적이 있었던 나는 과연 소설속의 그녀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항상 궁금해 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후 그 물음표속의 얼굴은 당연한 것처럼 전지현이라는 답으로 채워졌다.
내가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그리고 전지현 본인이 생각해도 성공적인 연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보러, 그녀의 연기를 보러, 극장으로 간것이 아닐까.
영화가 끝났고,나는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걱정과 의문을 떨쳐버릴수 있었다.
전지현은 연기자구나. 연기자 맞구나.
각종 TV,신문에서도 난리다. '전지현 cf만 고집하는 연예인,연기력이 떨어진다는등의 루머...혹평 한번에 날렸다', '이제야 빛이 나는 보석을 찾은것 같다'......전지현은 이제 사람들에게 cf스타가 아닌 연기자가 되었다.
연기자 전지현의 모습은 CF에서의 화려했던 춤보다 훨씬 멋있었다.
팬들이 원하던 모습은 바로 그 연기잘하는 전지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의 전지현이 좋다. 전지현의 팬들이 공감하고 그속에 나 역시 공감하는 부분. 전지현의 이런 모습을 바랬고,전지현은 보여줬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꼭 말하고 싶은것이 하나 있다. 여기서 끝난것이 아니라는... CF스타,모델 전지현에서 연기자 전지현으로의 탈바꿈에 성공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자명한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여기서 전지현의 모든것이 완성되고 결말지어진것은 아니다.
이번에 보여진 전지현의 변신은 위에서 cf가 사람들에게 그녀를 알린 매개일 뿐이라고 말했듯이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수많은 모습의 시발점일뿐이다. 지금 단정짓고 그녀의 모든것을 본것처럼 말한다면 그것만큼 애석한 일도 없을것이다.
전지현은 젊다. 젊다는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것이며,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뜻한다. 아직 그녀는 그녀의 모든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고,이것은 그녀의 능력중 극히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그녀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믿고 싶다.
그녀는 아직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것이 많다...
나는 전지현이 좋다. 전지현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런 전지현 자신이 완성되기 위해 노력하기에 ,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그녀가 좋다.
앞으로도 나는 그녀의 수많은 팬들 속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그녀의 진정한 완성을 기도하는 한명의 작은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