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왔던 그 길을 다시 가야하는 길에는 즈바리 패스라는 고도 2,395m에 몇 개의 큰 십자가가 서있다. 그래서 크로스 패스로도 부른다 한다. 발길 닫는 곳마다 야생화가 만발하였다. 잠시 차에서 내려 고지에서 기념촬영과 꽃밭에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웃음꽃 한 다발 내려놓는다.
*즈바리 패스
즈바리패스 야생화
길옆 풍경
1783년 체결된 게오르기예프스크 조약 200주년을 기념하여 러시아와 조지아의 우정의 탑으로 양국을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모자이크 전망대는 해발 2,000m에 세워진 수교기념탑으로 1799년 러시아군의 군사 목적으로 만든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풍경 또한 빼어난 산악 도로는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가는 통로이며 카즈베기 방문하려면 꼭 지나야 하는 그 길에 있다.
*러시아 - 조지아 수교기념탑
점심식사로 생선구경 한다.
*부실한 중식
스탈린 기념관은 조지아 중부 소도시 고리에 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제공사였고 어머니는 제봉사였다. 그의 생가를 보니 방 두개짜리 작은 집에서 방 하나도 세를 줘야 하는 가난한 삶에는 무능하고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와 러시아 정교회성직자의 자식을 꿈꾸시던 어머니가 계셨으나 공산주의 혁명에 감화를 받아 공산주의 운동가가 되었다.
스탈린시절에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집도 무상으로 주고 또 피아노도 한대씩 주었단다.
지금도 교육은 노트북을 공짜로 주고, 10년을 무상으로 교육 받는다지만 그러나 지금은 무슨 일에 있어서 재료를 빼돌리는 등 구조적으로 좋지 않다는 가이드는 말한다.
스탈린의 본명 요시큐슈빌리로 자식이란 뜻이다. 스탈은 강철이란 뜻이란다. 스탈린은 조지아사람이라는 것을 싫어했다 한다.
그에게는 2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천연두자국이 있어 사진은 모두 수정처리 되었는데 박물관에 있는 사진중 하나의 얼굴에서는 천연두자국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라 한다.
또 한 가지는 왼손이 어릴 때 마차사고로 장애가 있어 모든 사진을 보면 한손은 주머니에 넣고 찍었다. 스탈린은 2명의 부인이 얻었는데 첫째부인은 부부싸움 후 권총자살을 하였는데 그는 첫 아내가 죽은 후 나는 모든 인간성을 버렸다 할 만큼 비정했다. 큰 부인의 큰아들이 대위로 독일포로로 잡혀 장군과 교환하자는 제의가 오자 대위를 어떻게 장군과 교환하느냐고 거절하여 결국 아들은 처형된다. 작은아들은 술과 마약으로 1953년 사망한다. 그는 자신을 ‘빛나는 태양. 위대한 지도자’등등 자신을 우상화하였으나 심복에 의한 독살설이 있다. 사후 후르쵸프는 스탈린 지우기를 했다. 스탈린은 무덤이 없다.
스탈린은 고려인을 이주시킨 장본인으로 러일전쟁시 일본인과 구별이 어렵다는 것과 관리가 편하다는 것으로 사막으로 이주시켰다. 이곳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한다.
*스탈린의 생가
스탈린 박물관
*스탈린의 전용기차
조지아 고리의 우플리스치케 동굴도시는 집단공동체 마을의 거주지였다. 우플리스치케 마을 앞에는 무트크바라강이 흐르고 뒤편은 험준한 산이어서 적으로 부터 보호하기 적합한 위치로 조지아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 청동기 시대부터 살았던 흔적이 있으며, 코카서스 지방은 해를 숭배하는 종교가 성행했고,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태양신을 모시는 종교도시로 발전했다. 그러나 타마르왕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고 태양신과 관련된 흔적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동굴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기독교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때부터 돌을 쌓아 주거지 형태를 보강하였다. 천연바위를 이용한 물 저장이나 아래 무트크바라강에서 길어온 물을 저장하기도 했다. 10세기경 세워진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우플리시스출리(왕자의 교회라는 뜻) 교회도 있다.
마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고리마을과 넓은 평야지대와 강물은 비옥한 옥토로 삶의 풍요가 느껴지는 마을이다.
우플리스치케의 원래 규모는 11세기에 인구 2만여명으로 멀리까지 도시가 형성되었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이곳의 제일 중심지는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까지 세주크제국을 격파하고 영토를 확장하여 중세 조지아의 황금시대를 만든 타마라 여왕의 홀(타마리스 다르바지)이라 불리는 곳으로 천연바위를 그대로 깎아 기둥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와인저장고가 여왕의 방 옆에 있으며, 극장 건물도 보인다. 13세기 몽골군에 의해 초토화 되었다.
*마을의 모든 역사를 품은 우플리시스출리 교회
우플리스치케 동굴도시에서 내려다 보이는 고리마을과 옥토와 강물
쿠타이시로 향하여 달리는 그 길에는 옛 소련시절 마을별로 특별화하여 빵을 만들고 도자기나 해먹 그리고 물까지 한 종류를 특화하여 판매하고 있다. 우리일행은 도자기 마을에서 화장실을 돈을 내고 가야하는데 그것도 많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화장실 사용 겸 우리는 도자기 마을에 버스를 세운다. 그곳에서 나는 말차 나눔 잔용의 작은 잔 10개를 구입했다.
이동하여 숙식을 위해 럭스호텔에 여장을 푼다.
식당 모습이 짜투리 공간을 카페로 활용 한 듯 한 왠지 투박한 나무 인테리어가 편안함을 준다. 음식 차림도 가장 소박한 작은 공간의 우리만을 위한 차림 같다.