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
마라도를 찾아갔다. 옛 기억의 저편에서 마라도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 마라도를 향해 가는 길 내내 내 가난했던 날의 방랑을 떠올렸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던 날 밤의 어두운 바다, 몇은 멀미를 하고 몇은 술을 마시던 배 안의 풍경들, 그 절망과 을씨년스러움,
그것은 내 삶의 풍경 전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막연히 마라도가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 그곳에 가면 나보다 더 외로운 섬의 모습을 보면서 내 외로운 삶을 위안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단지 위로받기 위해서 나는 없는 돈을 박박 긁어 마라도를 향해서 떠났다.
서울에서 밤 열차를 타고 목포로, 다시 목포에서 밤배를 타고 제주로, 나의 행로는 밤으로만 이어졌다.
그것은 외로운 내 삶이 이 선택한 여정이기도 했다. 밤배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고단한 잠을 자는 사람들의 모습은 삶은 외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세상에 외로움이 지천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마라도를 향하는 배에 올라 나는 끝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끝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끝은 단절이고 없음이고 절망이고 부재였다.
마라도는 그러한 끝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마라도에 내려 나는 섬의 가장 끝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망망한 바다뿐이었다.
파도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을 따라 파도로 밀려오는 망망한 바다를 해가 저물도록 바라보았다.
마라도는 나보다 더 외로운 섬이었다. 물결과 바람만이 거세게 활보하고 사람들은 그 밑에서 풀잎처럼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작고 작은 사람들의 모습을 마라도에서 보았다.
끝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저토록 작은 것이라면 우리 삶의 끝도 저토록 작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욕망의 부질없음을 그곳에서 함께 보았다.
그리고 사람이 외로운 것은 이루지 못한 욕망 때문이라는 것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그곳은 내 외로운 젊은 날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 그리고 내 외로운 젊은 날의 마지막 여행지 마라도,
나는 그곳에 젊은 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산으로 들어왔다.
욕망의 부질없음을 보았으므로 그리고 외로움의 이유를 알았으므로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
이제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다시 마라도에 갔다.
배에는 관광객들이 넘쳤다. 더 이상 외로움을 찾아 마라도에 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물결이 잔잔한 마라도에는 내 기억 속의 바람 또한 없었다.
섬도 사람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나도 외롭지 않았다.
외로움은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마라도에서 창명 자장면 한 그릇을 사 먹으면서 나는 추억이 되어버린 내 젊은 날을 향해 따뜻하게 웃음 지어 보였다.
출처 ; 성전 스님 / 관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